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특례법 위헌 결정, 국회의 단순한 ‘실수’?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3조 제1항 위헌 결정 수사기관도 구별 못 하는 법? 사실상 범죄자 ‘양산’하는 법 갈수록 늘어가는 무고죄, 두드러지는 국회의 ‘실수’들
국회사무처(사무총장 이광재) 법제실이 ‘최근 헌재결정과 개정대상 법률 현황’을 발간했다. 각 위원회별 개정대상 법률과 심사 경과 및 제21대 국회의 법률개정 현황을 정리·소개하기 위함이다.
‘최근 헌재결정과 개정대상 법률 현황’에 따르면 헌법재판소(헌재)는 법사위에서 형법 부칙(제12575호) 제2조 제1항, 정무위에서 신용협동조합법 제27조의2제2항 및 제4항, 국방위에서 예비군법 제15조 제10항 전문 등을 위헌으로 결정했다. 특히 지난 2023년 2월 23일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 특례법) 제3조 제1항을 위헌 처분했다.
위헌 결정된 특례법, 뭐가 문제였나?
성폭력 특례법 3조 1항은 주거침입을 행한 이가 동시에 강간이나 강제추행을 범할 경우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주거침입 준강간·준강제추행도 마찬가지다. 주거침입 성폭력에 대한 처벌을 강화함으로써 피해자 보호에 무게를 싣자는 취지의 법안이었으나, 실상은 구멍이 숭숭 뚫렸다는 평가다. 사실상 주거침입 강제추행과 주거침입 준강간의 경계가 모호해 제대로 된 양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선애 재판관은 “국회는 실제 심의 대상인 성폭력처벌법 3조 1항의 ‘주거침입 강제추행·준강제추행죄’와 3조 2항 ‘특수강도강간죄’를 혼동했다”며 “결국 ‘주거침입 강제추행·준강제추행죄’는 심의하지 않은 채 법정형 상향을 의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준강간이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빠진 피해자를 간음하는 범죄다. 반면 준강제추행은 피해자는 추행하는 범죄다. 두 범죄 사이의 죄질은 상당히 다르나, 두 죄의 법정형은 동일하게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이다. 판사가 법에 따라 여러 사정을 고려한 뒤 형량의 최대 절반을 감경해도 3년 6개월 수준의 형량이 나온다. 집행유예 선고 기준이 징역 3년 이하인 만큼 피고인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실형을 선고받을 수밖에 없다. 법정형의 하한이 지나치게 높은 셈이다.
이에 헌재는 “주거침입과 강제추행, 준강제추행은 모두 행위 유형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그 법정형의 폭은 개별적으로 각 행위의 불법성에 맞는 처벌을 할 수 있는 범위로 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주거침입의 경우 일상적 숙식 공간인 좁은 의미의 주거에 한정되는 개념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개방되어 있는 건조물이나 관리자의 묵시적 의사에 반하여 침입한 경우도 주거침입에 해당할 수 있는데, 이 두 사안을 단선적으로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게 헌재의 설명이다.
준강간과 강제추행, 수사기관도 제대로 구별 못 해
앞서 대법원은 주거침입 강간죄에 대해 “성폭력 특례법 제3조 제1항의 주거침입 강간죄 등의 실행의 착수 시기는 주거침입 행위 당시가 아니라 강간죄 등의 실행에 나아간 때로 보아야 한다” 또한 “강간죄는 부녀를 간음하기 위해 피해자의 항거를 불능케 할 정도의 폭행 혹은 협박을 개시한 때 그 실행의 착수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즉 준강간죄가 성립되기 위해선 피해자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옷을 벗기는 등 준강간의 실행 착수 시기가 인정돼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수사기관조차 강제추행과 준강간을 제대로 구별해내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일례로 A씨는 직원들과 워크숍을 간 자리에서 술에 만취한 상태로 여직원을 강제추행했다. 여직원이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한다고 착각해 잠에 든 여직원의 방에 들어간 뒤 옆에 누워 뽀뽀를 하고 껴안은 것이다. 이 경우 A씨는 주거침입 강제추행에 해당될 수 있다. 하지만 경찰은 A씨를 주거침입 준강간 미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주거침입 준강간의 실행 착수 시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실제 행한 범죄보다 더 높은 수위의 혐의를 내건 셈이다.
이처럼 수사기관조차 모르는 판단 기준을 일반인이 알기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A씨가 전문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백하게 된다면 결국 A씨는 자신의 행위에 맞지 않는 형량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성폭력 특례법이 사실상 범죄자를 양산했단 이야기도 마냥 흘려들을 수만은 이유다.
상처투성이 무고 男들, 용납 못 할 ‘실수’
최근 여성에 의한 성폭력 무고 사건이 많아지고 있어 국회의 성폭력 특례법 ‘실수’는 더욱 눈에 띈다. 지난달 15일 검찰에 따르면 경찰이 무고죄로 검찰에 송치한 사건의 기소율은 3% 내외에 불과했다. 무고 사건 자체는 해가 지날수록 급증해 지난 2019년 1만 건을 넘어설 정도로 늘었으나 막상 기소율은 역대 최저 수준까지 떨어진 것이다.
한편 경찰이 무고죄로 피의자를 검찰에 송치한 경우는 2016년 8,567건, 2017년 9,090건, 2018년 9,976건, 2019년 1만1,238건이었다. 그러나 검찰이 이들을 재판에 넘긴 건수는 2016년 366건, 2017년 372건, 2018년 367건, 2019년 330건에서 그쳤다. 기소율로 보면 각 4.3%, 3.7%, 2.9%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한 경찰 관계자는 “무고죄가 성립되기 위해선 의도적으로 고소해서 없는 죄를 만들었단 확증이 있어야 한다”며 무고죄 입증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신고자가 상대방이 형사처벌을 받게 할 목적으로 허위 신고를 했다는 증거를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성폭력 범죄에 대해선 피해 여성의 일관된 진술만 있으면 유죄가 성립되는 만큼 무고죄 입증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성폭력 특례법을 적용해 무조건적으로 실형을 선고하게 된다면 애꿎은 피해자만 더 늘어나는 셈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그러나 국회의 ‘실수’는 곧 민생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문제다. 시민들의 입방아에 따라 졸속 처리되는 법안들이 타파되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