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하면 바보’라는 아파트 재건축 조합 비리, 경기도 “시스템 개발해 뿌리뽑을 것”

경기도,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 투명화 위해 ‘정비사업 종합관리시스템’ 구축한다 정비사업 비리는 일상, 수억원대 민‧형사상 고소는 업계 관행처럼 굳어져 뇌물죄‧배임횡령죄 이어 조합 절차상 감시절차도 강화돼야, 조합원 지키기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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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부동산 불패신화’의 역사에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이 한몫했다는 이야기는 업계의 정설로 굳어져 있다. 소위 단가 후려치기, 일감 몰아주기, 뒷돈 거래 등을 통해 공사비를 부풀려 착복하는 비리가 이어지다 보니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인식이 팽배해진 것이다.

이에 경기도가 불투명한 재개발‧재건축 조합의 회계자료와 정보 공개 등을 투명화하기 위해 관리 프로그램을 만들어 비리를 척결해 내겠다고 밝혔다. 오는 2025년 상반기 가동을 목표로, 최대 수조원에 달하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비리로 인해 공사가 지연되거나 조합원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경기도, 재건축 정비사업 투명화 위해 ‘종합관리시스템’ 구축할 것

22일 경기도는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의 불투명한 회계처리, 정보공개 지연 등으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정비사업 종합관리시스템’을 구축한다고 발표했다. 재개발‧재건축 정비사업은 평균 15년이 소요되는 긴 사업 기간과 작게는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수조원의 사업비가 움직이는 대규모 사업임에도, 불투명한 회계처리와 정보공개 지연으로 조합 내 분쟁이 자주 발생하는 데다 실제 소송까지 이어지는 등 사업 지연을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경기도에서 2021년부터 시흥, 의정부 등 5곳의 재개발·재건축 조합을 자체적으로 점검한 결과 법정 공개 대상 자료 공개 지연 및 작성 누락, 부당한 예산 집행 및 수당 지급, 업무추진비 관리 부실 및 원천징수 미이행 등 정보공개·예산·회계와 관련해 총 42건의 지적사항을 적발했다.

이에 경기도는 관례처럼 자행되는 조합의 회계 부정을 뿌리뽑기 위해 예산·회계·인사·행정 등 조합업무를 전산화하고 실시간으로 공개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의무화할 방침이다. 주요 기능은 ▲예산·회계·인사·행정 등 조합업무 전자결재 ▲전자문서 및 추진 과정 실시간 공개 ▲고도화된 추정 분담금 시스템 ▲모바일 서비스 제공 등이다. 현재 시스템 구축을 위한 보안성 검토 등 사전 절차를 진행 중에 있으며 추경을 통해 필요 예산을 확보한다면 2025년 상반기 운영을 목표로 올해 말 구축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아울러 경기도는 시스템의 빠른 정착을 위해 구축 전 시범운영과 함께 이용자별 매뉴얼 배포 및 집합, 방문 교육 등을 진행하겠다고 전했다. 또 ‘경기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조례’ 개정으로 시스템 이용을 강제할 방안도 추진하며, 별도 조례를 운영하는 경기도 내 50만 이상의 대도시에는 이같은 추진 사항을 공유해 같은 조례 개정을 시행하도록 독려할 예정이다. 조영선 경기도 노후 신도시정비과 일반정비팀장은 “정비사업 종합관리시스템 구축을 통해 각종 정보와 문서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조합원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해 신뢰성을 높이고 부정과 비리를 사전에 차단하겠다”며 “사업의 투명성‧신속성을 확보할 수 있는 해결 방안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비리의 온상 재건축 조합, 이익 위한 지리한 소송전으로 가득

아파트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비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서울의 대표적 재건축 단지 중 하나인 잠실주공5단지 조합원들은 “2016년 조합 선거는 부정선거였다”며 “검찰의 엄정하고 신속한 수사를 촉구한다”고 발표했다. 조합 임원 선거 당시 투표용지를 조작된 용지로 바꿔치기하거나 당선이 내정된 이들에 대한 정답표가 배포되는 등 부정이 난무했다는 이유에서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현장도 마찬가지였다.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단지’로 불리는 이곳은 공사비 증액 문제를 놓고 조합 집행부와 시공사업단과의 갈등으로 지난해 4월 공사가 중단된 바 있다. 사업 과정에서의 불법성 논란에 조합원들과의 의결 없이 총 13건1,595억원의 시공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는 둔촌주공 재건축 조합을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수사 의뢰하기도 했다.

재건축 조합 수사 경험이 풍부한 서울지방경찰청 소속의 한 수사관은 “내가 수사했던 한 조합은 몇 년 동안 고소, 고발 등 크고 작은 법적 분쟁만 27건이나 됐다”며 “워낙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다투다 보니 수사에 들어가도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토로했다. 조합원 간 갈등, 민‧형사상 고소와 고발 등 각종 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 정비사업의 현실이다. 워낙 복마전 같은 상황이 전국 재건축 현장에서 벌어지다 보니 ‘조합이 있는 곳에 반드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있다’는 말까지 생겨났다.

지난해 10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토교통부와 서울시로부터 받은 재개발·재건축 합동 실태점검 결과 서울에 위치한 31개 사업장에서 603건의 위반행위가 적발됐다며 정비사업 조합들의 비리 행위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럼에도 실제 기소로 이어진 사례는 전체 2% 수준에 불과하고 대부분 시정명령, 행정지도 등 경고 수준에 그쳐 조사 실효성이 낮다”고 꼬집었다. 또한 최 의원은 “현행 도시정비법으로는 정비사업 비리 행위에 대한 처벌이 거의 불가능한 만큼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설파하기도 했다. 이에 정비 업계에서는 “적발건수에 비해 처벌이 적었던 이유가 국가에서 시행한 실태점검이 과도한 법 잣대를 들이댄 탓 아니냐”며 “조합이 마치 비리의 온상인 것처럼 왜곡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실제로 실태점검 이후 수사를 의뢰했지만 대부분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조합원 인생 걸린 재건축 사업, 강력한 공공감시 제도 필요해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재개발‧재건축 조합이 저지르는 범죄행위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처벌 조항을 따로 구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관련 소송을 맡았던 한 변호사는 기고 글을 통해 “도시정비법은 재건축사업과 관련해 조합의 임원들이 저지르는 범죄행위 및 벌칙조항을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재건축조합과 관련된 범죄는 주로 공무원에 대한 뇌물죄와 뇌물공여죄처럼 부정한 돈을 주고받는 당사자 사이에 은밀한 거래에 있어 증거를 잡기가 힘들다”고 지적했다.

현재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는 △수뢰액이 1억원 이상인 경우에는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 △수뢰액이 5,000만원 이상 1억원 미만인 경우에는 7년 이상의 유기징역 △수뢰액이 3,000만원 이상 5,000만원 미만인 경우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또 형법 제129조, 130조, 132조에 따라 수뢰액의 2배 이상 5배 이하의 벌금을 병과한다. 이에 일각에서는 도시정비법에 조합원들의 뇌물죄를 따로 구분하고, 검찰청에 전문 수사팀을 만들어 조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부가 재건축 비리를 감독하고 처벌하겠다며 강경 대응에 나섰지만, 아직 가시적인 성과는 찾아보기 어렵다. 재건축 사업 자체가 기본적으로 조합원들을 위한 사업인 만큼 정비구역 지정·고시, 추진위원회 승인, 조합·시행·관리처분계획인가 등 강력한 공공 감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법과 제도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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