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동맹 굳건하고 대북메시지 확고하나 핵공유는 X, 한반도 세력균형 유지될까?
한미동맹은 ‘가치동맹’ 바이든, “한국, 일본과의 외교개선 결단 감사” 새로운 대북 확장억제 조치에 NCG 설립할 것, 하지만 ‘핵공유’는 아니다 명확해진 한반도 내 세력균형, 핵 없이도 유지 가능한가?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6일(현지 시각) 백악관 관저에서 12년 만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을 진행하고, 공동기자회견을 가졌다. 두 정상은 한미 공동성명을 비롯해 워싱턴선언을 발표했으며, 한미 양국 간 안보 파트너십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더욱 강화된 상호방위 관계를 발전시키기로 약속했다. 다만 한국에서 올해 초부터 계속되는 북한의 핵 위협∙탄도미사일 발사 등으로 한국 내 핵 보유론, 전술핵 재배치론 등이 언급되었던 상황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으로 밝혀져 일각에서는 ‘빈손 회담’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2년 만에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 단호한 대북 메시지 전달한 양국 정상
대통령실은 26일 윤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을 통해 새로운 개념의 대북(對北) 확장억제 조치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날 정상회담은 오전 11시 15분(한국시간 27일 0시 15분)부터 낮 12시 35분까지 80분간 진행됐다. 회담은 바이든 대통령의 집무실인 오벌오피스에서 47분간 정상회담 모두발언 및 소인수회담으로 시작됐으며 이어 캐비닛룸으로 자리를 옮겨 30분간 확대회담을 이어갔다.
윤 대통령은 모두발언을 통해 “(오늘은) 한미동맹이 글로벌 동맹으로 새 출발 하는 역사적인 이정표”라며 “우리는 이익에 따라 만나고 헤어지는 편의적인 동맹이 아니라 서로 생각이 다른 현안에 대해서도 협의를 통해 풀어갈 수 있는 회복력을 가진 가치동맹”이라고 강조했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우리 동맹은 우리에게 닥치는 어떠한 도전도 헤쳐 나갈 수 있는 파트너십”이라며 “북한의 위협이 고조되는 와중에 우리 동맹의 협력이 배가 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또 “윤 대통령의 담대하고 원칙이 있는 일본과의 외교적 결단에 감사하다”며 “3자 파트너십이 강화되며 엄청난 영향력을 가져올 것”이라고 한일관계 개선에 의미를 부여했다.
두 정상은 회담을 마친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합의사항을 공개하고 확장억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워싱턴선언’을 발표했다. 윤 대통령은 “한미 양국은 북한의 핵 공격 시 즉각적인 정상 간 협의를 갖기로 했으며, 이를 통해 미국의 핵무기를 포함하여 동맹의 모든 전력을 사용한 신속하고, 압도적이며, 결정적인 대응을 취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또 “북한 위협에 대응해 핵과 전략무기 운영 계획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한국의 첨단 재래식 전력과 미국의 핵전력을 결합한 공동작전을 함께 기획하고 실행하기 위한 방안을 정기적으로 협의할 것이며, 그 결과는 양 정상에게 보고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이전 핵 관련 정책과 어떤 부분에서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에 “미국이 핵 자산에 대한 정보와 기획, 그에 대한 대응 실행을 누구와 함께 공유하고 의논한 적이 없다”며 “이를 이뤄냈기 때문에 새로운 확장억제 방안이고, 보다 강력할 것”이라고 답했다.
회담 이후 ‘사실상 핵공유’라고 발표한 대통령실, ‘절대 아니다’라는 미국
이번 정상회담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양국이 1년 가까이 확장억제 이슈와 관련해 협의해 온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나아가 한미동맹 70주년에 따라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양국 공조가 흔들림 없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 70년 전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체결된 워싱턴의 이름을 따 ‘워싱턴 선언’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미국은 성명을 통해 “한국에 대한 방위 약속은 선언적인 차원이 아니라 실질적인 조치를 동반한다”는 의지를 보여주었으며, 대통령실 역시 새롭게 창설되는 한·미 핵 협의그룹(NCG)에 대해 한국이 미국 핵 대응 계획을 파악하고 핵우산 발동 과정에 의견을 제시할 상시 통로를 갖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NCG는 한미 간 핵 관련 논의에 특화된 첫 차관보급 상설 협의체로 1년에 4차례 정기 회의를 개최하며 회의 결과는 양국 대통령에게 보고될 예정이다.
이에 대해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이날 워싱턴 현지 프레스룸 브리핑에서 “한미 양국은 이번에 미국 핵 운용에 대한 정보 공유와 공동계획 메커니즘을 마련했다”며 “우리 국민이 사실상 미국과 핵을 공유하면서 지내는 것으로 느껴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 에드 케이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 국장은 27일(현지 시각) 한국 언론을 대상으로 가진 간담회에서 ‘한국 정부는 워싱턴 선언을 사실상 핵공유 협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에 동의하느냐’는 질문에 “매우 직접적으로 말하겠다. 우리는 이것(워싱턴선언 내용)을 ‘사실상의 핵공유’라고 보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또 핵 협상에 대해 한국 정부와 입장이 다른 것은 아니지만 “한반도에 핵무기를 다시 들여오는 것이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미국 안에서 ‘핵공유’라는 개념 자체가 핵무기의 통제(control of weapons)와 관련되기 때문에 이번 워싱턴 선언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케이건 국장은 워싱턴 선언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고 말하며, 한반도와 주변에 미국 전략자산의 가시성을 증진할 것이고 더 많은 협의와 논의, 많은 정보 공유를 거쳐 한미간 동맹 및 파트너십의 강화를 이뤄내겠다고 덧붙였다. 간담회에 함께 한 대니얼 크리튼브링크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 역시 “이번 국빈 방문을 통해 도출될 수 있는 분명한 메시지는 미국과 한국이 이전보다 훨씬 더 좀 더 일치하고 단합됐다는 것”이라며 “(핵공유에 대한 정의 등) 차이점에 집중하는 것은 실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미일 vs 북중러, 세력균형(Balance of Power) 유지되나?
한편 중국은 한미 양국이 채택한 ‘워싱턴 선언’에 대해 “한국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28일 중국 관영 언론 글로벌타임스는 사설란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으로부터 핵우산을 되찾고자 하지만 그가 미국에 가져간 다양한 선물과 한국의 이익에 대한 비용을 비교하면 이 핵우산은 비현실적이고 새로운 위험만 가져올 것”이라며 한반도 긴장의 새로운 국면을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또 “한국은 핵 공유를 원했지만 미국은 입장을 무르지 않았고 한국은 핵 의사결정에 발언권이 없었다”며 진정한 승자는 워싱턴이라고 분석했다. 나아가 한국은 공동성명이라고 주장했지만, 단지 미국의 서명국일 뿐이라고 비판하며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한다는 성명서의 내용은 중국과의 상호신뢰를 해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한미일(한국-미국-일본)과 북중러(북한-중국-러시아)간 대결 구도가 더욱 명확해진 것이다. 이미 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검토하겠다”는 발언을 한 이후 러시아와의 관계가 급격하게 식어간 바 있다. 현승수 통일연구원 평화연구실 연구위원은 지난 18일 발간된 ‘2023년 ‘러시아연방 대외정책개념’의 특징과 시사점’을 통해 “러시아는 자국에 적대적인 ‘서방 집단’ 속에 한국을 포함하고, 핵심 협력 대상인 ‘글로벌 사우스’ 속에 북한을 포함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례적으로 북한은 잠잠하다. 북한은 28일 수도 평양에서 한국전쟁 당시 쓰인 미군 총탄이 발견되었다며 “철천지 원쑤(원수)인 미제 침략자들의 야만성”이라고 비난했을 뿐, 핵우산 등 대북 확장억제력을 강화하겠다는 발언과 북한에 “정권 종말”까지 거론한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된 공식 반응은 내놓지 않고 있다.
또 중국과 러시아는 지난 3월 정상회담 내내 서로를 추켜세우는 등 끈끈한 관계를 과시했다. 알렉산더 루킨 모스크바 국립 국제관계대 동아시아센터장은 “시진핑 주석은 러시아가 중국의 가장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임을 강조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평했으며, 중국과 러시아 모두 미국에 맞서 연합전선을 펴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는 등 노골적으로 북한을 지지했다. 특별히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력을 취해선 안 된다며 중국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두둔하면서 쓴 ‘정당하고 합리적인 우려’라는 표현을 통해 미국과 북한의 대화를 촉구했다. 즉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의 대북 제재에 동참할 뜻이 없고, 북한과의 3각 공조를 굳건히 하겠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말처럼 이미 우리나라가 일본과 화해의 무드를 취하면서 한미일 공조는 강력해졌다. 국제사회에서 힘의 균형이 맞아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국제정치학 용어로 이를 세력균형이라고 말하는데, 하나의 강대한 국가 또는 국가연합의 출현에 대항하기 위해 다른 여러 국가가 연합해 힘의 균형을 만들어 내 국제관계를 안정시키는 것을 뜻한다. 지난해 12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에 참가한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 최우선 교수는 “한국의 근본적인 전략적 이익은 한반도와 주변 지역에서 세력균형을 유지하는 데서 온다”며 중국·러시아와 손을 잡은 북한에 대응해야 한다고 전했다. 즉 중국이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지 않는 한 협력 중심의 대중 정책을 펴되, 동시에 잠재적인 위협에 대비하는 방안으로 한미동맹 강화에 힘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정권 출범 직후부터 지난 문재인 정부의 외교정책을 ‘가짜 평화’라고 비판하며 진짜 평화는 ‘힘에 의한 평화’라 주장했고, 갈수록 심화되는 북한의 미사일과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에 한미동맹과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조해 왔다. 최 교수는 이러한 한국 정부의 기조가 실제로 북핵에 대한 실질적 억제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핵보유국인 북한을 상대로 패권국가인 미국과의 동맹을 강조하며 “핵을 사용할 경우 반드시 죽는다”는 확신을 심어줬다는 것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국제정치적 논리에 순응하여 남북 관계를 도외시하면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세력균형 자체가 ‘힘에 의한 현상 유지’일 뿐 어떤 발전도 없는 소극적이고 한시적인 평화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 이미 대결 구도는 만들어졌다. 미국과 중국 간 패권 싸움 속에서 우리나라는 미국의 손을 잡았고, 북한은 중국의 손을 잡았다. 물론 상황이 이렇다 할지라도, 외교란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균형을 취해 조화를 이루고, 무조건적인 자국의 이익을 창출해야만 한다. 미국과 핵 사용에 대한 협의는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핵공유는 ‘절대 아니다’라고 단정 지은 만큼, 핵이 없는 한국이 이대로 북중러와의 힘의 균형을 이룰 수 있을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한미일 공조가 이제 막 시작된 만큼 앞으로 얼마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쩌면 한국은 중국, 러시아, 북한과 꼬인 관계를 풀어 균형을 맞출 시도를 해야 할 수도 있다. 한반도 안보와 안정을 위해 당분간 정부의 행보에 대한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