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참작감경제도, ‘고육지책’인가 ‘권위주의’인가 ②

정상참작감경. 법관 재량은 어디까지 닿아야 할까 스위스 등에선 명문화돼 있어, “우리도 명시적 표현 필요” 악용 우려되는 ‘법관 재량’, 해외 사례 비교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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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pexels

국회입법조사처가 정상참작감경을 형법에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성이 있음을 밝혔다. 형법이 정상참작감경을 허용하고 있으나 그 사유나 정도, 방법 등이 전적으로 법원의 해석에 맡겨져 있는 것은 불합리한 판결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지난 2020년 10대 여자 청소년과 부적절한 만남을 가진 30대 남성이 징역 4년 형을 선고받는 일이 있었다. 자백했다는 점, 수사에 협조했다는 점 등이 정상참작된 결과였다. 그러나 이 같은 양형이 국민의 법감정에 맞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쏟아진다. 법관의 재량은 어디까지 닿아야 옳은 것일까.

논의는 꾸준히 이어져 왔지만

정상참작감경제도가 문제시된 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사실 입법부는 법원이 국민감정과 달리 너무 수위가 낮은 처벌을 남발하고 있다며 정상참작감경제도와 관련한 여러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지난 2011년 3월엔 정부가 형법 제49조의 정상참작감경 사유를 구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당시 정부가 내놓은 사유는 △범행의 동기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는 경우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 경우 △피고인의 노력에 의해 피해자의 피해가 상당 부분 회복된 경우 △피고인이 자백한 경우 등이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감경 사유가 4가지로 매우 제한적이기에 구체적인 사안에 맞는 양형의 합리화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입법부에선 형법 일부개정법률안(박완수 의원 대표 발의)을 통해 정상참작감경제도를 손질하고자 시도했다. 입법부는 정상참작감경 사유로 △범행의 동기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는 경우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 경우 △피고인의 노력에 의해 피해자의 피해가 상당 부분 회복된 경우 △피고인이 범행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하는 경우 등을 제시했다. 입법부는 또한 성폭력 범죄에 대해선 작량감경 규정 적용을 배제하는 법안도 함께 발의했다. 그러나 이 또한 최종적으로 입법되지 못했다. 작량감경은 책임원칙에 위반될 수 있는 과중한 형량 선고를 방지하기 위한 수단임과 동시에 법정형이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에 위반되는가를 판단할 때 중요한 판단기준이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해외에선 어떻게 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해외에선 정상참작감경제도를 어떤 방식으로 운용하고 있을까. 우선 일본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법률상 감경 외 작량감경 규정을 둬 법관의 양형 재량을 확보했다. 일본 또한 감경 사유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진 않으나, 법률상 감경 방법으로 작량감경을 할 것과 징역 금고 또는 구류 감경 시 일이 되지 않는 단수를 절사할 것 등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독일은 형법 제49조 제1항과 제2항에 감경의 정도 및 방법 규정을 두고 개별조문에서 해당 조문을 원용하는 방식으로 정상참작감경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독일은 △해당 범죄를 피고인이 자의로 중단한 경우 △책임이 경미하고 종속적인 의미의 가담행위만 행한 경우 등으로 정상참작감경 사유를 규정했다. 형법 제49조 제2항의 경우 ‘법원의 재량에 따른 형 감경’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어 우리나라와 유사하나, 동조를 개별조문에서 원용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에 감경 사유가 상대적으로 구체화되어 있다는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처럼 참작을 법원의 재량에 전적으로 맡기지는 않고 있다는 의미다.

스위스는 형법의 개별 조문에서 형을 감경해야 할 필요적 감경과 형을 감경할 수 있는 임의적 감경을 따로 명시해뒀다. 스위스의 일반적인 형 감경 사유는 △행위자가 참작할 만한 동기로 심각한 곤궁상황에서 협받받는다는 인상을 받고 종속되어 있는 자의 촉탁으로 범죄 행위를 저지른 경우 △행위자가 피해자의 행동으로 인해 유혹에 빠진 경우 △행위자가 정황상 면책이 가능한 격렬한 감정에 빠진 상태에서 행위한 경우 △행위자가 진지하게 후회하고 손해배상을 한 경우 △범행 후 시간이 경과하여 처벌의 필요성이 현저히 감소한 경우 등 8가지다.

위 8가지 사유가 존재하는 경우 법원은 재량껏 형을 감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의무적으로 감경을 해야만 한다. 스위스 또한 우리나라와 같이 임의적 감경을 규정하고 있으나, 참작할 만한 구체적인 사유들을 법률에 명문화해뒀다는 점이 특별한 구별점이다. 또한 판결서에 근거를 명시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우리나라의 정상참작감경제도와 차별화된다.

오스트리아는 형법 제34조에서 감경 사유 19가지를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또한 형법 제41조는 감경 사유가 가중 사유보다 현저히 우월할 경우의 감경 정도 및 방법을 규정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감경 사유는 △비정상적인 정신상태의 영향으로 범행을 저지른 경우 △참작할 만한 동기로 범행한 경우 △제3자의 영향을 받거나 순종 등을 이유로 범행한 경우 △여러 사람이 가담한 가벌적 행위에 종속적으로 가담한 경우 △부주의에 의해 범행을 저지른 경우 등이다.

들쭉날쭉 재판 결과, 법관 재량은 어디까지?

결국 우리나라와 일본과 달리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는 모두 정상참작감경의 사유를 법률에 명시하고 있다. 특히 스위스의 경우 양형에 있어 중요한 정황과 그에 대한 판단을 판결서에 명시할 의무까지 규정하고 있다. 정상참작감경을 온전히 법원·법관의 재량에 맡기는 우리나라와는 차원이 다르다. 당초 법관의 재량은 법률의 범위 내에서 이뤄져야 하나, 우리나라는 구체적인 기준들이 제대로 명문화되어 있지 않으니 법관의 재량이 과도하게 허용되고 있다.

물론 법관에 의한 재량적 감경을 허용하는 것은 필요하다. 범죄의 내용과 정상에 따른 형벌의 구체적인 타당성을 확보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상참작감경의 사유 및 감경의 정도, 그리고 방법론 등은 법률에 명시적으로 명문화해야 한다. 그래야만 법관의 재량이 법률의 범위 내에서 과도하지 않게 활용될 수 있다. 또한 정상참작감경이 집행유예를 선고하기 위한 꼼수로 이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는 대상이나 참작 사유 등 요건을 강화하는 방안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최근 국민이 판사를 비판하며 속되게 이르는 말이 있다. 바로 ‘판새’다. 그만큼 국민의 법감정에 맞지 않는 판결이 수차례 나왔다는 방증이다. 판사마다 판결이 달라지는 ‘고무줄 판결’ 문제도 크다. 법원행정처가 전국 형사재판부 판사들을 대상으로 가상 범죄 사례를 주고 어떤 처벌을 내릴 것인지 실시한 설문에서 39명의 판사 가운데 8명은 ‘무기징역’을, 한 명은 ‘징역 5년’을, 그 외 판사들은 또 다른 형량을 택했다.

법원·법관의 재량이 어디까지 미쳐야 할 것인가에 대한 완벽한 해답은 없다. 판사의 재량을 너무 허용하자니 전관예우 등 악용이 우려되고, 그렇다고 너무 제한하자니 감경 사유가 있어도 제대로 감경을 해주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최선은 없어도 차선은 언제나 있는 법이다. 앞으로 해외 사례들을 철저히 검토해 정상참작감경제도를 우리나라에 맞는 방식으로 명문화하는 과정이 꼭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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