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골드만 사옥’ 1조 대출 조기상환, 공격적 대외 운용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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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해외부동산 운용 전략 전환
2조에 매입한 ‘플럼트리코트’ 자기자본으로 떠안아
주요국 피벗 랠리에 해외부동산 빙하기 종료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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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공단이 2018년 2조원을 들여 영국 런던 골드만삭스 사옥을 인수하며 빌린 1조원을 최근 만기 전 모두 상환했다. 인수자금 전액을 자기자본으로 떠안은 것이다. 최근 금리 인하가 본격화하고 글로벌 부동산 시장이 회복할 것이라는 판단이 들자 국민연금이 공격적인 운용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연금, ‘풀에쿼티’ 전략으로 선회

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최근 영국계 보험사인 로스시라이프에서 빌린 6억 파운드(약 1조500억원) 안팎의 ‘플럼트리코트’ 담보 대출을 상환했다. 차입 없이 자기자본으로 투자해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하는 풀에쿼티 전략으로 전환한 것이다. 플럼트리코트는 런던 금융 중심가인 시티오브런던의 랜드마크 빌딩으로, 골드만삭스가 유럽 본사 사옥으로 쓰고 있다. 6년 전 국민연금이 플럼트리코트를 12억 파운드(약 2조원)에 매입할 당시 이 중 절반은 대출로 조달했다. 국민연금의 해외 부동산 투자 사상 최대 규모 인수 건이다.

국민연금이 해당 대출을 만기 전에 모두 갚기로 결정한 데는 금리 인하가 본격화하는 시점에서 연 8~9%에 달하는 높은 이자를 지급할 바에야 어느 정도 리스크를 짊어지고 자기자본으로 떠안는 게 낫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함께 부동산 투자 겨울이 막바지에 왔다는 기대도 바탕이 됐다.

2010년대 들어 해외 부동산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선 국내 연기금들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글로벌 오피스 빌딩 공실이 많이 늘어나고 고금리 기조가 본격화하자 어려움에 빠졌다. 건물 가격의 걷잡을 수 없는 하락에 대출 기관들은 담보인정비율(LTV)을 유지하도록 추가 출자를 요구했다. 하지만 기관들은 출자자 간 협의에 어려움을 겪었고, 이 때문에 사실상 손을 놓는 사례도 다수 발생했다. 이지스자산운용이 투자한 독일 트리아논 빌딩이 대표적으로, 추가 출자금을 모으지 못해 기한이익상실(EOD)이 발생, 결국 도산 절차를 개시했다. 이후 국내 연기금 등은 한동안 해외 부동산 투자를 전면 중지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최근 주요국에서 통화정책 전환(피벗)이 이뤄지고 2년 가까이 이어진 해외 부동산 투자 빙하기가 끝나갈 조짐을 보이자 국내 큰손들의 운용 전략도 바뀌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이달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낮출 가능성이 크며, 유럽 캐나다 중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은 이미 금리 인하를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국민연금은 플럼트리코트 외에도 해외 부동산 투자 2~3건을 추려 내년까지 대출을 갚는다는 계획이다. 올해와 내년 만기가 도래하는 자산이 대상이다.

해외투자서 매년 400억 이상 절세, 수익률 견인

이 같은 국민연금의 공격적인 운용 배경에는 최근 안정적인 추세를 보이고 있는 수익률이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준 기금 수익률은 9.71%, 운용 수익금은 102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로써 국민연금 제도 도입 이후 누적수익금은 680조4,000억원, 기금 적립금은 1,147조원을 달성해 1,200조원을 목전에 뒀다.

국민연금의 수익률을 견인한 건 해외주식이다. 자산별 잠정수익률을 보면, 상반기 해외주식 수익률은 20.47%를 기록했다. 미국의 인공지능(AI) 수혜주를 비롯해 빅테크 등 다양한 기술·성장주에 투자한 것이 수익률 상승에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아울러 해외주식 배당소득에 대한 원천세 면제도 수익률 제고에 기여했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그간 미국, 영국, 네덜란드, 덴마크, 스페인 등에서 절세지위를 인정받아 납부한 세액 800억원 이상을 환급받고, 매년 400억원 이상을 절감하고 있다. 최근에는 핀란드 상장주식 배당소득에 대한 원천세 면제 소송에서 승소해 96억원 이상을 환급받게 됐다. 이번 판결로 국민연금은 지난 2014~2023년 낸 배당원천세 약 96억원을 환급받고, 향후 매년 약 38억원(2023년 배당원천세액 기준 추산)을 절감하게 됐다.

국민연금이 핀란드에 원천세 면제 소송을 제기한 건 2014년으로 2015년 ‘자국 내 기관과 유사한 해외기관에 대한 차별금지’ 내용을 담은 유럽연합(EU) 차별금지 조항에 근거해 소송을 진행했다. 해당 조항(TFEU 63조)에서는 EU 가입국 및 제3국 간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제약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지난 2021년 핀란드 국세청으로부터 환급 거절을 통보받았고, 불복 심사 조정위원회에서도 같은 결정이 나와 2022년 핀란드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에서 핀란드 과세당국은 국민연금이 사회보험이 아닌 퇴직연금이라고 주장했으나, 국민연금은 국민연금제도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사회보장제도임을 소명했다. 행정법원에서 국민연금 승소 판결이 난 시점은 지난 5월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스페인에서도 EU 차별금지 조항을 근거로 배당원천세 면세 지위를 인정받아 납부한 세금 약 126억원을 돌려받았다. 현재 같은 조항을 근거로 스웨덴,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에서도 세금 환급을 추진 중이다.

또한 미국 투자 관련 세금을 매년 120억원 이상 절감한 공로를 인정받아 작년 8월 감사원으로부터 ‘감사원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앞서 국민연금은 미국 부동산 양도차익에 면세 혜택을 받는 적격해외연기금 지위를 획득해 2016~2018년 납부했던 350억원을 환급받고, 2019년 이후 연간 120억원 이상 내야 하는 세금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미국은 지난 2015년 퇴직급여 지급 비중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하는 국가의 해외 연기금에 적격해외연기금 지위를 적용해 부동산 양도차익을 면세해 주는 법률을 제정했다. 적격해외연기금 지위를 얻으면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 등을 통한 부동산 양도차익의 21%에 해당하는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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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해외·대체투자 등 운용전문가 15명 모집

수익률 확대에 힘입어 국민연금은 전략, 해외·대체투자, 리스크관리, 운용지원 부문 등 기금운용역 채용에도 나선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이달 13일까지 기금운용 전문 인력 채용을 위한 제4차 공개 모집을 실시한다. 이는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확대 등 투자 다변화 전략에 발맞춘 것이다.

이번에 채용되는 인력은 국내외 연수 및 전문교육, 해외 투자기관 근무 등 세계적인 운용 역량을 키울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다. 모집 부문은 △운용전략 △해외주식·채권 △부동산·인프라·사모투자 등 기금운용본부 10개 분야다. 직급별로 책임운용역(6명), 전임운용역(9명) 등 총 15명을 뽑는다. 이 중 5명은 책임급 전문인력으로 선발해 뉴욕(2명)·싱가포르(2명)·런던(1명) 해외사무소로 파견할 예정이다.

기금운용직 채용은 △서류전형 △경력검증 △면접전형 △최종합격자 발표 등의 절차로 진행되며, 최종합격자는 오는 12월 임용될 예정이다. 채용 전 과정은 지원자가 이름·학력·연령·성별·가족사항 등을 직·간접적으로 밝히지 않는 블라인드 방식으로 진행된다. 서류전형 합격자에 한해 외부 전문업체를 통한 평판 조회를 거치며 최종합격자 검증 단계에서는 전력조회, 신원조사 등이 이뤄진다. 김태현 국민연금 이사장은 “국민연금 수익성 개선을 위해 투자 요충지인 해외사무소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며 “운용역을 채용해 바로 해외사무소로 배치하는 제도를 도입한 만큼 유능한 인재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