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 행보’ 이창용 한은 총재 “더 많은 외국인 노동자 유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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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잠재성장률 2% 등 고질적인 저성장 문제 지적
저성장의 해법으로 노동·교육 등 파격적인 개혁안 제시
외국인 노동자 유치 위해 '최저임금 차등 적용' 등 제안
birth 20240924

한국은행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지적하며 연일 파격적인 대안을 내놓고 있다. 한은은 한국의 저성장을 해소하기 위해 더 많은 외국인 노동자를 유치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외국인 돌봄 인력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제안했다. 이어 소수 거점도시 집중 육성, 과일·채소 수입 확대 주장, 강남 학군 대입 정원 상한제 등의 파격적인 아이디어도 뒤따른다.

저성장 야기하는 인구구조 악화와 지방 소멸 우려

24일 이창용 총재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저성장 문제를 지적하면서 인구구조 악화와 지방 소멸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 총재는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2% 안팎의 잠재성장률에 비해 낮은 수치를 보인다”며 “무엇보다 인구구조 상황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한국 경제가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 더 많은 외국인 노동자를 유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은이 내놓은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올해 2.4%, 내년 2.1%다.

한국의 교육제도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세계의 지도자들은 한국의 교육제도를 종종 칭찬하지만, 그 실태는 모른다”며 “서울의 부유층은 자녀들을 여섯 살 때부터 학원에 보내 대학 입시를 준비하게 하고, 여성들은 일하는 대신 아이들 교육을 위해 전업주부를 선택하면서 국가 경제에 해를 끼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나친 경쟁 구조가 모든 국민들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또 이 총재는 “대치동 학원가와 강남 8학군으로 대표되는 강남 일대 사교육 열풍이 집값과 가계 대출을 끌어올리고 있어 불평등 심화와 지방 인구 소멸 가속화라는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며 “인구의 서울 집중화 해소를 위해 강남 지역 출신에 대해 대학 입학 정원에 상한선을 두는 식의 ‘극단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극단적인 해결책으로 서울대를 비롯한 상위권 대학의 지역별 비례선발제를 제안했다.

경직된 사회구조와 새로운 성장동력에 대한 입장도 드러냈다. 이 총재는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한국의 성장 모델이 고갈되고 있다”며 “제조업 다음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우리가 타던 말이 지쳐서 새로운 말로 갈아타야 한다고 느끼는데, 사람들은 ‘이 말이 그렇게 빠르고 잘 달렸는데 왜 바꿔야 하나’라고 말한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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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서비스 인력난 해소에 외국인 유치 확대 제안

한은과 이 총재가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 파격적인 대안을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최근 들어 이 총재와 한은은 월 5회가량 발간하는 ‘BOK(BOK·Bank of Korea) 이슈노트’ 등을 통해 저성장에 대한 개선책을 내놓고 있는데 단순히 현안 분석에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지적하면서 적극적인 구조개혁 방안을 내놓고 있다.

해당 보고서에서는 중앙은행으로서의 전문적이고 치밀한 분석이 담겼음에도 신중함의 대명사였던 한은이 제시한 파격적인 제안은 때로 반발에 직면하기도 했다. 앞서 한은은 돌봄 서비스 최저임금 차등화, 소수 거점도시 집중 육성, 과일·채소 수입 확대 주장 등을 내놔 논란이 된 바 있다. 이런 반응에 대해 당시 이 총재는 “정답은 아니지만 해결 방안의 하나로 한은이 보이스를 높이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논쟁의 정점은 지난 3월 발표한 ‘돌봄서비스 인력난 및 비용 부담 완화 방안’ 보고서였다. 보고서는 “돌봄서비스 부문의 인력난을 완화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되 비용 부담을 낮추는 방안도 함께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대안으로는 △개별 가구 사적 계약을 통한 외국인 노동자 직접 고용 △외국인 고용허가제 대상 업종에 돌봄서비스업을 포함하고 동 업종에 대한 최저임금을 상대적으로 낮게 설정하는 방식 등을 제안했다.

특히 한은이 최저임금 차등 적용을 거론한 것을 두고 이주단체·노동계는 즉각 반발했다. 이주노동자평등연대는 “이주노동자의 노동을 최저임금보다 값싸게 부릴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차별적이며, 착취를 정당화하는 반인권·반노동적 사고”라고 주장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도 논평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를 값싼 노동력으로 인식하며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밀어 넣겠다는 발상은 차별적이며 반인권적”이라며 “외국인뿐 아니라 내국인의 노동 환경마저 악화시키는 악순환 고리를 만들 뿐”이라고 지적했다.

최저임금 차등 적용 어려우면 사적 계약 고려해야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 적용 논란은 지난해 외국인 가사관리사에 대해 한시적으로 최저임금을 배제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되면서 시작됐다. 21대 국회에서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이 외국인 가사관리사에 대해 5년간 한시적으로 최저임금법 적용을 제외하자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지만, 노동계의 강한 비판에 휩싸이면서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하지 못한 채 발의된 지 하루 만에 철회됐다.

이후 정부가 필리핀 가사관리사 도입을 추진하면서 또다시 논란이 일자 고용노동부는 국내법을 비롯해 국적에 따른 임금 차별을 금지하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을 언급하며 외국인 가사관리사에 대해 최저임금을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실제로 ILO 협약 등에 따라 주요국에서도 외국인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 지급 규정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최저임금위원회가 OECD 26개 회원국을 포함해 41개국의 최저임금제도를 분석한 결과, 내국인과 외국인의 최저임금을 다르게 지급하는 국가는 단 한 곳도 없었다.

이에 대해 한은은 ILO의 협약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최저임금 차등 지급의 논란에서 벗어날 방안으로 개별 가구가 ‘사적 계약’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게 하는 방식을 제언했다. 간병인 등 돌봄 인력과 사적 계약을 하는 대만은 간병인에 대한 임금이 현저히 낮은 시세로 책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현재 개별 가구가 사적 계약으로 고용하는 가사관리사의 임금이 오히려 최저임금보다 높은 시세로 책정돼 있어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다만 이러한 논란에도 이 총재는 외국인 최저임금 차등화에 대한 기존의 입장을 고수했다. 올해 7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 회의에 참석한 이 총재는 “최저임금 차등화를 지지하는 것이냐”는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 질문에 “최저임금 차등화를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최저임금 차등화가 아니더라도 사적 계약을 통해 가사관리를 고용할 경우 최저임금제를 적용하지 않는 것은 ILO(국제노동기구)가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위법하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