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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생성형 AI가 뜨면서 신입 개발자, 혹은 실력이 부족한 개발자들을 안 뽑는다는 이야기가 많다.
진작에 개발팀을 없애고 모든 개발을 내 손으로 직접하게 된 내 입장에서 이젠 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기는 하지만, 생성형 AI가 주는 노동시장 충격이라는 관점에서 언론에서 평가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크게 2가지 능력에 대한 요구가 눈에 띄게 강조된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 단순 개발이 아니라 시스템 설계, AI/DS 지식 등등 올라운드 멀티 플레이어를 요구한다
- 회사의 다른 업무들과 연계할 수 있는 의사 소통 능력이 매우 강조된다
회사마다 경험치가 다르겠지만, 내 입장에서도 매우 많이 공감이 되는 이야기다. 난 위의 2가지를 묶어서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B급 (이하) 인력의 종말
위의 주제로만 다양한 실타래가 나올 수 있겠지만, 내 경험에 국한해서 보자.
난 어지간한 개발은 라이브러리, 오픈 소스를 써 버리고, 우리 회사의 핵심 역량을 잘 보여주는데만 초점을 맞추는데 인력을 쓰고 싶었다. 실제로 모든 개발자를 내 보내고 그렇게 운영 중인데, 우리 개발팀들은 그렇게 WordPress, Drupal 같은 CMS, Moodle 같은 LMS, Odoo 같은 ERP를 쓰는 것에 불만이 많았고, 쓰자고 설득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PHP나 Python 같은, 국내 기업들이 주로 쓰지 않는 백엔드 언어 위주로 돌아가고 있고, 무엇보다 그런 오픈 소스들을 한국 기업들이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다 내보내고 나면, 나 혼자서 우리 회사의 다양한 오픈 소스들을 혼자 힘으로 관리할 자신이 없더라. 예를 들면, PHP로 만들어진 CMS, LMS의 문제를 고치려고, 혹은 우리 회사에 필요한 형태로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을 할려고 할 때 코드 전체를 다 뜯어봐야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다.
WordPress를 쓰던 시절, 인터넷 여기저기를 뒤지면서 본의 아니게 WordPress가 PHP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내가 고쳐 써야 하는 명령어들은 뭔지를 하나하나 알게 되면서, WordPress 처럼 설명 자료만 많으면 굳이 개발 인력이 필요없을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조금씩 생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오픈 소스들이 제공하는 방대한 설명서를 다 읽고 이해하는데 막대한 시간을 쓰는데 거부감이 강했는데, 챗GPT 류의 고급 검색(?)이 가능해지면서 내 작업 방식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내 문제를 풀어준 Stackoverflow의 답변을 찾는데 많은 시간을 쓴 다음, 실제로 내 서버에도 적용되는지 여부를 점검하고, 추가적으로 정보를 더 찾는데 다시 많은 시간을 썼다. 검색을 잘 할 수록 시간이 단축됐던 것이다.
요즘은 챗GPT가 (좀 거짓말을 잘 하니까) 가르쳐 준 답이 실제로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에 많은 시간을 쓴다. 검색 시간은 크게 줄었다.
즉, 내가 판단할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사소한 업무들은 모두 챗GPT가 찾아준 정보들을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
말을 바꾸면, 내가 판단 능력을 갖춘 고급 인력이라면 사소한 일에 쓸 시간을 크게 아낄 수 있게 됐다.
반면 내가 판단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런 수 많은 문제들을 챗GPT에게 답을 찾다 몇 주의 시간을 날린 경우도 많다.
결국 내가 얼마나 잘 알고 있느냐에 따라 개발자를 안 뽑아도 되는 회사로 운영할 수도 있고, 개발자 없이는 아무 것도 안 되는 회사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A급 전문 인력이면 시간 낭비가 될 만한 일들은 자동화 시스템을 써서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데, 굳이 B급 이하 보조 인력을 뽑고 싶어질까?
회사 돌아가는 거에 관심 좀 가져줬으면
개발자를 뽑으면서 또 하나 가졌던 불만 중에는 회사 돌아가는 거에 너무 무관심하다는 거였다. 자기는 기술 인력이기 때문에 회사의 다른 사업부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없고, 그냥 자기 방식대로 하는 경우들이 빈번했다. 항상 관심을 가지는 겨우도 있었지만, 개발자 직군이 다른 직군 업무를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다보니 내버려 두고 있으면 협업이 아예 진행이 안 되더라. 계속 두 팀의 대화에 끼어 들어가야 하니 시간 관리가 너무 힘들었다.
개발자가 다른 부서 사람들을 좀 이해하거나, 혹은 다른 부서 사람들이 개발자들 업무 내용을 좀 이해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희망 사항을 내비추면 둘 다 되는 사람이 어딨냐는 핀잔만 들었었다.
그 때 했던 농담 중엔 내가 1명이 아니라 3명, 5명이었으면 A, B, C, D, E가 모두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다 아니까 손 쉽게 협업이 되지 않겠냐였는데, 개발팀을 다 내보내고 이제 만 2년이 다 되어 가는 요즘, 이제 조금만 부지런해지면 나 혼자서 A, B, C, D, E를 다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가 됐다. 오픈 소스들을 쓰면서 사실상 외주 개발자 몇 십명을 쓰는 것과 같은 와중에 우리 회사 전용으로 커스터마이징만 내가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 오픈 소스들의 숨겨진 기능을 익히는데 시간이 걸릴 뿐이다.
SIAI 학생들 중엔 혼자서 다 하고 있다니 날 더러 '미X다' 같은 표현을 쓰기도 하던데, 여러 팀에게 설명해주는 시간과 에너지를 아끼기만해도 몇 명 분의 일을 줄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이제 채용에 의욕이 생기질 않는다.
인도에 외주 개발자를 몇 번 써보면서도 깨달은 것이 있다.
많은 인도 개발자들이 한국 개발자들처럼 요구 사항을 이해할려고 하지 않고 그냥 시키는대로 갖다 붙이기 바쁘다. 화상으로 여러번 이야기를 해주다가 짜증나니 그냥 직접 고쳐버리는 일들이 많았는데, 프리랜서라는 사람들이 다 저렇지 않겠냐, 뭘 잘해주고 싶겠냐 싶어서 욕심을 많이 버렸었다.
그러다 우리 직원들 인사 평가 해 놓은 과거 자료들을 보니, 과거에 우리 회사를 다녔던 개발자들 태도랑 겹치는 부분이 너무 많이 보이더라.
- 회사 돌아가는거에 관심없고
- 자기가 하고 싶은 개발 아니면 안 하고
- 요청 사항은 자기 스타일로 해 놓고 퇴근해버리고
그런 프리랜서 쓰면서도 굳이 이럴꺼면 좀 힘들어도 챗GPT 쓰고 혼자서 해야겠다 싶었는데, 앞으로 다시 개발자 채용했는데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 같다 싶으면 굳이 개발자를 채용하려고 할까?
몇 년 지나지 않아 코드 리뷰해주고, 설명해서라도 인력 키워주겠다는 개발 팀이 있으면 월급 안 받고도 일하겠다는 사례가 분명히 나올 것이다.
이미 사다리는 걷어 찬 상태기 때문이다. 사실 고급 수학, 고급 시스템 설계가 들어가지 않은 어지간한 코드는 챗GPT가 코드 리뷰 더 잘하는 시대가 되기도 했다.
A급 아니면 안 뽑는 시대가 올 것이다
예전에 모 대학 커뮤니티에서 우리 회사 욕을 하는 글을 보던 중에 그 대학 재학생으로 보이는 분이
보나마나 수학 못한다는 이야기겠지, 저딴거 알 필요도 없고, 코테(코딩 테스트)만 통과하면 된다
라는 댓글을 달아 놓은 걸 본 적이 있다. 그 커뮤니티를 보여줬던 우리 회사 인턴 직원이 민망한 표정을 짓더라.
그 분을 뽑았을지도 모르는 회사 오너에게 묻고 싶다. 챗GPT가 기본 코딩을 다 처리해주는 시대가 왔는데, '코딩 테스트'만 통과하면 된다는 직원을 뽑고 싶나?
한 스타트업에서 뽑은 '데이터 사이언스' 담당 직원이 국내 모 명문대학 석사과정 출신인데, 데이터에 Simultaneity가 있어서 IV를 찾아 정리해줘야 하는 계산을 놓고
GPT-3한테 물어본 방법말고, 돈을 더 써서 GPT-4에 물어보면 정답을 가르쳐 줄 것 같다
고 하면서 엉뚱한 시계열 계산 방법을 들이밀었던 사례를 들은 적이 있다.
SKY로 대변되는 명문대 출신, 명문대 석사 출신들인데, 챗GPT가 가르쳐주는 내용을 판단할 능력도 없는 상태인 것이다.
고급 인력들만 모아놔도 회사를 키우기는 쉽지 않고, 저런 인력을 계속 쓰고 있으면 회사는 망한다.
B급 인력을 뽑아봐야 큰 도움도 안 되고, 챗GPT로 대체 가능해져버리니 A급만 찾고, A급 못 찾으면 나처럼 포기하고 안 뽑아 버릴 것이다.
SIAI, 그거 한국에서 학생은 들어오냐?
우리 SIAI 한국 학생들이 다니는 회사들의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낸 이야기와 더불어 회사의 답답한 사정 같은 걸 자주 듣는다.
한 학생한테는 그렇게 답답하면 논문 몇 개 더 쓰고, 그걸로 지방대 교수 자리 같은 걸로 탈출해라고 한번 충고를 해 준 적이 있다.
SIAI에서 논문 쓰는 훈련을 탄탄하게 받았으니, 어지간히만 써도 3류 수준 SCI 저널에 논문 올리기는 전혀 어렵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방대들 입장에서 가장 귀한 교수가 학생 모집하는 교수와 정부 지원 받을 수 있는 교수들일 것이다. 돈을 벌어오니까. 우리 학생들이 입담이 좋아서 쉽게 정부 지원금을 타내는 경우는 드물겠지만, 모두 논문 쓰는 역량이 갖춰진만큼 SCI 저널 논문은 공장처럼 생산할 수 있는 훈련이 됐다.
학생 수준이 다양하겠지만, 저런 고급 인재를 길러내고, 고급 인재가 되고 싶은 인력들, 잠재력만 갖고 기회를 못 만난 인력들을 키워주는데 초점을 맞추면 굳이 학생 1명을 더 받으려고 광고비를 쓰거나 교육 수준을 낮출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미 SIAI라는 교육 기관은 (한국 기준으로 좀 비싸지만) 매우 높은 수준의 교육을 하는 곳, 제대로 공부하려는 학생의 몇 안 되는 선택지라는 정보가 시장에 깔려 있다는 평가를 몇 번 들었는데, 딱 그 정도가 내가 기대했던 시장 포지션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 필요도 없고, A급 후보군들에게만 알려지면 된다.
왜? A급 아니면 안 뽑는 시대가 오고 있으니까.
어느 커뮤니티에서 빅데이터 분석 기사 되면 취직하기 좋냐고 물으니까 그런 기사도 인정해주는 회사가 있냐는 답변이 달린 걸 본 적이 있다. 이미 시장이 A급 인재 아니면 의미가 없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