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공일자리 사업 개편, 실상은 속 빈 ‘간판 갈이’?
사업의 기본 취지 ‘일자리 사다리 기능’ 강화할 것 민간분야 일자리 매칭 증대, 신산업 분야 일자리 발굴도 서울형 뉴딜일자리 사업으로 공공분야 일자리 경험 경쟁력↑
서울시가 주요 공공일자리 사업을 재편한다. 예산의존도가 높았던 기존 공공일자리 사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약자와의 동행 시정철학에 맞춰, 취업 취약계층의 자립기반 강화를 양대 축으로 공공일자리 사업 기본 취지인 ‘일자리 사다리 기능’을 강화할 방침이다.
이번 개편은 그간 형식적이고 생계지원형 복지 관점으로 인식되던 공공일자리 사업의 재원 투입 효과를 제고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또한 실제 기업과 시장에서 필요한 일자리 수요를 확보함으로써 실제 취업 연계율도 높일 계획이다.
안심일자리 사업 ‘자율성’ 높인다
공공일자리사업은 서울형 뉴딜일자리와 안심일자리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다. 서울시는 현재 안심일자리가 가진 문제를 개선하고 공공일자리 사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자조·자립 기반 마련 △업무 생산성, 효율성 제고 △안심일자리 필요 현장 연속성 확보 등 방향성을 설정했다.
시는 우선 ‘약자와의 동행’이라는 시정 기조와 방향을 맞춰 사회 안전, 디지털 약자 지원 등 주요 시정사업의 보조 일자리 사업을 추진할 방침이다. 그간 안심일자리 사업은 공공기관의 필요에 의해 공급자 중심의 행정지원형 사업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앞으로는 공공의료 보조, 일자리 사업 참여자인 약자가 다른 약자를 돕는 자조 기반의 사업 추진을 주요 특징으로 잡는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안심일자리 사업에 연속 3회까지 참여할 수 있도록 참여 기회도 확대한다. 쪽방주민, 장애인, 노숙인 등 민간기업으로의 진입이 어려워 생계유지가 필요한 취업 취약 계층에 생계지원의 연속성을 확보시켜 줌으로써 보호책을 더욱 두텁게 하겠다는 취지다. 다수의 인원이 참여하는 안심일자리 사업의 경우 전문기관과 연계한 사전 실무교육을 강화하고 전문적인 인력관리를 통해 사업 참여자가 직무내용에 쉽게 적응하여 업무의 생산성·효율성도 높인다. 그간 정부가 추진해 온 안심일자리는 저소득층 및 노인을 대상으로 단순·반복 업무가 중심을 이뤄 생산성 낮은 일자리라는 문제가 꾸준히 제기됐던 바 있다.
실제 지난해 기준 안심일자리 사업 관련 자료에 따르면 사업 유형별 비율은 단순․반복 업무인 공공시설 등 환경정비 사업 참여자가 전체 54.6%로 가장 큰 비율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생산성 없는 단순 일자리만을 안심일자리라는 미명 아래 배정하는 것은 복지 수용자의 향상심과 업무 효율성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서울 마포구의 한 건물에서 미화부로 일하는 A씨(56)는 “단순 노동 업무는 하기 싫다. 그래도 사무실 안에서 사회생활을 했던 경험이 얼마인데, 이제와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자니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것 같고 서럽다”라고 토로했다. 사실상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를 일자리 사업이라는 이름만 붙여 채우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민간 분야 취업 매칭 지원
그런 의미에서 서울형 뉴딜일자리는 공공분야에서 일자리 경험 경쟁력을 높이고 민간 분야에서 참여자들이 취업으로 연계될 수 있도록 개편된다. 2013년부터 시작된 서울형 뉴딜일자리는 단순 노무형 일자리가 아닌 건축물 3차원 실내공간 지도 구축, 에너지설계사 등 전문분야의 일 경험을 배워 민간 일자리 진입을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하는 사업이다.
시는 기존 시·자치구·투자 출연기관마다 일자리를 할당해 운영하던 방식에서 △약자와의 동행 관련 사업 △경력형성형 사업 두 가지 축으로 뉴딜일자리 사업을 개편한다. 내년부터 공공기관형 중심의 사업 비중은 현행 80%에서 50% 수준으로 단축하고, 민간 분야의 일자리 비율을 50%로 확대해 취업 연계율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또 현행 최대 23개월인 근무 기간은 1년 단위로 조정해 연속성을 높이고, 시가 100% 예산을 지원하는 자치구의 서울형 뉴딜일자리 사업은 내년부터 예산 부담을 90%로 조정한다. 서울형 뉴딜일자리의 최종 목표가 민간 채용 연계인 만큼, 인공지능·바이오 등 신산업 분야 일자리를 발굴하고 고용연장과 정규직 채용 비율이 높은 기업을 우선 선정해 취업을 연계하겠단 방침도 세웠다.
일자리 사업 개편, 文 정부 반성 아래 이뤄졌다
이번 일자리 사업 개편은 문재인 전임 정부 일자리 사업에 대한 반성을 바탕으로 진행됐다. 문재인 정부는 도합 15조486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들여 일자리 사업을 진행했으나 막상 일자리 사업으로 늘어난 일자리의 80%가 노인 단기 알바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자율성 부여를 통한 생산성 강화와 단순 노무 비율 감축, 민간 분야 비율 증대 등은 지난 일자리 사업에 대한 비판을 철저히 수용한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공공부문 일자리 사업에 제대로 된 일감이 늘어난다면 이는 민간 고용시장 활성화의 마중물이 될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이 또 민간 분야 비율 증대와 결합하면 꽤 괄목할 만한 성과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개편된 일자리 사업, 그리 새롭진 않아
다만 이와 비슷한 일자리 사업은 이전부터 많이 있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6년부터 ‘시니어 인턴십’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만 60세 이상의 취업 의사가 있는 시니어를 고용 의사가 있는 기업에 매칭시키기 위한 사업으로, 기업에서 만 60세 이상 직원을 신규 채용 시 채용지원금을 최대 3개월간 지급하는 방식이다.
‘시니어 인턴십’ 사업으로 단순 소일거리가 아닌 사무직으로 취직한 시니어 인턴은 그해에만 280여 명에 달했다. 해당 사업은 인건비 절감 및 경제활동 인구 감소로 인한 인력난 해소, 시니어 일자리 창출 등 다양한 효과를 일궈냈다는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이번 일자리 사업 개편이 그리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일자리 사업과 크게 달라졌다는 느낌도 적다. 자율성 제고, 연속성 확대 등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으나, 그를 위한 비전이 다소 두루뭉술하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제기된다. 비슷한 사업에 간판만 갈아 끼운 속 빈 강정 같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한편 최근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며 사회 취약계층을 위한 일자리 지원은 더욱 중요해졌다. 기존의 사업이 다소 형식적이고 일방적이었던 것이 사실인 만큼, 시는 이번 공공일자리 사업 개편에서 일자리 사다리 형성의 진정한 의미를 되찾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