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서울대 A교수의 명예훼손 소송과 김박사넷의 승소
서울대 A교수, 김박사넷에 올라온 평가에 명예훼손 소송했지만 패소
법원, 개인정보의 공익성 판단할 때 김박사넷 위법 행위 아냐
교수 사회, 제대로 연구하면 김박사넷 D급 평가 받는다 불만 제기
연구 역량보다 학생들 취직 지원하는데 더 집중해야하는 대학원 세태에 대한 지적도
같은 사건 계속되면 국내 귀국 고민하는 교수들 늘어날 것이라는 불만도 나와
지난달 17일, 대법원은 서울대 A 교수가 ‘김박사넷’ 운영업체 팔루썸니를 상대로 낸 명예훼손 및 인격권 침해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1달 동안 서울대 A교수가 다른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이달 17일 대법원 판결이 최종 확정됐다.
김박사넷은 국내 주요 대학의 이공계 대학원 재학생과 졸업생이 교수와 연구실에 대한 평가를 남기고 공유하는 사이트다. 학생들이 교수의 인품, 인건비, 논문 지도력, 강의 전달력, 연구실 분위기를 평가해 각각 A+부터 F등급까지 평가한다. 과거 해당 연구실을 거쳐간 학생들의 평가를 기반으로 교수들에 대한 학생들의 지원 역량을 판단하겠다는 것이 서비스의 취지이지만, 교수의 실질 연구 역량보다 학생들에 대한 서비스를 더 강조한다는 비난을 받아온 바 있다. 학계에서 이번 판결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최근 들어 대학원이 연구의 요람이라기 보다는 학생들의 취직을 위한 자격증 제공처로 격이 추락했다는 평가를 받던 중에, A 교수가 연구 역량에 초점을 맞추고 연구실을 운영해왔었기 때문이다.
직장 평가 서비스와 교수 평가 서비스
학계 관계자들은 이공계 연구실이 사실상 교수들이 운영하는 소규모 컨설팅 업체와 유사하게 돌아간다는 측면에서 직원들의 직장 평가 서비스와 동일한 선상에서 김박사넷을 평가한다. 그러나 기업 평가에 직원의 복리 이상으로 기업의 자산 규모, 사회적 영향력 등이 중요하게 평가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수 평가에 대학원 생들을 위한 서비스 외에 교수들의 연구 역량, 학계에서의 위치 등에 대해서는 평가가 부실한 것이 김박사넷의 문제점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서울대 K모 자연대 교수는 미국 P모 명문대에서 박사 과정을 밟은 후 지난 20여년간 뛰어난 연구 업적을 쌓은 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학생들의 연구 역량을 P모 명문대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지나친 욕심 탓에 연구실 학생들이 졸업을 제때 못한다는 악명도 널리 퍼져 있는 교수다. 미국 대학들은 연구 역량이 부족하면 아예 박사 과정에서 퇴출시켜버리거나, 스스로 학교를 떠나도록 만드는 구조인데, 한국은 어지간하면 다 학위를 받아서 나갈 수 있도록 빡빡하지 않게 학위 과정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 폐해 중 하나다.
국내 명문대 이공계 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거친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국 학부 2학년, 미국 학부 3학년 AI 및 데이터 과학 과정을 가르쳐 보면서 확신을 갖게 된 부분 중 하나로, 한국 대학들의 교육 수준이 매우 낮고, 그런 상태에도 불구하고 정부 지원금이 안정적으로 나오는 덕분에 내부 개혁의 목소리가 거의 없다는 속사정을 들 수 있다. 한국 명문대 대학원을 마친 학생들 중 영미권 대학의 학부 2-3학년 과정에서 F학점을 받지 않은 경우는 절반에 채 못 미치는 상황이다. 기초 학문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연구가 제대로 진행됐을리 없지만, 그런 학생들을 학교에서 쫓아내봐야 김박사넷에서 혹평을 받기만 할 뿐이다.
학생은 고객일까? 수련을 받는 제자일까?
서울대 A 교수의 손해배상 고소 사건은 K 교수에 대한 김박사넷의 저질 비난과 함께 국내 교수 사회에서 수 년간 화두 중 하나다. 영미권 명문대에서 혹독한 경쟁을 뚫어가면서 박사 과정을 밟은 후, 교수직이나 연구직, 혹은 기업 연구소 등의 자리를 포기하고 한국의 명문대 교수 자리에 기대를 갖고 귀국한 교수들 입장에서, 자신들이 다녔던 한국 명문대와 2020년대 한국 명문대의 대학원 학생 수준 차이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일부 연구에 손을 놓고 싶어 한국으로 귀국하는 교수들도 있지만, 최근들어 많은 전공들이 출판 예정 논문(학계에서는 ‘파이프 라인’으로 불림)이 탄탄한 학자들에게만 한국 교수직 제안을 낸다. 자신들의 국내 대학원 시절을 생각하고 우수한 학생들의 연구 도전을 지원해주면서 한국 정부의 각종 지원금을 이용해 더 많은 연구 성과를 내고 싶은 교수들이 귀국이라는 어려운 결단을 내리지만, 정작 2020년대 한국 대학원생들은 빨리 졸업장을 받아 나가서 대기업들에서 높은 연봉을 받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태반이다.
‘염불보다 잿밥’에 더 관심 많은 학생들에게 한국식 ‘물렁한 교육’이 아니라 영미권의 ‘제대로 된 교육’을 하려는 교수들은 백안시 당하는 대상이 된다. 한 서울 시내 대학의 노(老) 교수는 ‘잘 가르치면 학생들이 안 오죠’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학생들의 교수 평가가 교수의 연구 역량과 학계의 명성, 학생들의 역량을 끌어올려주려는 열정으로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대기업에 높은 연봉으로 하루 빨리 취직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에 맞춰져 있다는 것을 잘 설명해주는 표현이다.
“이렇게 욕이나 먹을거면 대학원생 왜 데리고 있냐?”
A 교수에 대한 이번 판결이 알려지면서 교수 사회에서는 과거 B급 대학에서나 볼 수 있었던 사건이 서울대에서도 일어났다는 평가들을 내놓는다. 더 이상 서울대도 연구를 위한 도전 의식, 열정을 가진 학생들이 대학원을 가는 것이 아니라, 속칭 ‘스펙 쌓기’의 일환으로 대학원을 선택하는 비율이 부쩍 늘었기 때문으로 해석한다. SKYPK 군으로 분류되는 한 명문대 교수는 김박사넷에 올라온 자신에 대한 평가와 대학원 생들의 댓글을 보면서 “이렇게 욕이나 먹을거면 대학원생 왜 데리고 있냐?”라는 불만을 표현하기도 했다.
필자의 대학원 석사 시절, 졸업 논문 주제를 못 잡아 애를 먹다가 하나의 주제를 골라서 지도 교수님을 만났는데, 교수님이 듣다가 화가 났는지 말을 자르더니, “We are not stupid, right? If we were stupid, we shouldn’t be here, right? (우리 바보 아니지? 우리가 바보였으면 여기 있지도 않았겠지?)”라며 내 논문 주제가 얼마나 한심한지를 지적해 주신 적이 있었다. 한 때는 그 교수님에 대한 불만이 많았지만, 10년도 더 지난 지금은 그 교수님이 얼마나 뛰어난 학자인지, 왜 그런 분의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는 어리석은 짓을 해 놓고는 이해도 못했는지, 왜 그렇게 조잡한 논문 주제 밖에 못 갖고 갔을까는 자책에 부끄러움을 금할 길이 없다. 대학원을 다닐 자격이 없었던 것이다.
교수 사회에서는 인구 감소로 대학 교수 자리가 빠르게 줄고 있는 것과 더불어, 서울대 정도의 명문대 교수로 귀국해도 연구 역량을 전혀 갖추지도 못한 인력들에게 김박사넷에서 놀림감이나 되는 상황이 계속 되면 굳이 한국 귀국을 고민하려는 교수들이 있을지에 대한 불만들이 제기된다.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여러 종류의 괄시를 받지만 모국의 저급 인력들에게까지 놀림감이 되는 것을 감수하고 귀국을 선택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필자 역시도 국내 학생들을 대상으로 AI 및 데이터 과학 교육을 하던 중, 데이터 처리를 위해 경제학계에서 쓰던 계량경제학적 방법론 일부를 설명했더니 ‘AI 안 가르치고 경제학 가르친다’는 터무니 없는 소문이 퍼지는 것을 보면서 굳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교육을 계속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대학원이 하루 빨리 졸업장을 받아 대기업에서 더 고액 연봉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는 자격증이 아니라, 진정 한국의 연구 역량을 키우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더 늦기 전에 정부의 대학원 지원 체계를 뜯어 고치고 대학원 생들의 수준을 높일 수 있는 개혁안을 내야한다. 10년, 20년간 젊음을 쏟아 익힌 학문 연구에 매진하는 학자들이 조롱의 대상이 되다못해 손해배상 소송까지 치뤄야하는 세태는 대학원 학생 숫자로 지원금을 결정했던 교육부 정책이 얼마나 큰 부작용을 낳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