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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중국에 모든 산업에서 본격적으로 추월당하기 시작했다는 표현도 나오고, 아예 완전히 역전됐다는 인식도 곳곳에서 보인다. 이미 오래 전부터 예언됐던 사건이 좀 늦게 왔을 뿐인데, 재역전 하기 위해 인력을 키우고 자본을 모으는 이야기는 보이질 않고, 영업이익이 줄어든 기업들을 약올리는 것 같은 기사들만 보인다. 정치권이 국가 발전, 민생 안정 같은 주제들을 생각이나 하나는 이야기를 하던 중에 모 정당의 사무직 관계자에게 들은 표현이다.
- 난 당 대표실에도 들어가봤잖아, 그 사람들 그런 (나라의 미래, 민생 안정...) 생각 안 해, 다음 총선에 공천 받는지, 당선될 수 있는지, 대통령 후보로 누가 뜨고 어떻게 줄서야 되는지... 그런 생각만 하는거 너도 알거 아냐
위의 두 가지를 종합하면, 나라가 위기에 빠지는데 정치권이나 경제인이나 거기다 언론인까지 문제 해결에 관심도 없고, 그저 당장 자기에게 이득이 되는지 아닌지 여부만 따지고, 깊은 고민 없이 남들이 하는 이야기를 앵무새처럼 받아쓰기만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18년부터 한국 대학과 IT업계의 AI/Data Science 교육 현실을 보고, 그 덕분에 국내 공대의 교육 수준을 알게 되면서, 중국에 추월 당하는 일이 곧 터질 것이라는 예언 아닌 예언을 이미 몇 년째 해 온 사람 입장에서 그 예상이 현실이 됐다고 모두가 떠드는 시대가 되니 'I told you so'라고 이야기 하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움이 뒤섞여 마음이 복잡하다.
산업구조 고도화에 실패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아쉽지만 이제는 피를 흘리고 뼈를 깨는 개혁을 몇 년간, 심하면 몇 십년간 하지 않으면 재역전은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아래는 힘들더라도 반드시 해야하는 개혁인데,
- 대학: 영미권 대학들처럼 수준 미달 학생들을 사정없이 쫓아내도록 학제를 강화해야 한다
- 정부: 언론과 국민 눈치 볼 것 없이 초A급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만 딱 골라서 제대로 된 교수 배정, 전폭적인 금전적인 지원을 해줘라. (아니면 아예 발을 빼거나) 반면 학생 안 들어오는 대학은 문을 닫을 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
- 언론: 모르면서 기업들이 내는 보도자료 받아쓰기는 이제 좀 그만하자. 정치는 몰라도 경제와 기술은 선동에 동원되면 사기 협조범이 된다
- 기업: 당장 2류 인력들을 'AI인재'로 포장하는 집단 카르텔을 벗어던지고 초A급 인재에게만 돈을 써야 한다. 그래야 해외 나간 한국 인재들이 귀국을 진지하게 고민한다
아마 현실에서 위의 제안들은 전혀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권력 카르텔이 느끼기에 현실성이 없는 제안들이기 때문이다.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에서 허생과 이완의 대화가 적절한 비유가 될 것 같다.
30년 쯤 전에 IMF 구제금융이라는 경제 위기를 겪은 직후, 문재인 정권에서 중기부 장관은 지낸 바 있는 홍종학 교수님이 '한국은 망한다'라는 책을 내신 적이 있다. 그 때 언급하신 한국 기업, 정부, 대학, 언론의 문제점은 30년이 지났는데 하나도 고쳐진 게 없다. 위의 4대 개혁 내용도 홍 교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의 2020년대 버전에 불과하다. 홍 교수님이 중기부가 아니라 재경부 장관, 아니 심지어 대통령을 했어도 바꾸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본다.
개혁은 어렵다, 다들 자기 살기 바쁘니까
왜 안 될까?
당장 대학들은 등록금으로 대학이 운영되는데 학생들을 쭉쭉 자르면 재정 파탄이 일어날 것이다. 한국 대학과 전공 교수들이 어떻게든 정원을 늘리려고 노력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영미권 주요 대학들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정부가 지원을 해 줄거라면 학생 숫자가 아니라 교수들의 논문 숫자, 특히 글로벌 최상위권 저널에 등재된 논문 숫자, 졸업생들의 수준 등을 놓고 지원금을 줬으면 사정이 조금은 달랐지 않을까?
정부라고 쓰고 정치인과 공무원으로 나눠 읽은 상태에서, 정치인은 언론과 국민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 다음 선거에서 당선이 안 된다. 여당은 야당이 되고, 지원금이 줄어서 몹시 춥다. 국민이 사실상 자신의 밥줄인 정치인 입장에서 기자들이 비난하는 기사를 낼까봐 조마조마한데, 지역구 찾아갔더니 주민들이 돌을 던질 정책을 강행하자고 할 수 있을까? 위의 개혁은 당신네 자식은 SKY, SKP 같은 명문대를 갈 자격이 없습니다, 대학 갈 자격도 없습니다, 어떻게 운 좋게 들어갔지만 공부를 못하니 퇴학처리 됩니다 같은 정책인데, 학부모들 표가 우르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나? 우리나라가 다시 한번 IMF구제금융을 맞지 않는 이상 정치인들이 총대를 멜 일이 없는 정책이다. 결국 모양만 그럴듯하게 갖추고 내실은 없는 대학 교육 과정을 정부가 승인해준 현재 상태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
공무원들은 고위직이나 현장직이나 전문성이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막대한 국민 세금을 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눈치를 봐야 한다. 당장 급여는 적어도 퇴직 후에 연금 받는 것만 믿고 하루하루 시간을 때우는 인력들이 압도적인 다수인데, 그런 공무원들에게 모르는 일, 어려운 일, 욕을 먹어야 하는 일은 휴직계를 내고 피해가야 하는 일, 타 부서 전직을 신청해야 하는 일이다. 눈치 안 보고 일을 진행하다 연금 떨어지면 어쩌지?
언론은 수신료에 기댈 수 있는 방송사를 제외하고는 종이 신문 구독이 검색포털이라는 이름의 무료 유통 채널로 대체되면서 기성 언론 카르텔이 기업들의 광고비 받아내는 것 이외에 달리 수익을 창출할 방법이 없는 집단이 됐다. 인터넷의 발달이 낳은 반대급부로 지난 10년간 전문지라고 부를 만한 곳들이 많이 생겨났지만, 한국 독자들은 유료 구독으로 그런 언론을 응원하지 않는다. 더 전문성을 띤 증권사 애널리스트 보고서도 유료라고 하면 안 읽고, 거꾸로 전문성이라고는 없는 사기꾼 조직인 '주식 리딩방'에는 큰 돈을 내는 후진국형 소비 성향을 띤 국민들이 독자인데 언론인들 어쩌겠는가? 광고비 내는 기업들의 목적에 맞는 기사를 내면서 수익성을 확보하고, 정치권에 편들기를 하면서 집단주의에 매몰된 독자를 확보하는 것이 전 세계 언론들의 공통된 생존 코스라는 것이 최근 미국 대선 보도에 편들기와 편들기 포기를 선택했던 폭스 뉴스, CNN, WP 같은 글로벌 최상위권 언론사들의 재무제표에서 잘 드러난다.
그나마 개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경제 주체가 기업이다. 다만 이런 개혁은 현장 직원들은 커녕 임원 급에서도 불가능하고, 기업 오너들이 욕을 먹을 각오를 하고 직접 나서야 한다. 'AI인재'라고 뽑아놓은 '실제로는 IT개발자'들에 불과한 인력들을 내보내려고 하면 아마 판교 일대의 IT기업들처럼 노조를 만들고, 상여금을 더 달라, 휴가를 더 달라며 떼를 쓰고, 심지어 길거리에서 데모를 할 것이다. 돈 뜯어낼 것 없는가 싶은 언론사들이 노조의 이야기를 충실히 담아 기사로 내줄텐데, 그럴 때면 한국에서 계속 기업 운영해야 하나는 현타가 진하게 올 것 같다.
기업들은 언제나 인재를 뽑아서 성장하고 싶다, 인재가 없을 뿐
기업 오너 분들 입장에서도, 고급 인재를 뽑고 싶지만 정작 고급 인재를 선별할 수 있는 인사팀도 못 만드는 것이 현실인데, 고급 인재를 제대로 알아내서 뽑는 건 더더욱 언감생심이라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다. SIAI라고 스위스까지 가서 대학을 설립해보고, 한국에서 명문대 석박 출신들까지 받아서 교육해봤지만, 정작 영미권 최상위권 대학의 학부 2-3학년 교육 수준도 못 따라오는 인력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기업에서 어떤 인력들을 데리고 연구팀을 운영하고 있을지 충분히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렇게 국내 인재 양성 시스템이 후진국형으로 돌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찾아왔던 학생들 중 일부는 기업들이 바로 즉시 전력으로, 아니 초S급 대우를 해 줘야 하는 인력으로 1-2년 만에 탈바꿈이 됐다. 당장 SIAI 학생들이 쓴 졸업 논문을 국내 최상위권 대학의 글로벌 저널에 논문 등재가 가능한 초A급 교수들에게 갖고 가 보시라. 한국 같은 교육 불모지에서, 직장까지 다니면서 1년, 2년 만에 저런 논문을 써 냈다고 그러면 눈이 휘둥그래 질 것이다. 이미 '도대체 어떻게 가르쳤냐?'는 질문을, 심지어 '사실은 네가 써 준 거 아니냐?' 질문을 수도 없이 들었다. 그 교수들이 데리고 있는 대학원 생 중에 이만큼 수준 높은 학문적 도구를 이용해 기업 문제를 풀어낸 경우가, 아니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만한 경우도 없기 때문이다.
기업 관계자들 대부분이 학문적 도구를 이용해서 기업 문제를 풀어낸다는 것 자체를 이해도 못하고, 학문은 상아탑의 도구라고만 생각하는 것이 한국 기업에 팽배한 인식이다. 0/1로 구분되는 학문적 훈련도에서 1로 성장한 인재들이 기업 문제를 풀어내는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0인 인재들로 해 놓은 결과물들을 보다보니 그런 편견이 고착화 된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한국 교육 자체가 그런 사고력을 길러주질 않고 있기 때문에 글로벌 시장에서 훈련받고 살아남은 소수들이 시장을 '계몽'하는데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이다.
F 학점 받고, 논문 못 쓰면서 다 도망가버리고 고작 졸업생 10명 남짓, 졸업하고 싶은데 논문 못 써서 괴로운 10명 남짓만 남았지만, 혼자서 대학 만들고, 교육 프로그램 구성하고, 시기·질투 하는 분들에게 온갖 음해에 시달려가며 만들어 낸 성과라고 생각하면 실패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시기·질투와 황당한 음해만 없었고, 학생들 기본기만 좀 더 탄탄했었어도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많았는데, 자본 지원을 비롯해 여러 조건이 더 갖춰졌었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뛰어난 성과를 냈을 것이다. 최소한 당신네 회사에서 잠재력만 A급인 채 썩어가고 있는 인재의 잠재력을 현실화 시켜주고, 그걸로 회사가 몇 년, 몇 십년간 이득을 볼 수도 있었다. 그렇게 초S급으로 성장한 인재들을 못 쓰면 대학 교수로 떠나고, 해외 기업들에 스카웃 되어 버릴 것이다. 난 살아남은 인력들이 스카웃 되도록 꾸준히 도와줄 생각인데, 놓치지 않게 잘들 관리하시기 바란다.
중국은 그걸 정부와 대학과 기업이 뭉쳐서 해 냈으니 저렇게 앞에서 달릴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