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횡재세 띄운 민주당, “적자 땐 잠잠하더니 흑자 나니 ‘세금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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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과이익'에 횡재세?, "업계 리스크 무시한 탁상정책"
전문가들도 '비판 일색', "조세제도 예측 가능성 무너질 수 있어"
호실적에만 집착하는 野, "적자 상황은 거들떠도 안 본다"
유한양행의 ‘코로나19 항원자가검사키트’/사진=유한양행

은행과 정유사를 대상으로 횡재세 도입을 추진하는 더불어민주당이 추후 과세 대상을 제약과 보험 등 다른 업종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 정부 허가가 필요하거나 전염병 유행 등으로 예기치 않게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업종이 주요 대상이다. 다만 야당의 횡재세 도입 논의에 업계 사이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기업이 손해를 보고 있을 때 적자 보전을 해줄 것도 아니면서 무작정 횡재세만 내놓으라 하는 건 불합리하다는 지적이다.

野 “횡재세 물릴 것, 제약업계 등이 그 대상”

12일 민주당 관계자는 “횡재세 논의의 핵심은 기업이 외부 변수로 올린 수익에 대해 기술적 혁신이나 경영 전략으로 올린 수익보다 많은 세금을 물리자는 것”이라며 “외부 변수가 사회적 비용을 수반하는, 코로나19 당시 세계적인 보건 위기로 막대한 이익을 얻은 제약업계 등이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이후 에너지 가격 상승과 관련해 정유업계를 횡재세 부과 1순위로 올린 것과 같은 논리다. 관계자는 “당장 업종을 확대하는 건 아니지만 은행·정유업계에 대한 부과로 선례를 쌓으면 추후 논의를 확대할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은행과 정유사를 대상으로 기존에 발의한 횡재세 관련 법안은 연내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이날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횡재세는 되도록 이번 정기국회, 늦어도 예산안 처리 이후 소집될 12월 임시국회에선 처리할 것”이라며 “이미 복수의 관련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고, 올해만 80조원 넘는 순이익이 예상되는 은행이 법인세 이상의 기여를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여야 안팎에서 형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횡재세는 기업의 노력과 무관한 외부 변수로 ‘초과이익’을 거둔 기업에 법인세 외 추가적인 세금을 부과하는 것으로, 에너지 기업 등을 대상으로는 이미 영국과 독일, 스페인 등 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지난해부터 도입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민주당은 “국내에도 일종의 면허산업인 금융업종에 법인세 외에 교육세를 이미 부과하는 만큼 특정 산업을 겨냥한 추가 세목 신설은 제도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 사이에선 볼멘소리가 터져 나온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유행으로 수혜를 봤다는 진단키트만 해도 재고 리스크를 떠안고 투자를 단행해 얻은 결과물”이라며 “재고에 따른 손실을 정부가 보전해 줄 것도 아니면서 수출로 외화벌이를 한 회사에 추가로 세금을 걷겠다는 논의는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세 전문가들도 횡재세 도입에 문제를 제기한다. 횡재세가 도입된 해외 사례와 국내 기업들의 상황이 크게 다른 데다 법인세와의 관계 등 세제상에도 구조적인 모순이 있다는 것이다.

김신언 한국세무사회 연구이사는 정유사 횡재세 부과와 관련해 “석유를 시추하는 회사에 횡재세를 부과한다고 해서 그 회사로부터 높은 가격에 구입한 원유를 가공해 판매하는 정유회사에도 같은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성급한 느낌”이라며 “횡재세 부과 대상이 되는 초과이익 자체에 대한 개념도 아직 학술적으로 정립돼 있지 않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영국과 독일 등에서 도입한 에너지 기업에 대한 횡재세가 석유나 천연가스를 직접 생산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한 반면 한국은 정유사를 대상으로 삼고 있어 사업 구조 간 차이를 무시했다는 비판이다. 김갑순 동국대 경영대 교수도 “정유사는 매입하는 원유가격과 정제 후 석유제품 판매가의 차이로 언제든 손실이 발생할 수 있는 구조인 만큼 횡재세 과세 대상으로 삼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한국 정유산업의 수출 기여도가 높아지는 가운데 횡재세를 부과하면 생산원가가 증가해 기업의 국제경쟁력이 약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은행 대상 횡재세 부과와 관련해서도 비판론이 제기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국내 금융권은 글로벌 은행과 달리 금융당국의 금리 및 수수료 등의 규제 강도가 높다”며 “초과이익 규모가 이미 제한적인 만큼 횡재세를 부과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내 시중은행들의 영업이익에서 사회공헌 관련 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글로벌 금융회사보다 높다는 점도 횡재세 추가 부과에 부정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영업이익이 늘어나면 4단계로 세율이 높아지는 국내 법인세에 이미 횡재세 성격이 녹아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세진 국회입법조사처 재정경제팀장은 “한국 법인세 규모는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영업이익 규모가 커질수록 과세 규모도 증가하는 구조”라며 “여기에 초과이득에 대해 추가로 과세하려면 명확한 과세 근거를 확보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역시 “횡재세는 법인세 누진세율 등 세법의 큰 틀 안에서 논의해야지, 그때그때 특정 업종을 규제하자는 미봉책으로는 오히려 조세제도의 예측 가능성을 무너뜨리고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위협하는 결과만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8일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에서 ‘한국형 횡재세 도입, 세금인가 부담금인가?’를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 홍익표 원내대표(왼쪽에서 세 번째)가 발언하고 있다/사진=이개호 민주당 의원실

“널뛰기 실적에 횡재세? 적자 보전해 줄 거냐”

횡재세 도입 논의는 정유사가 사상 최대 이익을 올린 지난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난해 정유사 4사 영업이익의 합계는 총 14조2,000억원에 달하는데, 이는 직전년도 대비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영업이익률도 9.5%로 역대 최고를 찍었다. 그러다 지난해 4분기를 기점으로 정유사 실적이 꺾이기 시작하면서 횡재세 논의도 잠잠해졌지만, 올 3분기 정유사 실적이 반등하자 야권이 다시 움직였다. 초과이익을 달성한 기업으로부터 횡재세를 걷으면 저소득층 지원 등 양극화 해소에 기여할 수 있다며 다시 여론몰이에 나선 것이다. 민병덕·양경숙 민주당 의원, 이성만 무소속 의원,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각각 법인세법 개정안, 서민의 금융생활지원법 개정안, 소상공인 보호 및 지원법 개정안을 이미 발의한 상태다.

결국 정치권이 널뛰기 하는 실적 사이에서 호실적이 나오기만 하면 횡재세 도입 논의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이면서 업계엔 부정적 여론이 늘었다. 사실상 그때그때 실적이 양호한 기업을 저격하면서 표몰이를 노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적절성 논란도 적지 않다. 국제유가, 정제마진 등 수익성을 결정하는 지표가 국제정세에 큰 영향을 받는 정유업 특성상 실적 널뛰기가 극심하다. 실제 최대 실적을 올리기 불과 2년 전인 2020년 정유사 4사는 총 누적 5조원대 적자를 기록한 바 있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4사의 총영업이익률이 같은 기간 제조업 평균인 6.3%를 넘어선 건 2016년을 포함해 단 두 번뿐이다.

이에 일각에선 “초과이익을 달성할 때 횡재세를 부과한다면 어려울 때 지원도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업이 적자를 기록할 때 국회나 정부 차원에서 이익을 보전해 줄 것도 아니면서 횡재세만 걷어 가는 건 불합리한 처사라는 것이다. 정치권이 금융업계를 저격하고 나서면서 상생금융을 압박하는 모습을 보이자 “사실상 관치금융 아니냐”는 힐난도 쏟아진다.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을 금융권에 떠넘긴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도 주주가 있다”며 “주주를 설득하지 못하는 상생행보는 배임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전문가들 또한 “금융업계의 ‘혁신 없는 이익’에 횡재세를 일시 도입하는 건 합리적인 수준에서 이해 가능하다”면서도 “횡재세의 상시 적용은 업계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사실상의 탁상정치”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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