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만기 세입자 3명 중 1명은 “이사보다 갱신”, 치솟는 전셋값에 갱신권 행사 증가
대규모 일자리 근접 금천구 등 갱신권 사용 급증 한남동 재개발 8,300여 가구 매물 찾아 시장 유입 내년 신규 입주 물량 '2023년 3분의 1토막'
최근 서울 아파트 전세 계약 중 계약갱신청구권(이하 갱신권)을 사용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5월 저점을 찍은 아파트 전셋값이 반등 후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내년에도 전셋값이 계속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축 아파트 공급 부족 현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매매를 준비하던 이들이 대거 전세수요로 전환하며 매물 부족 현상이 심화하고 있어 전셋값 추가 상승 전망은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5% 제한에도 증액 갱신 절반에 육박
6일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시스템과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 하반기 4개월(7월~10월)간 체결된 서울 아파트 임대 계약 중 임차인이 갱신권을 행사한 비중은 34.5%로 집계됐다. 이는 상반기(1~6월) 32.8%와 비교해 1.7%p 늘어난 수치다. 갱신권 사용 비중은 전셋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갔던 지난해 상반기 65.3%를 기록하며 고점을 찍은 바 있다. 하지만 이후 전셋값이 안정화 움직임을 보이면서 하반기에는 53.2%로 떨어졌고, 올해 상반기에는 32.8%까지 줄었다. 하지만 5월 저점을 찍은 전셋값이 반등에 돌입하자 다시 갱신권을 꺼내든 임차인이 늘어나는 모습이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해 초 고점을 찍은 후 17개월 연속 하락세를 그렸고, 그 결과 올해 5월 저점을 찍었다. 이 기간 6억3,424만원이던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5억1,071만원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상반기부터 시작된 매매 시장 활성화 움직임이 전세 시장으로 옮겨붙고, 연이은 대규모 전세 사기 사건의 발생으로 아파트를 선호하는 임차인이 늘며 6월부터 다시 상승세에 돌입했다.
이같은 전셋값 상승 움직임이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임차인들의 갱신권 사용을 부추겼다는 분석이 나온다. 갱신권은 통상 2년으로 정하는 전세 계약이 끝난 후에도 한 차례 재계약을 요청할 수 있는 임차인의 권리로, 임차인이 갱신권을 행사하면 임대인은 기존 임대료의 5% 이내에서만 전월세 가격을 올릴 수 있다. 이는 임대 시장이 안정화돼 전셋값이 오를 우려가 크지 않다면 굳이 갱신권을 사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하반기 갱신된 전세 계약 중 종전보다 보증금이 높아진 증액 갱신이 눈에 띄게 늘었다. 지난 6월 증액 갱신 비중은 39.2%였으나 10월에는 48.8%로 9.6%p 늘었고, 반대로 보증금을 줄인 감액 갱신 비중은 46.5%에서 39.7%로 6.8%p 줄었다.
구별 갱신권 사용 현황을 보면 금천구가 상반기에 비해 하반기 갱신권 사용 비중이 가장 많이 증가했다. 금천구는 10.5%였던 상반기 갱신권 사용 임대차 계약 비중이 하반기 30.1%로 뛰며 3배 가까운 증가 폭을 그렸다. 이어 광진구(8.9%p), 서대문구(6.0%p), 송파구(5.9%p), 서초구(4.6%p) 순으로 높은 갱신권 사용 비중 확대를 기록했다. 이와 관련해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가산·구로디지털단지로의 접근성이 좋은 금천구 등 대규모 일자리 지역으로 출퇴근이 용이한 지역에서 장기 거주를 희망하는 세입자들이 갱신권 사용을 늘려나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역전세난 우려 일단락, 갱신권 행사 비중 추가 확대 전망
이같은 흐름은 올해 초 ‘하반기부터 역전세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시장의 전망과는 상반된 움직임이다. 당초 시장에서는 갱신권과 전월세 상한제 등 임대차보호법 시행에 따라 전세가가 2021년 말∼2022년 초에 고점을 찍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었고, 올 하반기부터는 갱신 계약의 임대료가 기존 계약의 임대료보다 낮아 보증금 반환에 어려움을 겪는 임대인이 늘어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5월 넷째주 상승으로 전환한 후 24주 연속 오름세를 이어오는 등 시장의 전망과는 크게 달라진 경로를 걷고 있다. 약 2년 전 고점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에 있어 역전세 우려를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지만, 연초 예상했던 것보다는 많이 올랐다는 것이 시장 참여자들의 평가다.
구별 전셋값 상승률은 9월 기준 성동구가 전월 대비 1.5% 오르며 가장 큰 상승 폭을 그렸고, 이어 송파구(1.2%), 동대문구(1.09%), 용산구(1.05%), 마포구(1.03%) 등이 서울 평균 아파트 전세가 상승률(0.75%)를 크게 웃돌았다. 성동구 왕십리뉴타운 센트라스의 경우 5월 7억원에 거래됐던 전용면적 84㎡(2층)가 10월 9억원에 임차인을 맞으며 4개월 만에 2억원 가까운 시세 상승을 기록했으며, 송파구 헬리오시티는 지난 2월 7억5,000만원대에서 거래된 전용면적 84㎡가 최근 10억원을 넘는 호가를 형성했다.
지난해 하반기 최고 6%대까지 치솟았던 시중은행의 전세자금 대출 금리가 최근 3∼4%대로 떨어지고 대출 문턱이 대폭 낮아지면서 대출을 이용해 신규로 전세를 얻으려는 임차인이 늘어나자, 가을 이사 철인 지난달 서울 아파트 전세 거래 비중은 2년 4개월 만에 최대치인 62.1%를 기록했다. 이와 함께 대규모 전세 사기 사건이 주로 연립, 다세대 등에서 일어나 아파트 전세의 선호도를 끌어올렸다.
이에 갱신권 사용 비중도 한동안 꾸준히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2024 주택·부동산 경기전망’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내년 2.0% 오를 전망으로, 수요가 몰리지만 공급이 제한적인 서울의 경우 이보다 훨씬 큰 상승 폭을 그릴 것으로 예상된다. 여 수석연구원은 “내년에도 수요도 높은 신축 아파트 입주 물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데다, 금리 인상에 따른 월세 부담 증대 등으로 인해 전셋값이 상승할 것으로 예측돼 임차인들이 갱신권을 사용하는 비율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매물 부족은 지금부터”, 임대수요 소화에 최소 2년 예상
이처럼 전셋값이 꾸준히 오르고 있음에도 매물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 서울 일부 단지에는 부동산 폭등기에 나타났던 ‘전세 임차 대기’까지 나타나며 매물 부족 현상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반포구 등 수요가 밀집된 지역의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인근 아파트의 규모별, 금액별 전세 임차 희망자들의 신청을 미리 받아 향후 매물이 나오면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한 측에 소개하는 등 적극적인 영업 활동을 펼치고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 아실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3만3,009건으로 지난해 10월 말(4만7,158건)과 비교해 30.1% 줄었다.
전문가들은 서울 아파트 전셋값 상승과 매물 부족 현상이 단기간 내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봤다. 용산구 한남동과 보광동에 위치한 ‘한남3재정비촉진구역’ 재개발을 위한 주민 이주가 본격 시작됐기 때문이다. 해당 정비 사업으로 이주하게 된 가구는 관리처분계획인가 기준 총 8,300여 가구로 이 중 6,300여 가구는 세입자다. 용산구는 세입자 손실보상 절차가 남아있는 등 대규모 이주라는 점을 감안해 시장이 이들 수요를 모두 소화하기까지는 약 2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만 내년 서울 입주 물량(약 1만 호)은 올해(약 3만3,000호)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 예정이라 대규모 이주는 예상보다 훨씬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해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내년에는 아파트 입주 물량이 2만 호 넘게 줄어들어 전세 공급도 따라서 감소할 것”이라며 “전셋값 상승은 언제든 매매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면밀한 시장 모니터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