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패권 경쟁 속 미국 선택한 한국, 내달 G7회의서 한미일 회담 가진다
尹 “과거사 잊고 미래로 나아가자”에 기시다 “마음 아픈 일은 사실” 미국 동아시아 전략에 한 축 담당하게된 한국, 한일 정상회담 마무리 굳건해지는 한미일 공조에 북중러는 흔들릴까, 연대할까?
지난 7일 1박 2일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 기시다 총리는 윤석열 대통령과 확대 정상회담을 갖고 함께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등 한일이 돈독한 관계임을 선보였다. 미국은 한일 양국 간 갈등을 해결하는 모습에 환영의 목소리를 내며 동아시아 정세에서 더욱 굳건히 동맹을 강화하자는 의중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에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북한은 “한국은 정세를 악화하는 선택을 했다”며 비판하고 있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으로 동아시아 세력균형의 판도가 어떻게 흘러갈지 추이가 주목된다.
尹, 더 높은 차원으로 한일관계 개선해야
윤석열 대통령은 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확대 정상회담 모두발언을 통해 “한일 협력과 공조는 양국의 공동이익은 물론,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기시다 총리의 방한을 두고 “한일 관계도 본격적인 개선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며 지난 4월 수단에서 일본인이 철수하는 과정 중 우리 측이 제공한 협조가 곧 달라진 한일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고 전했다. 특히 과거사를 정리하지 않으면 미래 협력도 없다는 기존 입장에 대해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며, 과거가 아닌 한일 양국의 미래 협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안보 협력에 대해서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 한반도와 일본은 물론 전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중대한 위협이라는 인식을 공유했다며 “한미일 3자 간 협력이 긴요한 상황에서, 곧 다가올 G7 정상회의 계기에 3자 정상회담 등 한미일 3국 정상 간 긴밀한 소통과 협의가 매우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나아가 지난해 11월 프놈펜 한미일 3국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대로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의 실시간 공유와 관련한 실현 방안이 논의 중이며, “한국의 ‘자유, 평화, 번영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일본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의 추진 과정에서 긴밀히 협력하고 소통해 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경제 협력과 관련해서는 한국의 반도체 제조업체와 일본의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함께 견고한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도록 공조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미국이 구상한 CHIP4(반도체 4국)에 대한민국도 본격적으로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일본이 한국 기업에 대해 화이트리스트를 제거한 일 역시 원상회복을 위한 절차 진행 중에 있으며, 3월 정상회담을 통해 합의된 외교·안보 당국 간 안보 대화와 NSC 간 경제 안보 대화 그리고 재무장관 회의 등 안보, 경제 분야의 협력체가 본격 가동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기시다 총리는 한일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에서 사견을 전제로 “(강제징용) 당시 혹독한 환경 속에서 수많은 분이 매우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 데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며 강제징용 피해자 고통에 공감을 표시하는 발언을 했다. 또 8일 귀국 전 일본 취재진과의 기자회견을 통해 “전날 윤 대통령 관저에 초대받아 개인적인 것을 포함해 서로의 신뢰 관계를 돈독히 하는 등 매우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눴다”며 “윤석열 대통령과 신뢰 관계를 한층 강화하고 힘을 합쳐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한다”고 밝혔다.
바람 앞의 촛불 같은 동아시아 정세, 결국 손잡은 한·미·일
한편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그간 한일 양국 간 마찰이 미국의 골칫거리를 야기해 왔다고 전했다. 미국이 세계 패권을 유지하고 북한과 중국에 맞서 안보동맹을 강화해 세력균형을 이루고자 했지만, 동아시아의 주축이라고 불리는 일본과 한국이 과거사로 인한 갈등을 이어가 곤란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중국에 대한 각국의 의존도를 줄이려는 목적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재구성하겠다고 나서며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는 미국과의 정상회담에 이어 일본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이 같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힘을 실었다. 물론 이에 맞서 중국은 러시아와의 동맹을 강화하고 북한을 지지하고 있으며, 북한은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실험하고 한국을 상대로 군사 행동을 감행하는 등 위협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처럼 한반도를 둘러싼 ‘3국 대 3국’ 대결 구도는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미 정상회담 결과인 워싱턴 선언에 대해 북한과 중국은 “침략 의지가 반영된 적대시 정책”이라 비판하거나 “일부러 긴장을 조성하고 있다”고 반발했고, 러시아도 “세계정세를 불안정하게 하는 것”,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면 양국 관계는 파탄이 날 것”이라고 불쾌한 심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반면 당시 북한은 이례적으로 즉각 반응하지 않고 워싱턴 선언 이틀 뒤에야 적개심을 드러냈는데, 한 전문가는 이에 대해 “북한이 중국, 러시아 등과 대응 수위를 논의하느라 시기가 늦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이 “이번 워싱턴 선언은 북한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지 중국을 공격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밝혔음에도 미국의 확장억제 전략을 두고 북한은 물론 중국, 러시아까지 겨냥하는 것으로 판단하는 듯 보인다. 선언에 따라 미국 전략핵잠수함(SSBN)이 한반도에 기항한다는 것은 결국 핵탄두를 싣고 한국의 항구를 정기적으로 들른다는 뜻이고, ‘유사시 미국 핵 작전에 한국 재래식 지원을 공동 실행하고 기획한다’는 문구도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 통합억제전략을 염두에 뒀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한미일 공조와 최근 움직이는 EU의 러시아 제재, 러시아에 도움 주는 중국 기업들에 대한 수출 규제로 인해 중국과 러시아의 연계가 어려워졌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일본에 다 퍼준 회담일까, 가치동맹의 강화일까?
야당과 시민사회는 이번 한일 정상회담의 결과를 두고도 “또 퍼주기를 했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이번에도 빈 잔을 채운 건 윤석열 정부였다”며 “윤 대통령은 일본 식민침략에 대한 면죄부 발언을 또다시 추가했고, 강제 동원 배상 재검토는 언급조차 없었다”고 밝혔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 역시 국회 상무집행위원회에서 “불법적인 강제징용에 대한 면죄부를 윤 대통령 마음대로 결정해선 안 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키웠다. 600여 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입장문을 통해 “제3자 변제에 대한 일본의 호응은 고사하고 한 마디 사과 표명도 없는 빈손 회담, 깡통 외교”라고 전했다. 이어 윤 대통령이 ‘과거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발언한 데에 대해서도 과거사를 해결하지 않으면 일본은 재무장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대통령실은 일련의 성과를 내세우며 윤 대통령이 말한 가치 중심 외교로 한일관계가 정상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발표했다. 또 “기시다 총리는 한국 정부 요청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치적 결정을 해 과거사 관련해 많은 분의 고통에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고 덧붙이며 일본 측의 진정성을 알아달라고 전했다. 대다수 평론가 역시 이번 정상회담은 한일 정산 간 셔틀 외교가 복원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다만 한국 정부의 강제징용 해법 발표에 대한 일본 측 호응이 부족했다는 지적은 있었다. 기시다 총리는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면서도 “역대 일본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입장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재차 강조했기 때문이다.
두 정상은 이제 이달 19~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개별 회담을 갖고, 1999년 오부치 게이조 총리 이후 두 번째로 히로시마 평화공원에 위치한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함께 찾아 참배할 예정이다. 또 윤 대통령은 워싱턴 선언을 통해 합의한 한미 양국 간 핵협의그룹(NCG)과 관련해 “일본 참여를 배제하지는 않는다”며 가능성을 열어두기도 했다. 이에 대해 블룸버그 통신은 한일 관계 개선에 환영의 목소리를 내며 “몇 년 동안 공식적인 정상회담이 없었던 한일 정상 간의 셔틀 외교는 동맹국을 통합하고 북한에 맞서 협력하며 중국의 성장동력을 약화하려는 바이든 행정부의 또 다른 승리를 의미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한미일은 G7 정상회의에서 회담을 통해 공조를 더욱 굳건히 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