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책에 주류 업계 일제히 ‘가격 인상’, “술값 낮추겠다던 정부 어디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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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값 관리 나선 정부, "출고가 최대 20% 낮춘다"
소매업자에 술값 책정 문 열어준 국세청, 하지만
술값 인상 나선 기업들, '7,000원 소주' 시대 도래하나
사진=Adobe Stock

정부가 국산 소주와 위스키 출고가를 최대 20% 낮추는 방안을 추진한다. 주세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서민이 즐겨 찾는 소주 등 주류 가격을 일부 낮춰 서민 부담을 줄이겠단 것이다. 이는 최근 소비자 물가가 치솟으면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자 정부 차원에서 서둘러 내놓은 물가관리 대책의 일환이다. 그러나 해당 정책으로 주류 업계가 일제히 주류 가격을 인상하고 나서면서 정부 정책의 실효성에 의심의 골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주류 기준판매율 도입, 물가관리 나설 것”

7일 주류 업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와 주류 행정 담당 기관인 국세청은 희석식·증류식 소주와 위스키 등 국산 증류주에 기준판매율을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기준판매율이란 과세표준(세금을 매기는 기준금액)을 정할 때 적용하는 비율을 뜻한다. 일종의 할인율로, 원가에서 기준판매율분만큼 액수를 뺀 나머지가 과세표준이 된다. 기준판매율이 커질수록 내야 하는 세금이 줄어들기 때문에 주류 출고가 인하 폭도 커진다. 정부는 종가세로 부과하는 주류를 대상으로 기준판매율을 적용할 계획이다. 종가세는 주류 가격이나 주류 수입업자가 신고한 수입 가격에 주세율을 곱해 과세하는 방식이다. 단 종량세를 적용하는 맥주는 기준판매율 대상에서 제외된다.

당초 기준판매율 도입은 수입 주류에 비해 불리한 국산 주류의 과세 구조를 바꾸겠단 취지 아래 기획됐다. 수입 주류는 수입 신고가를 과세표준으로 정해 주세를 부과하는 반면 국산 주류는 제조원가에 판매관리비, 이윤까지 더한 금액을 과표로 정해 주세를 부과하는데, 여기서 역차별이 발생한다는 게 국내 주류 업계의 주된 의견이었다. 이에 맥주는 지난 2020년부터 과세 방식이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바뀌었다. 주류가격에 주세율을 곱해 과세하는 종가세와 달리 종량세는 출고하는 주류의 양에 따라 주종별 세율을 곱해 주세를 부과한다. 주종과 출고량이 똑같을 경우 주세가 똑같이 적용된다. 그러나 현재 소주와 위스키 등 증류주는 종가세가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주세율은 72%다. 업계에 따르면 하이트진로 제품인 참이슬(360mL) 한 병의 공장 원가는 548원인데 주세는 395원, 교육세는 118원, 부가가치세는 106원으로 이를 모두 합치면 총 1,167원이 된다. 소주 한 병에 부과하는 세금이 619원으로 공장 원가보다 많은 셈이다.

이에 업계의 반발이 높아지자 나온 대안이 바로 기준판매율이다. 정부가 지난 7월부터 국산·수입 자동차 간 개별소비세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기준판매율을 도입한 것과 마찬가지로 주류에도 이를 적용해 균형을 맞추겠다는 게 당초 계획이었다. 다만 정부가 갑작스레 주류 기준판매율을 내걸고 나선 데엔 불균형 해소보단 물가 안정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세금을 줄이고 출고가를 낮춤으로써 가격 하락을 기대하고 있단 것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기재부와 국세청은 최대 40%의 기준판매율 적용을 검토 중이다. 이것이 그대로 적용될 경우 현재 1.167원인 참이슬(360mL)의 출고가는 940원대까지 낮아진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모습/사진=기획재정부

끝 모르는 ‘알코올 인플레이션’, “정부 뭐 하나”

최근 정부는 주류 가격 인하를 염두에 둔 정책을 다수 발표하고 있다. 앞서 지난 8월 국세청은 한국주류산업협회와 한국주류수입협회 등 주류 단체에 “소매업자는 소비자에게 술을 구입 가격 이하로 팔 수 있다”고 안내했다. 당초 국세청은 소매업자가 주류를 구입 가격 이하로 팔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이 같은 안내문을 발송한 건 결국 앞으로 소매업자들이 주류 가격을 자율적으로 정해 판매할 수 있도록 길을 열겠단 취지였다. 이에 대해 한 국세청 관계자는 “주류 할인을 유도해 물가 상승 부담을 완화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따른 것”이라며 “업체들의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주류 가격이 낮아지고 소비자들의 편익이 증가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 같은 정책들이 실질적 의미가 없는 ‘보여주기식 선거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선거철을 의식해 겉보기에 ‘좋을 것 같은’ 내용의 정책을 큰 고려 없이 내놓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 업계 사이에선 이 같은 주류 가격 인하 정책들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시선이 강하다. 이미 대부분의 식당이 구입 가격에 상당한 이윤을 붙여 술을 판매하고 있는 데다 최근엔 ‘6,000원 소주’까지 등장한 만큼 곧바로 현장에서 주류 가격이 인하되기는 힘들 것이란 의견이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소주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0.4% 올랐지만 식당과 주점 등 외식용 소주 가격은 4.7%나 상승했다. 정책 실효성에 의구심이 드는 이유다. 주류 가격이 실제 인하된다 하더라도 반대로 식당들이 안주 가격을 올림으로써 ‘조삼모사’ 효과가 날 수 있다는 우려도 쏟아진다.

주세 인하에 맞춰 주류 가격을 인상하고 나서는 기업들의 행태도 문제다. 실제 지난 2019년 오비맥주는 주세 인하에 맞춰 맥주 가격을 5.3% 인상한 바 있다. 당시 김춘길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 회장은 “종량세 시행 후 주세가 하락하고 원가가 줄어 가격 인하 요인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오비맥주는 이를 노려 값을 내려도 손해를 보지 않을 정도로 미리 가격을 인상하는 ‘꼼수’를 부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꼼수는 기준판매율 도입 직전인 지금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하이트진로는 오는 9일부터 매화수 등 일부 과실·탄산주 가격을 8~16%가량 올리기로 했다. 현재 2,400원 선인 매화수·매화수화이트 300mL 편의점 판매 가격은 2,600원으로 인상되고, 복숭아 맛 탄산주인 이슬톡톡(355mL)의 경우 1,800원에서 2,100원으로 16.6% 오른다. 참이슬과 진로의 출고가도 각각 6.9%, 9.3% 인상된다.

여타 주류 업체도 연쇄적으로 가격을 올리려는 낌새를 보인다. 처음처럼과 새로 등을 판매하는 롯데칠성음료 관계자는 “아직 확정된 바는 없지만 가격 인상을 검토하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소주 외 맥주 가격도 일제히 오른다. 지난달 11일 오비맥주가 카스·한맥 출고가를 6.9% 인상한 데 이어 하이트진로도 9일부터 테라와 켈리 등 맥주 제품의 출고가를 평균 6.8% 올리기로 했다. 앞서 정부는 식료품·비주류음료 물가 지수가 5%대로 치솟자 물가 관리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관련 인력을 확충하고 전담관 제도를 두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각종 정책도 내보였다. 그러나 정부 노력의 결과는 아이러니하게도 ‘주류 가격 인상’이었다. 조만간 음식점에서 판매하는 소즛값은 평균 7,000원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끝을 모르는 ‘알코올 인플레이션’에 제동을 걸기 위해선 정부의 보다 실효성 있는 정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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