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통제 부실 책임론 불거진 우리금융, 침몰 직전에 몰린 임종룡 호
손태승 전 회장 친인척 부정 대출에 우리금융 경영진 퇴진설 확산
당국 압박에 동양·ABL생명 인수 발목 잡힐 가능성↑
리스크 커진 임종룡 호, 임 회장 연임 포기하나
손태승 전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친인척 부정 대출 사건으로 우리금융 내부통제 부실 논란이 불거지면서 임종룡 현 회장의 퇴진설이 나오기 시작했다. 임 회장 체제가 급격히 흔들리고 있단 방증이다. 다만 임 회장이나 조병규 우리은행장 등 임원진의 조기 퇴진이 현실화하진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조 행장이 현 경영진의 조기 퇴진설에 선을 그은 데다 이사회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어서다.
우리금융 경영진 조기 퇴진 현실화 어려울 듯
11일 업계에 따르면 조 행장은 전날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의 은행장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검찰) 수사와 (금융감독원) 조사를 잘 받고 있다”며 “임직원들이 성실하게 (검사를) 잘 받고 있으니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보고 (구체적인 건) 그때 얘기하겠다”고 말했다. 금융권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는 우리금융 경영진 조기 퇴진설을 사실상 부정한 것이다.
우리금융 이사회도 침묵을 지키는 모양새다. 전임 회장 친인척 부정 대출 사건이나 임 회장의 거취에 대한 입장 표명을 거부한 셈이다. 통상 경영진에 책임을 묻기 위해선 이사회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현행 금융회사 지배구조 규범상 사외이사는 경영진의 사고 은폐에 ‘권고’와 ‘해임 권고’까지 가능하다. 또 ‘개선 자구책 요구→재발 방지 대책→관련자 조치 요구→징계’ 순으로 절차를 밟을 수 있다. 이 원장이 지난 4일 우리금융 경영진의 책임을 지적하면서도 “현 경영진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은 이사회나 주주들이 묻는 게 맞다”고 언급한 이유다.
다만 금감원이 부정 대출 사건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만큼 우리금융 측이 시간 끌기를 장기적으로 이어가는 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 조 행장이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고, 적어도 올해 3월엔 임 회장도 부정 대출 사실을 인지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올 상반기 총 여덟 차례 열린 우리금융 이사회의 ‘사외이사 중요 의결 사항’엔 손태승 전 회장 처남의 부정 대출 내용은 빠져 있었다. 우리금융의 내부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단 의미다. 금감원이 이 지점을 본격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하면 우리금융도 침묵을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가 우리금융 비은행 강화 기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단 점도 부담이다. 앞서 임 회장은 포스증권에 이어 동양생명과 ABL생명의 패키지 인수에 성공하면서 숙원 사업인 비은행 강화를 위한 첫 단추를 끼우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인수가 마무리되기 위해선 당국의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한단 점이다. 금융사지배구조법 제32조에 따르면 금융사는 최대 주주가 되려는 경우 금융위원회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받아야 한다. 또 같은 법 감독규정 15조 3항에 따라 금융사가 다른 금융사의 대주주가 되고자 할 경우 최근 1년간 기관경고 조치 등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 금감원은 우리금융의 동양·ABL생명 인수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이 원장은 “(이번 인수계약은) 민간 계약이지만 인허가 문제가 있다 보니 어떤 위험 요인이 있는지에 대해 금융위나 감독원이랑 소통해야 했는데 그런 소통이 없었다”며 “그날 계약이 치러진다는 사실을 신문을 보고서야 알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보험사는 리스크가 은행과는 다른 측면이 있는데 과연 그런 것들이 정교하게 반영됐는지에 대해 걱정이 좀 있다”며 우리금융 정기 검사에서 이와 같은 내용까지 포함해 들여다보겠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우리금융을 둘러싼 각종 리스크가 최종 인수의 불확실성을 높인 셈이다.
조직 개편 등 개혁 노력은 무위로
이렇듯 임종룡 호가 침몰 직전까지 몰리자 시장에선 과거 우리금융이 시행한 조직 개편 등 노력이 무위로 돌아갔단 평가가 나온다. 우리금융은 지난해 3월 임 회장 취임에 맞춰 대대적인 쇄신을 이룬 바 있다. 임 당시 내정자의 경영 전략 방향을 반영해 지주·은행·계열 자회사의 대대적인 조직·인사 개편을 단행한 것이다.
우리금융은 우선 지주 효율성 극대화를 위해 2명의 총괄사장제와 수석부사장제를 폐지하고 11개 사업 부문도 9개로 축소했다. 지주 내 임원급 부문장은 11명에서 7명으로 줄이고 6명을 새로 선임했다. 또 나머지 2개 부문장 자리엔 본부장급 인력 2명을 발탁 배치했다. 전체적인 세대교체를 이루기 위한 결정이라는 게 당시 우리금융의 설명이었다.
이사회 차원의 세대교체도 이뤄졌다. 자회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열고 임기가 만료됐거나 재임 2년 이상인 9개 계열 CEO 전원을 교체하기로 한 것이다. 지주가 전략을 짜고 자회사가 영업을 중심으로 운영된다는 방향에 따라 우리은행 조직도 대대적 조직개편과 임원 인사를 실시했다. 22개 은행그룹 중 임원급 인사는 19명에서 18명으로 줄였고 12명을 새로 선임했다. 남은 네 명의 그룹장은 본부장급으로 채워졌는데, 마찬가지로 3명을 신규 선임했다.
이원덕 당시 우리은행장이 물러나겠단 입장을 밝힌 것도 이 시기다. 이 행장은 아직 임기가 10개월가량 남아 있어 인사 대상이 아니었지만 스스로 직을 내려놓기로 했다. 이에 대해 우리금융은 “이 행장이 임 내정자의 경영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사의를 표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 회장 취임을 기점으로 우리금융 전반이 ‘물갈이’ 된 셈이다.
거듭된 압박에 연임 포기한 손태승, 임 회장은?
이런 가운데 최근 업계의 관심은 임 회장의 거취 문제에 쏠리고 있다. 임 회장이 연임을 결정하면 세대교체 등 개혁에 걸림돌이 될 수 있어서다. 다만 전임 손 전 회장이 강력한 연임 도전 의지를 꺾고 연임을 포기한 바 있는 만큼, 임 회장도 연임은 포기할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시선이다.
손 전 회장과 임 회장 사이 공통점이 많단 점도 연임 포기설에 힘을 싣는다. 손 전 회장도 임기 막바지 법적 리스크에 휘말린 바 있다. 금융위로부터 문책 경고 상당의 제재를 받은 것이다. 우리은행이 라임자산운용의 사모펀드를 불완전 판매(부당권유 등)한 데 손 전 회장의 책임을 물은 결과다. 문책 경고를 받은 자는 금융회사 취업이 3년간 제한된다.
금융 당국으로부터 퇴진 압박을 받았단 점도 유사하다. 실제 이 원장은 당시 손 전 회장의 연임에 부정적인 의견을 거듭 개진하며 “당사자(손 회장)께서 현명한 판단을 하실 것”이라고 사실상 연임 포기를 종용했다. 뿐만 아니라 세 번째 연임 도전을 앞두고 용퇴한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을 “리더로서 존경스럽다”고 치켜세우며 손 전 회장을 우회적으로 저격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