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 내리자 ‘수출입물가’ 4개월 만에 하락 전환, 향후 국내 경제에 미칠 영향은?
5월 수입물가지수 2.8% 하락, 수출물가지수 1.3% 하락 수출입물가 하락, ‘물가 안정, 경상수지 개선’ 등 경제 전반에 호재로 작용 소비자물가지수 하락 추세엔 긍정적이나 여전히 대외 변수 등 불확실성 높아
지난달 수출입물가가 올해 처음으로 동반 하락세로 돌아섰다. 지난해 물가 상승의 주범이었던 국제 유가가 74달러 대로 떨어지면서 넉 달 만에 하락을 주도했다. 수입물가지수가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지수에 반영됨에 따라 이달 물가상승률도 소폭 둔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국제 유가 하락에 수출입물가 동반 하락 전환
한국은행이 14일 발표한 ‘2023년 5월 수출입물가지수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수입물가지수(원화 기준 잠정치·2015년 수준100)는 135.54로 한 달 전과 비교해 2.8% 하락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12% 하락한 수준으로, 원·달러 환율 상승의 영향에도 국제유가가 하락한 것이 주요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4월 평균 1,320.01원에서 5월 평균 1,328.21원으로 0.6% 상승했음에도, 한국으로 수입하는 원유(두바이유)의 월평균 가격이 지난달 배럴당 74.96달러로 한 달 전(83.44달러)보다 무려 10.2%나 내렸기 때문이다.
국제유가의 내림세는 광산품과 석탄 및 석유제품 등에도 하락 영향을 미쳤다. 광산품을 중심으로 한 원재료는 지난 4월보다 6.3%, 중간재는 석탄 및 석유제품과 화학제품 등이 내리며 1.6% 하락했다. 한편 자본재와 소비재는 각각 4월보다 0.1%와 0.3% 올랐다.
5월 수출물가지수도 116.66을 기록하며 4월보다 1.3% 내렸다. 올해 2월부터 3개월간 상승하던 추세가 하락 전환한 셈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11.2% 하락했으며, 전년 대비 하락 폭은 2010년 3월(11.3%) 이후 가장 컸다.
품목별로 살펴보면 지난달보다 석탄·석유제품(-7.7%), 화학제품(-2.4%), 제1차금속제품(-2.0%) 등은 수출물가 하락에 기여했지만, 농림수산품(1.3%), 컴퓨터·전자·광학기기(0.8%) 등은 상승했다.
수출입물가 동반 하락이 국내 경제에 가져올 변화
국제유가의 하락은 에너지 자원을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경제에 호재가 아닐 수 없다. 12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7월 인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67.12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국제 유가가 70달러 아래로 떨어진 것은 지난 2021년 1월 11일 이후 처음으로, 하락세가 지속된다면 수출입물가지수의 하락 추세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수출입물가지수 동반 하락은 두 가지 경제효과를 불러올 것으로 전망된다. 먼저 국내 물가상승률이 하방 압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서정석 한은 경제통계국 물가통계팀장은 “수입물가는 소비자물가의 하방요인으로 작용한다”며 “총지수로 봤을 때는 대략 1개월의 기간을 두고 반영되고, 품목에 따라서는 3개월 정도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고 말했다.
경상수지가 큰 폭으로 개선될 거란 전망도 수출입물가 하락을 반기는 또 다른 요인이다. 에너지 가격 하락에 따라 글로벌 수요와 국내 수요가 동시에 증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앞선 한은 관계자는 “수입 물가가 수출 물가보다 더 하락한 것은 교역조건 개선 요인으로 작동할 수 있다”며 “특히 반도체 부문에서 가격 하락세가 둔화하고 있어 이런 부분은 (경상수지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향후에도 국제유가의 하락세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등 주요국의 물가 수준이 여전히 목표치를 상회함에 따라 금리인상기가 연장되고, 그에 따른 달러화 강세가 지지를 받고 있다. 달러화 강세는 달러화로 거래되는 유가에 부정적이다. 다만 리오프닝을 통한 중국 경제 회복이 빠르게 이뤄진다면 국제 유가가 다시금 고개를 들 가능성도 있다.
6월 소비자물가지수 하락 추세 이어갈까?
지난해부터 상승세를 이어온 국내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올해 1월 5.2%를 기록한 이후 현재까지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2일 발표한 ‘2023년 5월 소비자 물가동향’에 따르면 전년 대비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3%까지 떨어졌다. 전기·가스요금 인상에도 19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셈인데, 이때도 석유류 등의 에너지 가격 하락이 주효했다.
국제유가 하락과 더불어 이처럼 소비자물가가 3%대 초반까지 떨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간 물가 안정에 총력을 기울였던 정부와 중앙은행의 의지가 담겨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해 7월부터 “지금 물가를 잡지 않으면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의사를 밝히며 한국은행 역사상 최초로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한 바 있다. 또 기재부 등 정부 차원에서도 독과점적인 성격이 있는 품목의 가격을 통제하는 등 개입을 통해 물가 안정을 꾀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왔다.
다만 근원물가 둔화는 여전히 더디다. 농산물과 석유류같이 가격 변동이 큰 품목을 제외해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4.3% 올랐다. 최근까지 국제유가가 꾸준히 하락추세를 보이는 건 긍정적이지만 국내외 경기 흐름, 공공요금 인상 정도 등을 고려할 때 향후 물가 경로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높은 상황이다.
한편 국내 금융투자 업계에선 국내 물가상승률이 재차 반등할 거란 주장도 나온다. A 증권사 리서치센터 관계자는 “고물가를 잡기 위해 고금리 기조를 유지하던 미국이 올 하반기 경기 침체 우려에 완화적으로 통화정책을 전환한다면 국내 물가 상승률이 재차 상승할 우려가 있다”면서 “경기 침체 우려가 줄어들 경우 미국 내 가계 소비 및 기업 투자 확대로 국제 유가 등의 에너지 가격이 상방 압력을 받으면서 이것이 곧 국내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