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SIAI – 2. 여긴 교수님들이 책 밖에 있으신 분들인거 같아서요
어느 MBA 지원자 분과의 인터뷰 중에 나왔던 대화다.
면접관: 왜 굳이 저희 대학원 MBA 프로그램에 지원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지원자: 국내 학교들 대학원 가봐야 교수님들 다들 책만 보신 분들이고, MBA는 애들끼리 토론이나 해라고 그러고 시간만 때우잖아요. 근데 여긴 대표님 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공부 많이 하신 분들이 책 속의 지식이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 계속 이야기가 나올 것 같고, 그런 교수진만 뽑으시려는게 티가 나거든요.
여긴 교수님들이 책 속에 있으신 분들이 아니라, 책 밖에 있으신 분들인 거 같아서요. 진짜 MBA는 이래야 된다는 표현에 깊게 공감해서 여길 찾게 되었습니다.
이걸 공유하는게 너무 자뻑인 것 같아서 좀 부담스럽기는한데, 다른 한편으로보면 국내 대학 교육의 문제점, and/or 국내에서 보는 MBA 교육의 문제점을 너무 잘 짚어낸 대화인 것 같아서 일부러 골라봤다.
Brainstorming – 경험담
비슷한 문제 의식을 가진 대화를 하나 더 공유해보면,
나: 부장님은 Wharton MBA 때 수업 중에 기억나는거 뭐 있으세요?
부장님: 어? 거시? 거시경제? 그게 젤 기억 나는데?
나: 에이, 경영학과 출신에 MBA면 거시경제 깊게 못 들어가셨을텐데요? IS/LM? AD/AS? 통화정책? 재정정책? 뭐 기억나십니까?
부장님: 엉? 그게 뭐냐? MBA가 그런걸 왜 배우냐ㅋㅋ 우린 뭐 배우면 내일 주가 예측에 써보고 맞는지 틀린지 맞추는게 재밌는 수업이었는데?
한국의 학부 경영학과 + 국내 증권사 경력 + Wharton MBA 졸업 + 내 첫 직장 선임이셨던 분과의 대화다. 나중에 알게된 건데, 그 거시경제 강의하는 교수가 나름대로 스타 강사더라. 계속 학생들을 웃기면서 거시경제의 이런저런 주제들을 학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예제를 드는걸로 유명한 교수라고 하던데, U Penn 학부 경제학 출신인 형님 한 분이
딱 MBA가 좋아할만한 강의였지. 우린 TA해서 돈 벌러 들어가는 강의였고ㅋㅋㅋ
라고 평가를 하셨던 기억이 난다.
평가야 사람마다 제각각이겠지만, 거시경제학이라는 주제를 가르치면서 매일매일 주가 움직임에 대한 해석을 재료로 삼아 강의를 한다는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닌데, 책 속에서만 끝날지도 모를 지식을 학부 저학년 수준 수업에서 현실 세계를 해석하는 용도로 풀어낼 수 있는 강의 능력은 절대로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경제학과의 거시경제학 정도 되는 과목은, 특히 학부 수준은 이미 교과서가 수백 종류도 더 나와있고, 가르치는 내용이 크게 바뀌기도 어렵다. 굳이 따지자면 이제 학계에서 아무도 안 쓰지만 행정고시 시험에 계속 나오는 IS/LM 같은건 국내 거시경제학 교과서에서 좀 빠졌으면 좋겠지만, 최소한 논리를 따라가면서 거시경제정책 하나가 전체 경제 시스템에 어떤 채널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공부하는데는 좋은 사고의 도구라는데, (학부 수준이라면) 별로 토를 달고 싶지 않다.
이런 과목을 도대체 어떻게 가르쳤길래 MBA처럼 지식 기반없이 술 파티와 골프 연습으로 2년을 보내는 학위를 마친 분께 그렇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수 있었을까?
결국 지식이라는 것이 현실에 어떻게 쓰이는지 알려줬기 때문에, 그런 사고방식을 체화시킬 수 있는 경험을 심어줬기 때문에 다른 과목은 다 까먹어도 거시경제학은 기억한다는 이야길 하셨을 것이다.
(물론 저렇게 기초 지식 하나도 기억 못하고 주가 맞추는거만 기억하는 졸업생을 만드는건 지양해야지. 제대로 지식 없이 아는체하는 악마를 만들어 내는 교육과정은 직업학교 수준 아니냐…)
Strategy – 교수진 채용 원칙
다시 교수진으로 돌아와서, 일부러 교수진 선별할 때 학교나 연구기관에만 오래 계신분을 피했다. 우리가 무슨 Nature, Science 같은 인류 최고의 저널에 논문 쓰려는 연구진들이 모인 기관도 아니고, (인생의 역량을 싹 다 끌어다 Nature, Science에 1저자 논문 1개만 올려놔도 우리나라 초일류 교수진이 되는 수준으로 인재 풀이 없는 나라에서 무슨ㅋㅋ), 학생들이 배운 지식을 현업에서 제대로 쓸 수 있도록 얼마나 잘 훈련시킬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 교육기관을 목표로 한다.
시계열 데이터 전처리라고 Kalman filter를 배우고, 학교에서 써 보는 거 말고, 현업 뛰면서 Kalman을 어떻게 써서 문제를 해결했는지, 그런 경험을 수업에 녹여낼 수 있으면, 당연히 학생들에게 필요한 Kalman filter라는 지식과 현업 경험치를 같이 가르칠 수 있는 교수님이 된다. (인공지능이 알아서 해 줄텐데 그런걸 왜 배우냐는 다수의 국내 공돌이 박사들은 교수는 커녕 우리학교 학생 자격도 없고ㅋㅋ)
의사들 교육 과정을 보면, 굉장히 현실 친화적 or 임상 친화적이다. 내 치아 교정 결과물 사진을 치과 의사가 강의 자료로 쓰는 수업이나, 암 치료 과정을 수업에 쓰면서 의대생들에게 대장암 전이 방식과 치료 대응을 설명하는 수업을 참관해 본 적이 있다.
Data Science라는 학문이, 필요한 Skill set들을 배우고나면 그걸 어떻게 쓰는지 최소한 입으로 정리한 케이스라도 들어봐야 왜 그런 계산통계학 지식을 배우는지 이해가 되고, 이해력이 부족한 2류 학생들에게는 실제 코드로 돌려본 결과물들을 보여주면서, 어떤 사고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지 알려주는 강의를 해줘야한다. (그것도 안 되는 3류 학생들은….. 그냥 1달 완성 같은 강의나 들어라…)
Execution – 강의 내용
얼마 전, 우리 회사가 속칭 AI를 활용한 외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어느 고객사 시스템에 외부 해킹이라고 결론 내릴 수 밖에 없는 사건을 겪은 적이 있다. 서버의 로그인 ID/PW를 뚫으려고 여러가지 ID를 썼던데, 일반적인 서버에서 흔히 쓰는 ID들 (ex. ubuntu, admin 등등) 뿐만 아니라, 내 이름을 들은 사람이 써 봤을 조합들도 꽤나 많은 숫자로 Log값이 남았더라.
그 URL이 외부에 비공개된 상태라 아무도 모르는 시스템인데, 내가 그 시스템 최종관리자라는 것도 알아냈으면 만만치 않게 많은 정보를 찾아냈다는 뜻이겠지. 짧은 시간동안 1만번 이상의 로그인 시도 기록과 출발 IP가 중국, 동남아 등등 전형적인 VPN 서버를 활용하는 사람들, 특히 특정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주로 쓰는 IP라는걸 하나하나 밝혀내고, 고객사와 이걸 경찰에 의뢰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일단은 보안을 강화한 다음, 한번 더 공격이 들어오면 그 때는 경찰에 공식 수사를 의뢰하기로 결정을 봤었다
대화 끝에, 이번 사건을 MBA 수업 자료로 써야겠다고 그랬더니, 고객사 담당자 분이 어이가 없는지 한참 웃으시더라.
그런데, 내가 어떤 스텝을 거쳐 이걸 해킹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됐는지 함께 따져본 분이다보니, 다시 말을 꺼내면서 수업 방향과 연결지으니 표정이 완전 바뀌더라. 자기도 그렇게 수업 좀 듣고 해킹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는 IT수사관(?)이 되고 싶단다.
예전에 Data Science는 일종의 탐정놀이 같은 작업이라고 그랬었다. 데이터에서 남들이 못 찾아냈던 패턴을 찾고, 그 패턴을 우리의 목적에 맞게 활용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때 수학/통계학 공부를 더 했고, 그걸 응용하는 능력이 더 뛰어나면, 남들이 못 찾아냈던 패턴을 더 잘 찾아낼 수 있게 된다.
학교에서 책 속의 수학/통계학으로만 공부한 사람들에게 “수학은 가성비 안 나오는 지식”이라는 병신력 만렙 인증 섞인 비난 밖에 안 나오거나, 혹은 나는 어떻게 쓰는지 가르칠 생각이 없으니까, 그건 학교에서 가르칠 내용이 아니니까, 배우는 너네가 알아서 어떻게 쓸지 찾아내라, 나는 교수니까 그런거 관심없다는 투의 뻣뻣한 태도만 가진 사람도 많다. 통계학 재밌다는 학생에게 “내가 해 봤는데 별 거 없더라”는 어느 사립 초명문대 교수 이야길 해 주던 그 학교 석사 출신 학생의 넋두리도 기억이 나네.
우리 학교 교육의 가치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지원 결정을 내렸다는 어느 지원자의 말처럼, 그런 지식과 응용을 두루두루 가르치는 교수진을, 혹은 그런 교육 과정을 찾기가 정말 쉽지 않다.
Next steps – 경영학과가 나아가야 할 방향?
평생 Business 전공을 무쓸모 전공이라고 생각하고 무시하면서 살았는데, 위의 생각을 하면서 커리큘럼을 짜고나니, 이런게 정말 진정한 Business 전공이었어야하지 않나는 생각을 하게됐다.
경영학과 교육 과정 대부분은 기초 지식이 필요없는데, 재무관리 관련 컨텐츠는 아무리 학부 과정이라고해도 상당한 기초지식이 필요하다. Asset Pricing 쪽으로 가면 수학, 통계학, 경제학 지식이 학부 수준으로는 터무니 없이 모자라고, Corporate Finance 같은 주제를 가르치려면 그래도 학부 수준의 수학, 통계학, 경제학에 중급회계 수준의 지식이 필요하고, 합병 같은 세부주제로 들어가면 회계 쪽으로 공부할 양이 크게 늘어난다. 거기다 경영학 대학원을 정상적으로 공부하고 있으면 스스로가 Economist by training이 되어야 할 정도로 경제학 대학원생과 거의 동급의 경제학의 학문적 도구들에 대한 지식을 갖춰야 한다. (여기까지 살아남는 경영학과 학생을 거의 못 봤다.)
경영학과에 전공 잘못 왔다고 생각했다가 재무, 회계를 보고 이거라도 하자로 생각이 바뀌는 부류와, 저건 너무 어려워서 못 하겠다는 부류로 나뉜다고 하는데, 너무 어려워서 못 하는 부류 때문에 그간 경영학을 대학 레벨 학문 취급도 안 했었다. (경영학과? 그거 고졸한테 대학 졸업장 주는 과 아니냐?)
재무, 회계 지식 기반으로 경영학의 특정 주제를 깊게 파고들어가면 아무리 학부 수준이어도 필요한 지식이 많아지는 것처럼, Data Science 관련 주제도 어차피 비지니스의 특정 문제를 풀어나가는 작업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경영학과에서 가르치는 커리큘럼으로 만들 수 있겠더라. 아니, 요즘처럼 문송해서 취직 안 되는 시대일수록 더더욱 그런 지식을 가르치는 형태로 경영학과가 새롭게 진화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STEM MBA라는 MBA의 “과학, 기술, 공학, 수학” 버전이 실제로 미국에서 엄청 Hot trend라는걸 학위 과정 만들면서 알게 되기도 했다.)
수준이 팍~ 올라간 강의에 엄청 쫀 학생들이 안스러운 마음에 수준을 좀 낮춰야되는거 아닌가 고민하다가, 이왕 제대로 가르치겠다고 만들었고, 제대로 배우겠다는 학생들이 찾아왔다는 생각에, 위의 생각을 다른 교수님이랑 공유했더니 이렇게 답변 주시더라
Dog나 Cow나 만들어 제공하는 여타 MBA랑 차별성을 둬야한다는 제약이 있어서, 수준을 낮춰서 마냥 학생들을 즐겁게 하는게 우리한테도 좋을게 없죠.
제대로 훈련 받은 교수 인력이 부족해 시간이 좀 많이 걸리기는 하겠지만, 몇 년 이내에 우리는 MBA in AI and Finance 같은, 배경지식 필요도 0인 허접 경영학 말고, 재무, 생산관리 처럼 이미 경영학과에서도 수학, 통계학 공부가 상당히 필요한 기초 학문 위에 수학, 통계학 훈련을 응용하는 Data Science를 얹는 새로운 MBA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 (대학 레벨 기초 교육 수준이 낮은 한국인 학생 대상은 아닐 것 같다. 얼마나 오겠냐…)
계획을 얼마나 빠르게 현실에 옮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계획하는대로만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으면, 아마 국내 탑스쿨 공대들보다 압도적으로 더 수학/통계학을 잘하는 학부 경영학과 졸업생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미 지금 나와있는 MBA in AI/BigData도 이미 국내 공돌이 박사들이 힘들어 하는 판국이군 ㅋㅋ) 어차피 계산 공식 하나 더 외워서 한 문제 더 푸는게 수학을 잘하는게 아니라, 지식의 체계를 구성해서 현실의 문제를 풀어내는데 쓸 수 있느냐 없느냐가 수학 실력을 평가하는 진정한 잣대일텐데, 우리 스타일로 훈련받으면 경영학과라도 수학, 통계학 공부를 엄청 많이 해야 될 테니까.
평생 무시했던 경영학과를 탈경영학과 만드는데 일조하는 인생을 살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ㅋㅋㅋ
Why SIAI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