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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AI 설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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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months
Real name
Keith Lee
Bio
Head of GIAI Korea
Professor of AI/Data Science @ SIAI

2020년 겨울 무렵이었습니다.

모 정부 출연 기관에 있던 학부 동기가 국내 모 대학 교수에게 온라인 여론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을 만들어 달라고 그랬다가 사기 당했다면서 거기에 떼이고 남은 잔금으로 같은 시스템을 만들어 달라고 연락이 왔었습니다.

전 개발자들을 하나하나 내 보내고, 더 이상 한국에서 IT사업 하지 말자, 그냥 어디 해외에 조용한 곳에 데이터 과학 가르치는 교수나 하자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친구 부탁을 차마 거절하기가 뭣해서 1달 만에 뚝딱 그들의 최소 조건은 충족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줬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쓰는지를 아예 모르고 눈에 보기에 화려해 보이는 그래프만 윗선에 보고하는 용도로 쓰더군요.

1달 개발비 밖에 못 받는, 이 돈 받고 왜 하나 싶은 프로젝트이긴 했지만, 친구네 조직 사정을 보니 너무 딱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까지 3년 남짓 1달 짜리 특강 코스로 '데이터 과학'을 가르쳤던 학생들이 저한테 '자문'을 해 달라고 보내주는 자료들을 보니 더 심각하더라구요.

재무제표를 주성분분석(PCA)으로 '분석'했다면서 자본과 부채 계정이 서로 직각으로 나오는 PCA 그래프를 보내주면서 여기서 어떤 '직관(Intution)'을 뽑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메일을 받았는데, 좀 미안한 표현이지만 암 걸릴 것 같았습니다.

제가 평소에 PCA를 비롯한 머신러닝, 딥러닝 교과서에 나오는 계산법들이 모두 데이터의 특성을 찾아내는 도구에 불과하고, 어떤 Intuition, Implication을 갖고 있는지 모르면 배운 지식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재무제표에서 자본과 부채라는 너무 뻔한 대표 계정 2개가 직각으로 나오는게 지극히 당연한 상황인 걸 PCA를 쓰면 마치 뭔가 더 대단한 것이 있는 것처럼 완전히 황당한 방식의 이해를 갖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한국에 귀국해서 2018년부터 2024년까지 만으로 7년간, 저런 사례를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이 봤습니다.

그들이 듣고 화가 나겠지만, 제 솔직한 감정은 아프리카 토인들에게 현대 의학을 설명해줘봐야 부두교 의식으로 되돌아가는 걸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학들이 도대체 뭘 가르치나 싶어서 대학들의 교육 자료도 구해봤습니다. 저도 학부 때 수업들이 재미가 없었습니다만, 제가 졸업하던 2008년이나 2020년이나, 따분하게 가르치는 건 똑같더군요. 저렇게 수식만 배우니 수학을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고, 그래서 이상한 이해를 갖고 저한테 이상한 질문이나 하다가, '화려하고 멋있는' 내용이 안 나오니 너도나도 욕만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네 기관에 있던 '데이터 팀' 관계자 분들이나, 제 1달 수업을 듣고 갔던 애들이나, 외부에서 절 욕하고 있는 분들이나, 모두 다 기초 훈련이 전혀 안 되어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고, 어차피 해외 어느 대학에서 조용히 교수나 하고 있거나, 내가 직접 대학 만들어서 교수하고 있거나 별 다를 게 없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대학을 설립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SIAI 설립 이야기'는 설립 전부터 제가 한국 시장에 느낀 안타까움, 분노 같은 감정과 더불어, 어떤 고난의 과정을 겪었는지 최대한 글로 옮겨놓은 e-Book입니다.

이제 더 이상 한국에서 SIAI를 운영하지 않습니다만, 3년 남짓 받았던 학생들 중 논문을 무사히 쓰고 스위스 대학의 학위를 받아가게 된 학생들의 일취월장한 실력을 보면서 흐뭇한 감정이 꽉~ 차 오릅니다.

한국어로 옮겨놓은 학생들의 논문 후기(?)를 보시면 조금은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제 벅찬 감정을 잘 표현해주는 학생 한 명과의 대화로 책 서론을 마칩니다.

저: 처음에 들어야되는 STA501, STA502 듣고 도망갔다가 1년 후에 다시 들어왔잖아요? 왜 왔어요? 그냥 도망가고 말지ㅋㅋ

학생: STA501 듣고 나니까 학부 때 이걸 먼저 듣고 경제학, 통계학, 공학 같은 수업 들었으면 그런 수학을 왜 배우는지 이해가 됐을 것 같다 싶더라구요. 다른 사람들한테도 일단 학부 1학년 때 먼저 STA501 듣게 하고 학부 시작해라고 하고 싶어요

저: ㅋㅋㅋ 그럼 1년 동안 수학 공부하고 왔어요? 밖에서 무조건 MSc AI/Data Science 아니면 절대 안 간다고 뻣뻣하게 있는 사람들처럼?

학생: 사실 별로 수학 공부는 못 했고, 잠깐 다니면서 맛보기만이라도 하고 나니까 회사에서 엉망으로 돌아가는게 대충은 보이고, 딥러닝 마니악들 보면서 왜 그렇게 화내시는지도 이해가 되고, 맛을 보니 힘들어도 배워야 나도 저렇게 안 되겠다 싶기도 하고....

참고로 이 학생은 밖에서 SIAI를 욕하는 분들이 가장 무시하는 MBA AI/BigData의 Business Track 학생입니다. 1년 후에 다시 들어오면서 현실을 깨달은거죠. 자기가 수학을 못한다는 현실? 음.... MSc 아니면 시간 낭비, 돈 낭비라는 표현을 각종 커뮤니티에서 많이 봤었습니다만, 저 학생은 SIAI 교육의 핵심이, 아니 이런 종류 교육의 핵심이 '많은 수학 지식'이 아니라 '수학을 현실에 쓸 수 있는 사고력'이라는 걸 그 도망갔던 1년 간 깨달았기 때문일 겁니다.

제가 더 대화를 고른 이유는, 사실 한국의 모든 대학생들에게 STA501, STA502를 먼저 듣고 난 다음에 학부 고학년 수업을 들으라는 이야기를 똑같이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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