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이동통신 과점혁파 ② 제4 이통사, 재벌 대기업이 뛰어들어야?
정부, 라쿠텐 모바일 성공사례 보며 제4 이통사 진입 기획 세웠다 해외 선진국도 통신업은 허가, 면허업으로 규정하고 있어 좁은 국토로 인해 서비스 차별화가 힘들어 마케팅 경쟁으로 가는 게 우리 통신시장
정부의 제4 이동통신 시장 진입 계획이 본격화되고 있다. 기존 이동통신 3사가 갖고 있는 시장 지배력을 깨겠다는 취지다. 이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관계 부처들은 제4 통신사 진입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을 순회하며 직접 세일즈에 나서고 있다. 아직은 “삼성이 뛰어들지 않으면 가망이 없다”는 게 업계 중론이지만 일본의 라쿠텐 모바일의 성공 사례를 볼 때, 투자 여력이 충분한 대기업이 이동통신 시장에 뛰어든다면 시장에 혁명적인 변화가 찾아올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 모든 수단 써 신규 제4 이통사 진입 사업자 찾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통신 시장 과점 해소와 경쟁 촉진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사실상 이동통신 시장 과점 상태에 대한 중대 변화를 예고한 셈이다. 이동통신 3사가 지난 해 연간 합산 영업이익 4조를 돌파했지만, 인프라 투자나 요금제 다양화에 소극적이라는 세간의 지적을 염두에 둔 것이다. 실제로 이동통신 3사는 요금제 인하 여력이 충분함에도 현재 상태에 안주하고 있으며, 5G망에 대한 투자 역시 미진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KT와 LG유플러스에 대한 초유의 주파수 할당 취소 결정이 내려진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칼을 뽑았다. 과기정통부는 3사 구도로 굳어진 시장에 다양한 사업자들이 진입할 수 있도록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정부가 최우선으로 준비한 방안으로는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일대일 미팅’과 ‘그룹별 미팅’이 있다. 과기정통부를 중심으로 제4 이통사 진입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을 직접 찾아가 관련 정책 순회 설명회를 여는 것이다. 가능성이 있는 기업들로는 네이버·카카오·쿠팡 같은 IT기업들이나 롯데·신세계 등 유통 대기업들이 꼽힌다. 거기에 더해 5G 이동통신 28㎓ 대역 신규 사업자 진입을 위해 주파수 공급, 망 구축, 세액공제, 정책금융을 통한 자금 조달, 서비스 운영까지 전폭적 지원 또한 약속한 상태다. 28㎓ 주파수 대역 3년 독점 이용권과 통신설비 지원책도 준비해뒀다. 이로써 1년에서 1년 반 안에 제4 이통사 진입 희망 기업을 반드시 발굴하겠다는 각오다.
정부는 특히 제4 이동통신사의 사례로 일본의 라쿠텐 모바일에 주목한다. 라쿠텐 모바일은 일본 인터넷 기업 라쿠텐이 세운 통신 자회사로, 일본의 제4 이통사에 해당한다. 라쿠텐 모바일의 경우 도쿄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서비스했지만, 지금은 일본 전역에서 서비스하는 회사로 성장했는데, 이와 같은 라쿠텐 모바일의 폭발적인 성장은 ▲통신 서비스와 기존 라쿠텐의 유통 사업과 시너지가 나기 쉬웠고 ▲투자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자본력이 튼튼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에 학계와 정부는 라쿠텐 사례를 모범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이동통신 업계는 제4 이통사에 부정적이다. 신규 사업자의 진입이 통신망 투자보다는 가입자 확보를 위한 마케팅 과열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동통신 시장 성장이 둔화한 상황에서 새로운 사업자가 자칫 경영난으로 사업 안착에 실패할 경우 2000년 대규모 구조조정 당시보다 국민 경제적 부작용이 클 수 있다고 지적한다.
통신 산업, 선진국 어디를 가도 3~4개 사 과점시장의 형태
실제로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 통신 산업은 ‘허가 혹은 면허제’로 독점적 경쟁시장 혹은 과점시장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첫째로, 주파수 자체가 공급이 제한된 자연 자원이기에 정부의 인위적 할당이 필요하고, 두 번째로는 시장 참여엔 천문학적인 투자비가 들어가 ‘규모의 경제’가 작용하고 있으며, 사고가 날 경우 많은 국민들이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과 유럽 등 해외 선진국들도 통신업의 경우 면허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면허를 주는 대신 감독당국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고객 보호를 위해 세밀하고 꼼꼼히 영업 양태를 감독한다.
실제로 이동통신 업계는 언급된 특성상 국가별로 3~4강 체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의 경우 버라이즌(Verizon), 에이티앤티(AT&T), 티모바일(T-Mobile) 이렇게 3강 체제로 구축돼 있다. 2020년 이전에는 스프린트(Sprint)가 있었지만 티모바일과 합병됐다. 영국/네덜란드도 4개, 오스트리아·호주는 3개에 그친다.
이렇게 국가별로 이동통신사의 숫자가 제한된 이유는 품질 문제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5사 체제 도입 이후 품질 문제 등이 지속적으로 불거졌었다. 그러다가 지금과 같은 3개 사 형태가 안착한 2000년대 중반부터 서비스 품질 문제가 많이 개선된 바 있다. 이러한 이유로 영국 규제기관인 오프콤은 20여 년간 견지해온 이동통신 4사 경쟁체제 정책이 5G 투자 지연, 요금 인상 등 부작용을 유발하자 지난해 ‘3사 경쟁체제 허용’ 가능성을 밝히기도 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국토 크기가 작고 인구밀도가 높아서 이동통신사들 간의 서비스 차별화가 매우 힘들고, 통신사들 대부분의 지출구조가 가입자 뺏어오기를 위한 마케팅 비용에 쓰인다는 단점이 있다. 일례로 제휴 관계에 있는 영국의 보다폰과 미국의 버라이존의 경우 대서양을 건너는 형태의 문자메시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 서비스를 구매하는 고객들에게 상당히 비싼 요금을 매기는 일종의 가격차별을 실시하고 있지만, 이러한 형태의 서비스 차별화는 국토가 작은 우리나라에서는 애초에 발생하기 힘든 것들이다. 통신사들 간의 경쟁이 서비스 품질 향상보다는 마케팅 측면에서 과열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렇기에 우리나라의 현실에서는 시장에 참여하는 이동통신사의 개수를 늘린다고 해서 반드시 소비자 편익이 커진다고 볼 수 없다. 정부가 시장을 인위적으로 재편하기보다는 미세한 정책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다만 정부가 찾는 제4 이통사 모델처럼 투자 여력이 충분한 ‘삼성’에 준하는 대기업이 시장에 진출해 혁명적인 할인 정책 등을 통해 소비자 편익을 증진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부의 꾸준한 시장 참여 기업 탐색과 일부 재벌 대기업들의 시장 참여에 대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