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2류 국가, 2류 인재

④노동력의 역량과 지적 인프라의 역량이 낳는 시너지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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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력의 역량은 교육 방식 개선으로 끌어올릴 수 있어
지적 인프라의 한계는 결국 영어권이 아닌 이상 한계가 있을 수밖에
남은 것은 부족한 인프라를 극복하고 고급 지식을 '응용'할 수 있는 학생의 역량

우리 SIAI에서 데이터 과학 학부 과정 교육 중인 학생 하나가 미국 대학들로 석·박 유학을 가고 싶다며 추천서를 써 주실 수 있냐고 찾아왔다. 유학가고 싶어하던 시절에 추천서 한 장 받기 쉽지 않았던 기억들도 있고, 그래도 열심히 공부했던 학생인데 추천서 안에 강조해 줄 수 있는 내용도 있다 싶어서 흔쾌히 승낙을 해 줬다.

단, 조건이 지원자 에세이(SOP)를 한국식으로 쓰지 말 것, 내가 추천서를 써 주는 만큼 아무 대학이나 마구잡이로 던지지 말고, 유학이라는 선택지를 고를 가치가 있는 대학들만 선별하자는 거였다. 내가 고르지 않는 대학들은 추천서를 굳이 안 써 주겠다고 잘랐는데, 오히려 SOP에 코멘트를 해 준다는게 고마운 표정을 짓더라.

그리고 11월 말까지 몇 차례 더 이야기를 나눴는데, 계속 포인트를 못 찾고 있는 것 같아서, 이것도 역시 미국 대학들에 어떤 SOP를 써야 그 대학들이 좋아하고, 전공 별로, 대학 별로 어떤 입시 전략을 짜야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인프라, 혹은 지적 인프라가 터무니 없이 부족하기 때문이구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식으로 수능 시점 점수를 잘 받고, 수행 평가 점수를 잘 받는 방식으로 대학을 가고 있는 한국 학생들이 이런 정보를 갖고 있을리가 만무하기도 하고, 영어 실력이 모자라지 않는다고 해도 어디에서 뭘 찾아봐야 하는지조차도 모르는 상황일 것 같더라.

역량 자체는 SIAI 교육으로 어느 정도 끌어올려놨는데, 즉 $H$의 계수인 $\alpha$는 끌어올렸는데, 여전히 $K$가 심각하게 부족한 나라 출신이다보니 $\beta$ 값도 덩달아 낮은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들의 눈 높이에 맞춘 지원서, 한국인의 영점 조절 잘못된 지원서

석사 졸업 논문 쓰는 레벨에 올라온 학생 하나가 따릉이 이용 데이터의 정상성(Stationarity)를 해결하는데 엉뚱한 계산법을 써서 데이터 자체를 망친 적이 있었다. 지적 받고 고쳐온 내용을 다시 보는데 추천해준 방법 대신 다른 방법을 썼길래 왜 그런 선택을 했냐고 물었었는데, 데이터 구조상 적절치 못한 것 같아서 선택지를 바꿨다는 논리를 들이대더라. 그 데이터에 대해서는 세상 누구보다 본인이 제일 잘 아는 상황이고, 본인의 논리가 맞는지 틀린지를 나한테 검증 받는 자리지, 내가 논문을 써주는 자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나온 질문과 답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미 눈 높이가 한 칸 올라온 상태, 논문을 쓸 수 있는 시야가 잡힌 상태가 된 것 같아서 앞으로 논문의 결과물도 기대가 되는 상황이다.

같은 이야기를 유학 지원하고 싶다던 학생에게도 해 줬다. 그런 눈높이를 갖췄다, 혹은 그런 눈높이를 갖출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는 부분이 지원서의 여러 부분에서 반복적으로 언급이 되어야 그 학생을 뽑아주고 싶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대학들의 교수들과 나는 비슷한 훈련을 받았고, 필드에서 어떤 사고 역량을 갖춘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켜서 사람을 피곤하게 하고, 반대로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인재들이 이 교육을 잘 따라올 수 있는지 비슷한 경험치가 쌓은 사람이다. 우리는 위의 논문 쓰는 학생 사례처럼, 틀린 부분에 대해 따끔한 지적을 받았을 때 스스로의 역량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계기로 삼고, 실제로 그렇게 쑥쑥 성장하는 인재들에 대한 열망이 있다. 그런 분들과는 대화가 즐겁고, 함께하면 무슨 일이건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Cobb-Douglas 함수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는 이야기

나 역시 교과서에서 Cobb-Douglas 함수를 처음 봤을 때는 그 함수가 내 사고 방식의 한 체계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저 하나 풀어야 되는 문제가 눈 앞에 닥쳤을 뿐이었다.

그러나, 변수 하나하나를 내가 어떻게 정의하고, 그걸 어떻게 시장 현상과 적용해서 풀어낼 수 있는지를 따질 수 있는 시험 문제들(예시)을 풀고나니 세상을 보는 눈이 완전히 바뀌게 됐다. 이렇게 작은 수식 하나로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고, 사소한 변수 하나의 변형에 따른 파급 효과, 대응책 등을 모두 내놓는 도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작은 나사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나사들을 잘 조합하면 큰 건물을 하나 지을 수 있는 것과 같은 관점이다.

저 학생한테도 여러번 Cobb-Douglas 함수를 쓰는 예제들을 던져줬었다. 이미 그런 훈련이 끝난 내 입장에서는 특정 사건이 발생했을 때 머리 속에서 이미 관련 사건들이 모두 Cobb-Douglas 함수 구조로 구조화되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지만, 저 학생 입장에서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기 때문일 것이다.

유사한 훈련들을 몇 차례 시험 문제로도 해 봤던만큼, 빠르게 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여러 과제를 던져줬었고, 이번 SOP에도 그렇게 ‘말랑말랑한 사고 역량’을 갖추고 다양한 상황에 사고의 프레임을 응용할 수 있는 인재라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점을 지적해줬다.

특히 아시아 학생들은 대부분 그런 식의 사고 전환이 거의 안 된다. 그걸 잘 알고 있는 미국 대학교의 교수들 입장은 어떨까? 굳이 한국의 이름 모르는 대학에서 자기들이 싫어하는 ‘경영학과’를 나온 학생을 뽑으려고 할까, 아니면 미국에서 깊은 지식은 없더라도 그런 사고 전환 훈련이 태어나면서부터 유전자 레벨에 각인이 된 학생을 뽑으려고 할까?

둘 중 한 학생은 영어가 원어민이 아니고, 미국에서 비자도 없어서 미국의 고액 연봉 직장에 취직할 확률이 매우 낮고, 다른 학생은 영어 원어민이고 미국에서 비자 문제도 없어서 취직할 확률도 높다면?

두 가지 단점을 갖춘 학생과 두 가지 장점을 갖춘 학생, 둘 중 누구를 뽑고 싶을까?

잘못된 이해, 잘못된 결론, 잘못된 지원서

상당한 시간을 들여 설명을 해 줬는데도 여전히 감을 못 잡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데, 돌이켜보면 나 역시도 하나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실제로 내가 쓴 SOP는 지금의 내가 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글이고, 앞으로 10년, 20년이 지나면 그 때 쓴 글은 더더욱 부끄러운 글로 보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쌓인 내공이라는 것이 결국에는 그렇게 나타날 수밖에 없겠지.

저 학생은 한편으로는 한국 사회의 지적 역량 부족을 온 몸으로 맞고 있는 중이라고 봐도 될 것 같다. 주변에 아무도 SOP를 어떻게 써야 한다, 특히 이쪽 전공자들은 어떤 SOP를 좋아한다는 ‘고급 정보’를 들은 적이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Cobb-Douglas 함수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는 SIAI 교육으로 풀어내줬다. 이렇게 $H$의 역량에 해당하는 $\alpha$를 열심히 끌어올려줘도 여전히 $K$가 부족한 한국 사회의 문제, 그 $K$를 제대로 활용조차 못하는 $\beta$의 문제를 혼자 힘으로는 못 풀고 있는 것이다.

아래는 저 학생이 하루 고민해서 갖고 온 내용인데, 생각을 많이 했다는 것이 보이는 반면,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보여서 뭐라고 답장을 해 줄까 잠깐 고민을 해 봤었다. 갖고 온 내용도 좋은데, 남이 던져준 문제를 풀어낸 것보다는 자기가 문제를 찾아서 풀어낸 경험, 설령 그 문제 풀이가 완전하지 못하더라도 자기 발로 직접 생각할 수 있다는 역량을 보여주는 부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지해야 될 것 같아서 결국 깐깐한 지적이 먼저 나와버렸다.

학생들에게 항상 하는 이야기다. 나는 내 눈 앞의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이야기 밖에 할 수 없다. 학생들이 회사에서, 현실에서 만나는 문제들은 시험 문제도 아니고, 내가 풀었던 문제도 아니다. 다만 같은 프레임을 조금만 변형하면 본인들에게 주어져 있는 문제들을 매우 효과적으로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alpha$값을 높이는 교육이 연봉 상승에 적용될려면 결국 주어진 $K$를 응용하는 $\beta$의 도전을 본인이 풀어내야 한다. 그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SOP에 보여줘야 대학 입시를 담당하는 교수들을 설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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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노동력의 역량과 지적 인프라의 역량이 낳는 시너지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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