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사례에 비춘 우리나라 국민투표제 개선과제

한국 국민투표제, 아프리카 독재 국가 수준의 민주주의 발달 수준 나타내는 것 스위스 완전 국민 개방제, 다수 법령을 국민투표로 정하는 직접민주주의 국가 한국은 지나치게 제왕적, 직접민주주의 반영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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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국민투표 시스템이 헌법개정에만 적용되는 것처럼 오인되어 해외와 달리 국민들의 ‘신임투표’로 받아들여지는 문제점이 지적됐다.

지난 8일 국회입법조사처(처장 직무대리 이신우)의 「주요국 국민투표제도 비교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 스위스, 캐나다, 영국 등의 국민투표제와 달리 현행 한국의 국민투표제는 국민들의 의견을 묻고 공동 결정을 하겠다는 관점이 아니라, 선출직 정치인에 대한 국민들의 ‘신임투표’로 받아들여진다는 주장이 나왔다.

Laurence Morel, “Practice of nationwide referendums in the 195 countries of the world (1940–2016),” Laurence Morel and Matt Qvortrup (eds.), The Routledge Handbook to Referendums and Direct Democracy. Routledge, 2018, pp. 519-525, 지난 1940년부터 2016년까지 주요국의 국민투표 횟수, 그림1  <「주요국 국민투표제도 비교와 시사점」보고서 재인용>

한국 국민투표의 문제점, 대통령만 요청 가능해 신임투표로 변질

해외에서 국민투표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주요국들은 대통령 혹은 국가수반뿐만 아니라, 다양한 선출직들이 국민투표를 제안할 수 있으나, 한국은 대통령만이 국민투표부의권을 갖고 있어 오인될 소지가 크다는 것이 첫 번째 주장이다. 이어 헌법개정을 위해 반드시 국민투표를 시행해야 하는 제도적 제한으로 인해, 국민투표가 대통령에 대한 신임투표로 인식된다는 문제점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스위스와 프랑스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헌법개정안에 대해 필수적 국민투표를 시행하지만 다른 절차를 통해 헌법개정의 경직성을 완화했다. 특히 2008년 공동발의 국민투표 제도를 신설하여 입법부와 국민이 국민투표에 부의할 수 있도록 해, 반드시 대통령이 모든 책임을 지는 구조가 아니게 됐다.

캐나다와 영국의 경우, 사회갈등과 관련된 쟁점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경향이 있고, 정파적 경합을 관리할 수 있는 규정을 국민투표법에 반영해 국민투표가 헌법개정 이외에 다른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는 사회적 토대가 조성되어 있다. 지난 2016년의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영국은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해야 하는지 여부를 놓고 국민투표를 진행해 결국 EU에서 탈퇴하는 결정이 내려진 바 있다. 2014년에는 영국의 일부인 채 자치 정부로 운영되는 스코틀랜드가 중앙정부에서 분리되는 ‘독립 선거’를 시행한 바 있다. 2022년 들어 또다시 국민투표 방식의 독립 선거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등, 국가 중대사를 선출직 정치인이 직접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투표를 통해 공동 책임을 지는 경우가 사회적으로 쉽게 받아들여지는 경험치가 쌓인 것이다.

전 세계 주요국의 국민투표 필수 여부, 그림2 <출처=그림1과 동일>

국민투표 시행하는 나라는 많지만, 법으로 정해진 경우는 드물어

일반적으로 국민 합의가 원활하게 시행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국민투표를 상정하는 편견이 있으나, 민주주의 발달이 고도화된 미국, 네덜란드,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에도 국민투표가 필수로 전제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상·하원의 합의 절차를 거쳐 헌법이 개정되고, 네덜란드 및 북유럽 국가들도 국민의 대표자들에 의해 주요 국가적 결정이 진행된다.

전 세계 주요국의 국민투표 부의권자, 그림3 <출처=그림1과 동일>

국민투표 부의권에 있어서도 대통령 및 행정부가 권한을 독점하는 경우는 한국을 제외할 경우 민주주의 발달이 더딘 아프리카 다수 국가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국가들은 독재자가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국민투표제도에 대한 접근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은 나라들로, 한국의 현존 국민투표 부의권이 민주주의 후진국들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증거 중 하나라는 것이 보고서의 해석이다.

특히 스위스의 경우, 국민들이 직접 국민투표를 발의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국가적 합의에 대통령이 전적으로 모든 책임을 지는 한국과는 크게 다른 민주주의적 토대가 갖춰진 나라로 나타났다. 실제로 스위스는 대학 교육, 고교 이하 교육 등, 교육제도에 대한 민간과 공공의 영역 구분을 위해 지난 1994년과 2000년에 두 차례 국가적인 논의와 국민투표를 거쳐 2012년에 법 개정이 이뤄지기도 했다.

스위스의 1948~2022년간 국민투표 사례, 그림4 <출처=그림1과 동일>

스위스의 경우, 2022년에만도 2월 13일, 5월 15일, 9월 25일 3차례의 국민투표가 있었고, 각 4개, 3개, 4개의 법률안 통과를 국민투표로 결정했다. 총 10건의 개정안 중 국민이 발안한 경우는 3건이었다.

영국의 경우도 ‘브렉시트’로 유명해진 지난 2016년 6월의 국민투표 이외에도 유럽경제공동체(EEC) 가입 여부에 대한 국민투표가 1975년에 있었고, 이어 스코틀랜드, 웨일스의 분권화에 대해 주기적인 국민투표가 진행됐다.

한국, 직접민주주의 관점이 사실상 미반영된 국민투표제

보고서는 한국 헌법에서 규정하는 국민투표제는 직접민주주의의 성격이 매우 약하므로 직접민주주의 전통을 오랜 기간 발전시켜온 스위스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오직 대통령만 부의권이 있는 데다, 일반 법령의 통과가 아니라 헌법개정 등의 경우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의권 확대를 위해서는 프랑스 사례를 참고할 것을 제시했다. 드골 대통령 시기 국민투표가 신임투표로 남용된 전례가 있는 프랑스는 다층적인 방식의 국민투표를 도입했다는 것이다. 한국처럼 대통령이 국민투표 부의권을 보유하고, 헌법개정에 국민투표를 필수로 지정했지만, 동시에 국민투표 절차에 입법부가 개입할 여지가 존재하며, 의회와 국민이 국민투표를 공동으로 부의할 수 있는 절차가 도입되어 있다.

해외 사례들을 종합해 볼 때, 국민투표제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개혁을 지속해서 추진하고 관련 법제를 끊임없이 수정해왔다는 점을 지적하며, 한국도 국민투표제에 직접민주주의적인 성격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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