美 노동시장 냉각에 근로자→고용주로 옮겨간 주도권, 급여 삭감 릴레이
美 대다수 기업 '임금 삭감' 행보, 블루칼라도 신입 금여 감소
얼어붙은 노동시장에 고용주보다 구직자가 더 간절한 상황
고임금 거품 빠지는 미국 시장, 인플레이션 상승세 꺾일 듯
세계 경기 불황 징후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가운데 미국의 주요 기업 대표 대다수가 임금 삭감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지난해 대부분 사무직의 급여가 줄었고 올해 들어서는 건설과 제조 등 블루칼라 직군의 신입 급여도 감소하는 모습이다.
냉각된 美 고용시장, 임금 삭감 행렬
지난달 30일(이하 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1년 전 17만5,000달러~20만 달러(약 2억3,500만~2억7,000만원) 사이 급여를 제공했던 직군들이 최근에는 기존보다 수만 달러 낮은 급여로 신입을 채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는 한두 분야의 직군에서만 이뤄지고 있는 현상이 아니다. 직업 구하기에 급급한 구직자들은 이미 급여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고 있을 정도다.
채용 담당자들에 따르면 기업들은 특히 신입 채용 시 비용 절감에 애쓰고 있다. 소비 수준이 낮은 지역에서 직원을 뽑기 위해 그 지역 자체적으로 일자리 공고를 내거나 정직원이 아닌 계약직 조건을 내거는 식이다. 정규직뿐만 아니라 아르바이트에서도 급여 수준이 낮아지는 현상이 목격되고 있다. WSJ가 미국 내 파트타임 직원 채용 공고를 분석해 본 결과 1년 전 대비 더 낮은 시급으로 직원을 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고용 시장의 주도권이 근로자에서 고용주로 전환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과거엔 역량 있는 직원들에게 높은 급여를 지급해야 했으나, 이제는 그럴 필요조차 없다는 게 WSJ의 설명이다. 실제로 고용 데이터 플랫폼 집리크루터 닷컴에 따르면 미국의 2만 개가 넘는 다양한 고용 분야 중 소매와 운송, 물류, 제조, 식품 등 거의 대부분의 분야에서 신입 초봉이 낮아졌다. 가장 하락폭이 컸던 분야는 소매 분야다. 소매 분야의 신규 채용에 대한 평균 급여는 1년 만에 무려 55.9% 하락했다. 다음으로는 농업(-24.5%), 제조업(-17.3%)이 뒤를 이었다.
오하이오, 펜실베니아, 웨스트 버지니아주 3개 주에만 56개의 매장을 소유한 맥도날드 프랜차이즈의 경우에는 시급이 이전과 동일하게 13달러지만 팬데믹 당시 계약금과 별개로 채용 시 제공했던 인센티브 격려금은 사라졌다. 또한 일부 가맹점주들은 프랜차이즈 관리자들에게 시급을 12달러로 낮춰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한 가맹점주는 “식비보다 고용 비용이 더 많이 든다며, 24년간 매장을 운영하면서 전례 없던 일”이라고 설명했다.
美 대도시도 ‘급여 거품’ 빠져
고임금을 자랑하던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보스턴 등 대도시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고용시장이 둔화세에 접어들면서 급여 거품이 빠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28일 블룸버그통신이 미 고용통계국(BLS)의 ‘7월 비농업 고용 지표’ 내 도시 별 주당 평균 임금을 분석한 결과 최소 1,400달러였던 8개 고임금 지역 중 △텍사스주 미들랜드(-8.9%) △워싱턴주 시애틀·타코마·벨뷰(-4.9%)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오클랜드·헤이워드(-0.3%) △매사추세츠·뉴햄프셔주 보스턴·캠브리지·내슈어 등 5개 지역에서 임금 하락이 나타났다.
이에 대해 WSJ은 “부진한 일자리 보고서는 근로자들이 지난 몇 년간 고용주에 대한 영향력을 상당 부분 상실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며 “채용이 급격히 둔화되면서 고용주들은 보너스를 삭감하거나 동결하고, 성과급 인상 폭을 점점 더 줄여 급여 지출을 통제하는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또 일부 기업은 인건비가 저렴한 도시에 지점을 개설하면서 기존 직원보다 적은 급여를 지급하며 충원을 시도하고 있다고 최근 추세를 전했다. 그러면서 “두둑한 급여 상승의 시대는 끝났다(The era of hefty pay increases is over)”고 평가했다.
‘고임금-인플레’ 악순환 끊어지나
이처럼 그간 미국 경제를 강하게 떠받치던 노동시장이 냉각 조짐을 보이자 일각에서는 ‘고임금-인플레이션’ 악순환의 고리가 완전히 끊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간 미국 노동시장은 고금리 상황에서도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을 훨씬 웃도는 일자리를 창출하면서 소비를 진작했는데, 이로 인해 임금과 물가가 나선소용돌이(스파이럴)를 만들며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하지만 최근 일자리 증가세 둔화 및 고임금 기조가 꺾임에 따라 물가도 함께 잡힐 것이란 분석이다.
실제로 미 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고용비용지수(ECI)는 계절조정 기준 전분기 대비 0.9% 상승했다. 1분기에 비해 오름세가 0.3%포인트 둔화하면서 시장 예상치(+1.0%)를 밑돌았다. 민간부문 임금 역시 전분기 대비 0.8% 올라 1분기에 비해 모멘텀이 0.3%포인트 둔해졌고 공공부문 임금의 전기 대비 상승률도 1.4%에서 1.1%로 낮아졌다. ECI는 연준이 고용시장의 인플레이션 압력을 따질 때 선호하는 지표로, 취업자의 구성 변화에 따른 잡음(composition effects)을 제거함으로써 임금의 기저 흐름을 더 정확하게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