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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드프레스가 매우 조잡한 시스템이라 개발자들에게 무시 당하는 플랫폼이었으나 지난 20년 사이에 블로깅 -> 콘텐츠 사이트 -> 웹사이트 제작 프로그램으로 진화했음 이제 개발자 없이 워드프레스로만 모든 걸 다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왔음
한국에서 웹사이트를 워드프레스로 만들었다고 표현하면, 듣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벤처 업계 인식이 대체로
- 가볍게 금방 쓰기 위해 만들었다
- 제대로 개발을 안 하는 회사다
- 예산이 없거나, 돈 안 들이고 대충 만드는 플랫폼이다
같다. 실제로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그런 편견이 깔려있고, 그렇다보니 워드프레스로 만드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특히 개발자들은 워드프레스로 웹사이트 만들자고 하면 그렇게 '기술 스택 취급조차도 하고 싶지 않은 걸로 만들자고 하면 회사 나간다'는 표정들을 짓는다.
그 분들의 편견이 최근까지는 맞는 생각이었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 역시도 사업초창기부터 운영해온 블로그를 워드프레스로 '대충', '급하게' 만들었고, 지난 몇 년간 운영하면서 퍼블리셔(Publisher)가 와서 손을 대거나, 웹디자이너가 이것저것 만져주면 '대충' 만들었던 모양새가 좀 감춰져서 웹사이트의 완성도가 올라갔다는 것을 여러번 느낀 적이 있다.
그런데, 지난 2년 남짓 동안 워드프레스가 급변하면서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생각이 맞다고 하기는 어렵지 않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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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드프레스로 (거의) 다 되는데 왜 개발자 뽑아요?
영어권으로 나가면 워드프레스가 워낙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에 '워드프레스 개발자', '워드프레스 디자이너'라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운영 중인 웹사이트 하단에 등록한 이메일로 하루에도 한 개 이상 꼴로 웹사이트 다시 만들어주겠다는 메일이 오고, 특히 도메인을 새로 만들어 구글 검색이 좀 되기 시작하는 3개월 차, 각종 트래픽이 상당히 몰려드는 6개월 차가 되면 그런 이메일들이 하루에 몇 통 이상 날아온다. 그러다 웹페이지 완성도를 현격하게 올리고 나면 다시 메일 오던 부분이 싹 줄어든다.
메일들이 날아오는 곳을 보면 거의 대부분 인도, 동유럽, 그 외에는 유럽에서 청년 실업이 엄청나게 높은 나라들이다. 그 나라들에서도 저가 인력들이 6개월 남짓 교육 받고는 이쪽 업무에 투입되어서 웹사이트 찍어내기를 반복적으로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한국에서는 같은 시장을 워드프레스 대신 '카페24' 같은 국내형 솔루션이 완전히 장악한 상태고, '워드프레스 개발자'라는 사람을 한 명 찾기는 쉽지 않다. 그간 상당한 인력들을 뽑거나 면접을 봤지만, 나보다 워드프레스를 더 모르는데 '워드프레스 개발자'라는 사람들도 많이 봤었고, 워드프레스 경험이 꽤나 있는 회사 내의 웹디자이너의 표현에 따르면 지난 2달간 내가 공부한 수준을 넘는 워드프레스 전문가를 한국에서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모든 걸 다 떠나서 모르면 영어로 이메일 쓰고 그 다음날 온 답장이 완벽하지 않을 때 변형해서 웹사이트에 바로바로 적용해볼 수 있는 사람이 한국의 개발, 디자인 업계에 거의 없을 것 같단다.
워드프레스의 진화: 블로그 -> CMS -> FSE
워드프레스가 나온지 이제 20년이 넘었다. 처음 나왔을 때는 블로그 플랫폼이었다. 디자인도 지금 보면 매우 조악한, 그 시절의 단순한 웹페이지 다자인을 겨우 지원하는 수준이었는데, 대략 10~15년 전부터 블로그가 아니라 CMS (Contents Management System)가 됐다. 단순히 로그인해서 댓글을 달고 끝나는 수준이 아니라, 온라인으로 동영상 기반의 '학원' 시스템을 운영하거나, 한국식 웹 카페 같은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심지어는 Github처럼 여러 사람이 올린 정보성 콘텐츠를 운영할 수 있는 서비스가 됐다. 말 그대로 '자료 저장소' 역할을 할 수 있게 성장한 것이다. 한 때 위키피디아의 위키 엔진도 얼마든지 워드프레스로 운영할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기도 했다. (이 상황은 지금도 마찬가지고, 내가 내년 언젠가 직접 서비스로 만들어 볼 계획이기도 하다.)
그러다 대략 2-3년 전부터 CMS를 넘어 FSE (Full Site Editor)로 한 단계 더 도약했다는 평들이 나온다. 그간 '웹페이지 빌더(Page Builder)'라는 특수 프로그램을 이용해야 워드프레스에서 제공하는 테마들을 만들 수 있었는데, 아예 '블록(Block)'이라는 개념을 들고와서 기본 블록들을 레고처럼 잘 조립하면 온갖 종류의 기능을 다 구현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크게 바뀌었다.
이게 왜 좋은거냐면, 워드프레스 기반 웹사이트 속도를 느리게 하는 장본인이었던 'Page builder'들이 이제 완전히 퇴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처음 썼던 Page builder는 파비클래스 웹페이지를 만들 때 썼던 LMS(Learning Management System)용의 WPLMS였는데, 당시 내 가장 큰 불만 중 하나가 느려터진 웹사이트 로딩 속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생들이 찾아와서 강의를 듣고 자료를 읽고 갔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이후 만든 블로그는 TagDiv라는 Page builder를 썼었고, 속도가 빨라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Elementor'라는 플랫폼으로 웹페이지를 새로 만들기도 했었다. 뭘 해도 결국은 웹페이지 로딩 속도가 느려서 항복하고 개발자들이 원하는대로 아예 웹사이트 설계 자체를 뜯어 고쳐야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Block' 기반으로 웹사이트 로딩 속도에 혁명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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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제작 방식의 혁명
위의 스크린 샷은 GeneratePress라고 하는 테마에서 2020년 10월에 처음 제공한 이미지로 알고 있다. 구글의 페이지 스피드 기준으로 모든 영역에서 100점을 받은 테마인 것이다. 저 이후로 검색엔진 최적화를 비롯해서 다양한 기준값이 추가됐기는 하지만, 지금도 GeneratePress를 쓰면 여전히 전 영역에서 100점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웹페이지를 만들다보면 다양한 기능들을 추가해야 하고, 결국에는 100점을 유지하기 위해서
- 구글 SEO에 대한 많은 기초지식
- 각각의 블록(Block) 배치와 디자인에 대한 고민
- 웹사이트 운영을 SEO 및 서비스 방향에 맞춘 고민
등이 필수적으로 따라야 하긴 한다. 기본으로 주는 테마를 그대롤 쓸 수는 없으니까.
2019년 언젠가 쯤에 워드프레스가 5.0으로 버전 업그레이드를 했으니까 그걸 쓰라고 계속 홍보하고, '블록'이라는게 나왔으니까 기존에 쓰고 있던 'Classic editor'를 바꾸라고 여러 방식으로 정보가 제공됐지만, 나는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처음 한 번 써보니까 너무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렇게 글로벌 시장에서 제대로 된 역량을 갖춘 분들 눈에는 단순히 글 쓰기 방식을 바꾸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웹사이트 제작 방식을 완전히 뜯어 고칠 수 있는 혁명이라는 것이 눈에 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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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드프레스는 느리다? 글쎄, 너네가 더 느릴 것 같은데?
위의 그래프는 '블록'으로 만들어진 4개의 테마가 2021년까지 워드프레스의 기본 'Page builder' 취급을 받던 다른 테마들에 비해 얼마나 더 가볍게 만들어졌는지 보여주는 자료다.
웹페이지가 100kb도 안 되도록 가볍게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간 가볍다고 알려진 Hello Elementor는 한 때 우리 회사가 검색 서비스 하겠다면서 구글 검색창처럼 검색 바 하나만 넣을려고 썼던 테마다. 가볍다고 그러니까, 기능 하나만 넣어도 되는 웹사이트에 쓰자고 그걸 골랐었다. 그런데 그거보다 훨씬 더 가벼운데 다양한 기능을 넣어 웹사이트가 멀쩡하게 잘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블록'으로 모든 것을 새롭게 다 만들면서 웹사이트의 제작 방식도 완전히 바뀌었고, 덕분에 개발자들이 Node.js, React.js를 어지간히 잘 써서 만들지 않는 이상 개발 기간, 시스템 관리, 기능 추가에 필요한 기간 및 운영 비용 등등을 종합해 봤을 때 절대로 밀리지 않는 옵션으로 성장하게 됐다.
이걸 올해 들어서야, 그것도 웹사이트 버전 업그레이드를 막은 탓에 해킹의 표적이 되고, 실제로 해킹까지 당하고 난 다음에 알게 됐는데, 허탈하기 짝이 없었다. 2-3년 전부터 적극적으로 자료를 찾아다녔으면 이미 우리 회사 웹사이트들이 저렇게 잘 만들어졌었겠지?
물론 그렇지는 않았던게, 지난 2년간 '블록'기반의 FSE로 넘어오면서 워드프레스도 어마어마한 발전을 겪었고, 적응하지 못한 테마와 플러그인들이 빠르게 도태되는 중이고, 바뀐 시스템에 맞춰 새로운 기능들이 마구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잠깐 인력을 쏟아붓고 속도전으로 내가 만들고 싶었던 걸 다 붙여넣으면 안 될까는 생각을 해 봤는데, 예전에 무겁다고 다시는 안 쓴다며 화를 냈던 플러그인들이 하나씩 '블록'으로 다시 만들어지는걸 보면서, 굳이 속도전을 할 게 아니라, 내 서비스들을 하나하나 키우면서 시장 바뀌는 것에 맞춰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으면 되겠다고 생각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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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can build anything'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시대
위의 GeneratePress(GP)에서 내놓은 플러그인 중에 'GenerateBlock(GB)'라는 것이 있다. 워드프레스 기본 블록들을 결합하고 뜯어 고쳐서 일반 유저들이 편하게 새로운 기능들을 만드는데 쓸 수 있도록 해 준 것이다. GP 테마를 쓰면서 GB를 써서 너네가 원하는 걸 만들어 쓰라는 말이다. 어느 후기를 보면
With GP and GB, you can literally build anything
라는 표현이 있다. 블록을 이용하면 정말 무한한 가능성을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인지하신 분들의 후기인 것이다. 딱히 GP/GB를 홍보해주려고 하는 건 아닌게, 나는 저 4개의 경쟁 테마 중에 (그나마) 가장 무겁다는 Kadence를 골라서 이 웹페이지를 만들었고, 앞으로 우리 회사가 내놓는 모든 서비스는 Kadence를 기반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Block기반 테마들을 테스트해봤는데, 그 중 우리 회사의 초라한 '기술력'을 감안해 봤을 때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초보자 친화적'으로 만들어놨길래 골랐다.
지난 몇 달간 친절하게 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담아 메일 보내준 Kadence팀 덕분에 우리가 내놓는 모든 서비스는 이제 구글 페이지 스피드 기준으로 접근성, 권장사항, 구글SEO 최적화 영역에서 손쉽게 100점을 찍을 수 있게 됐다. 국내 웹사이트들 중에 'Live' 서비스로 100점을 안정적으로 찍을 수 있는 곳이 과연 몇 곳이나 될까? 그렇게 만들기 위해 들여야 하는 개발 비용은 얼마나 될까? 비개발자인 내가 지난 2개월 동안 인건비에 쓴 돈은 웹디자인을 제외하면 0원이었다. 0원.
테마와 플러그인 구입 비용 고작 2백만원 남짓을 들여 웹페이지 수십 개를 100점짜리로 만들 수 있다면, 그것도 이렇게 단 기간에 다 만들 수 있다면, 굳이 웹 에이전시와 개발자들을 찾아가야 할 필요가 있나?
남은 것은 성능 부분인데, 이건 서버 최적화를 할 수 있는 역량이 갖춰지면 지금보다 더 높은 점수를, 그것도 매우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위의 스크린 샷은 파비리서치에서 엔터테인먼트 관련 정보들만 뽑아 이관 절차가 진행 중인 OTT Ranking 작업 중 확인한 정보인데, 보시다시피 성능 점수를 97점까지 받을 수 있게 됐다. 아마 한국에서 구글 검색의 지위보다 영어권에서 구글 검색 활용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데다, K-OTT 관련 콘텐츠를 담고 있으니 영문 웹페이지에 빠른 속도로 영어권 방문자들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워드프레스가 전세계적으로 무려 30% 이상의 웹페이지를 공급하는 플랫폼이다보니 수 많은 플러그인들이 있고, 그간 내가 고민했던 많은 기능들이 속도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블록'으로 만들어진 플러그인들로 매우 빠르게 대체되는 중이다.
난 이제 정말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다. 한국에서 개발자 필요 없다고. 블록과 플러그인들 이용하면 내가 혼자서 다 만들 수 있다고. 다시는 개발자 뽑아서 돈 버리기 싫다고.
- [공지] 12월 1일부터 구글SEO 최적화된 웹페이지 기반 유료 서비스가 시작됩니다 - 파비리서치 (pabi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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