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 1,400원 목전, “미국 우선주의” 외친 트럼프, 달러 강세 이끌었다
2022년 11월 이후 최고 수준
수출 증대 등 긍정적 효과 미미
주변국 화폐 가치 하락도 변수
원·달러 환율이 1,400원에 육박하며 불과 한 달 전과 비교해 80원이 올랐다. 백악관 재입성을 앞둔 ‘트럼프 효과’로 풀이되는 가운데, 수출 등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관심이 모아진다.
미국 재정 적자 확대 전망
7일 외환시장에 따르면 전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7.6원 오른 1,396.2원으로 장을 마쳤다. 이는 종가 기준 연중 최고치인 동시에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긴축 기조를 강화하면서 달러가 초강세를 보이던 지난 2022년 11월 7일(1,401.2원) 이후 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같은 상승세를 이끈 주인공으로는 제47대 미국 대통령 선거를 승리로 이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꼽힌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미국 우선주의 정책이 심화할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선거 기간 중국산 수입품에 60% 관세를 부과하고,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수입품에 최대 2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바 있다. 당장 내년부터 보편 관세가 도입되고 우리 무역수지가 악화한다면, 이는 원화 약세 압력으로 작용한다.
또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 내 경제 성장 촉진을 위한 대규모 투자와 감세 공약도 내걸었다. ‘감세와 일자리 법’(TCJA) 연장, 법인세율 추가 인하, 국방비 증가 및 국경 보안 강화 등이 대표적이다. 관세는 올리고 자국민의 세금 부담은 줄이자는 것이 정책의 취지지만, 재정 적자가 불가피하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여기에 공화당이 의회 상·하원을 장악하는, 이른바 ‘레드스윕’ 현상까지 빚어지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약은 현실화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간 무역적자 축소를 외치며 표면적으로 약달러를 지지해 온 트럼프 전 대통령이지만, 그가 내세운 보호무역 정책, 감세안 연장, 이민정책 강화 등은 모두 달러화 상승효과로 이어진 셈이다.
이와 관련해 김완중 하나은행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확장 재정정책, 반 이민 기조 등 트럼프의 정책 기조가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해 미 연준의 금리 인하 속도가 기존 전망보다 느려질 가능성이 있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중국 견제 발언 등도 원화 가치에는 부정적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강달러=수출증대’ 공식 깨졌다
일각에서는 달러 강세로 인한 수출 증대 등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국제결제은행(BIS) 경제고문 및 조사국장을 지낸 신현송 전 프린스턴대학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22년까지 미국 달러 인덱스(DXY·다른 주요 통화에 대비한 미국 달러의 평균적 가치)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 물량은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미국을 제외한 여타 국가의 화폐가 달러 대비 약세일수록 수출에 유리하다는 통념이 깨진 셈이다.
이같은 현상은 금융시장 내 달러 조달 능력 불균형에서 비롯됐다. 은행들은 주로 MMF(Money Market Fund)라 불리는 단기자금 시장에서 달러를 조달해 수출업체에 빌려주는데, 달러 강세 시장에서는 은행들이 조달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수출업체 입장에서는 무역에 필요한 자금을 제때 충분히 공급받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결국 은행을 통해 수출 업무를 진행하는 기업은 달러가 강해질수록 수출 감소를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국경을 넘는 거래인 수출입은 국내 거래에 비해 훨씬 까다롭고 시간도 오래 걸려 이를 뒷받침하는 무역금융이 필수로 수반된다.
저렴한 한국산, 더 저렴한 일본산?
일본과 중국 등 주변국의 달러 대비 가치가 하락했다는 점 또한 우리 산업에는 악재다. 특히 일본 엔화의 경우 원화보다 훨씬 오랜 시간 저평가되고 있어 미국 등 주요국의 수입은 일본에 집중된 경향을 보인다. 엔화가 급격한 약세를 보인 것은 2022년 이후로, 2022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약 35.9% 약세가 진행됐다. 이 기간 달러 표시 수출 금액은 6.5% 감소했다. 하지만 이는 달러 표시 수출 가격 하락 효과가 수출 물량 증가 효과보다 훨씬 크기 때문으로, 이를 엔화 환산할 경우 실제 일본의 수출량은 29.4%(35.9%-6.5%) 증가한 것과 같다.
2022년 본격화한 엔화 약세로 일본 수출 물량이 30% 가까이 증가했다는 점은 우리나라 수출 물량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만약 일본이 우리나라와 수출 상품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할 경우, 엔화 약세에 따른 일본 수출 물량의 증가는 그대로 우리나라 수출 물량의 둔화로 이어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수출 물량 증가율은 2022년과 2023년 각각 1.8%, 1.0%에 불과했다. 엔화 약세가 우리나라 수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