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사기 겹악재에 낭떠러지 몰린 전세, 흔들리는 임대차 시장 떠받쳐야

월세보다 전세대출 이자가 더 비싸다, 고금리에 월세로 돌아선 임차인들 “불안해서 전세 못 살겠다” 이어지는 전세사기 피해, 높은 전세가율까지 여전히 시장 맴도는 전세 소멸론, 임대차 시장 안정 위해 선제적 대응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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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unsplash

최근 고금리 상황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부동산 시장 곳곳에서 전세 사기 피해가 속출하며 전세 수요가 급감하기 시작했다. 주택 가격 상승을 기대하며 전세를 놓는 집주인들도 점차 감소하는 추세다. 우리나라 부동산의 한 축을 지탱하던 전세가 ‘소멸론’에 휩싸인 가운데, 일각에서는 선제적인 임대차 시장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회미래연구원은 「지속 가능 주거체제를 위한 주택 부문 정책 의제」라는 제목의 국가미래전략 insight 제80호 보고서를 발간, 이같이 밝혔다.

고금리에 흔들리는 전세시장

전세 계약은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서 선호되는 임대차 계약 형태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집값이 급등하자, 전세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무력화한 주범이자 가계부채 급등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집값 하락기에 접어든 뒤에도 깡통주택, 역전세난 등 전세를 중심으로 한 사회 문제가 끊임없이 고개를 들었다. 전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크게 악화했다는 의미다.

전세 거래 수요는 눈에 띄게 줄었다. 최근 몇 년간 전셋값이 크게 상승한 가운데, 고금리 사태가 이어지며 이자 부담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대출 이자가 월세 비용을 넘어서며 전세 계약의 가격적 메리트는 사실상 사라졌다. 이자가 빠르게 불어나자 전세대출을 아예 상환하지 못하는 임차인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부담을 견디지 못한 임차인들은 줄줄이 월세로 발길을 돌렸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 통계에 따르면 올해 1~9월 서울에서 월세를 낀 주택 임대차 거래량은 19만3,266건(계약일 기준)으로 전체 임대차 거래의 48.9%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2011년 관련 통계 집계가 시작된 이래 최고 수준이다(1~9월 기준). 월세를 낀 아파트 임대차 거래는 7만335건으로 작년 동기(5만6,733건) 대비 24% 이상 늘었으며, 다세대·연립 월세 거래는 3만5,687건으로 집계 이후 최초로 3만 건을 넘어섰다.

“전세 사기 무섭다” 몸 웅크리는 임차인들

급증한 전세 사기와 깡통전세 역시 전세 계약 기피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불안감의 시작은 약 1년 전 국내 부동산 시장을 뒤집은 서울 강서구 악성 임대인 김대성, 소위 ‘빌라왕’이었다. 김씨는 집값과 비슷하거나 높은 가격에 피해자들과 전세 계약을 체결하고, 보증금을 활용해 또 다른 집들을 매수했다. 일명 ‘무자본 갭투자’ 수법이다. 당시 경찰이 파악한 피해자는 1,669명, 피해액은 총 3,280억원에 달한다.

이후 전세 사기 피해지원 특별법이 시행됐지만, 전국 각지에서는 또 다른 ‘빌라왕’들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 수면 위로 떠오른 수원 전세 사기 의혹의 경우 전세 사기 고소인만 134명, 피해액은 약 190억원에 달한다. 경기도가 운영 중인 전세피해지원센터에는 400건 이상의 피해 사례가 접수됐다. 계약 중 절반가량이 반년 뒤 만료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차후 피해 규모는 한층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전세 사기 피해 사례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가운데, 전세가율은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전국 아파트의 전세가율은 75.2%로 8월(74.7%)보다 0.5%포인트(p) 높아졌다. 전세가율은 매매가 대비 전세가의 비율로, 전세가율이 높아지며 전세가가 매매가에 육박하거나 추월할 경우 세입자가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이 커진다.

부동산 시장 ‘지각변동’ 발생 가능성, 대응책은?

지금껏 임대인들은 미래 주택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를 전제로 전세 계약을 체결해 왔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이제 전세를 투자 수단으로 삼는 시대는 지났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급자도, 수요자도 전세를 외면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 부동산 시장의 한 축이 흔들리는 가운데, 선제적인 임대 시장 재정비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먼저 임대차 시장의 장기적 균형을 지킬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주택 점유 형태는 2025년까지 자가 60%, 민간임대 30%, 공공임대 10% 수준에서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만약 공공임대 비율이 전망치를 벗어나 10% 미만까지 하락할 경우, 민간임대 시장의 가격 변동으로 인한 충격을 흡수하기가 사실상 어려워진다. 주택 공급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보다 다양한 공급 모형을 통해 공공의 통제 하에 관리되는 임대주택의 비중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주택임대차 3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행 주택임대차 3법에 따르면 임차인은 1회에 한해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집주인은 일방적 거부권 행사가 가능하다. ‘주거권 확보’라는 본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정당사유제와 같이 임차인의 주거권을 확실히 보장할 수 있는 제가 필요하다. 정당사유제 하에서 임차인은 재계약 시마다 계약갱신청구를 할 수 있으며, 재계약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 법원에 사건을 청구할 수 있다.

법의 강제력을 고려해 장기매입임대아파트를 민간임대주택법의 적용 대상으로 재포함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실효성이 낮은 임대차3법보다 민간임대주택법을 통해 현재 100만 호 수준으로 감소한 임대사업자의 임대주택 대상을 확대하고, 장기적으로 임대차3법과 민간임대주택법을 통합해 시장 체계를 일원화하는 것이다.

주거급여 제도를 공공임대의 정책적 한계를 보완하는 ‘대안’으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우리나라의 공공임대와 주거급여는 각각 독립적인 제도며, 이로 인해 지원 대상 중복 및 통합 재정 부재 등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그런 만큼 주거급여를 공공임대의 대안으로 활용하는 선진국의 주거 체제를 본보기로 삼아 주거복지의 보조적 수단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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