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 없는 지역에 ‘케이블카’ 건립은 낭비, 관광 메리트 개발이 우선
케이블카 설치했지만 관광객은 ‘텅’ 적자만 깊어진다 지역 내 관광요소 전무한데 케이블카로 인한 관광객 유치는 ‘허상’ 소중한 국민 혈세 낭비 않도록 사업 전 타당성 조사 철저히 이뤄져야
지방자체단체에서 관광객 유치 및 접근성 증대를 위한 목적으로 케이블카를 설치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 전국 케이블카의 성적표는 초라한 수준이다. 심지어 관광지 개발이나 관광객 수요 조사 없이 무분별한 건립을 진행해 적자 누적으로 인한 케이블카 운행 중단 사태도 발생하고 있다.
황금알 아닌 적자만 낳는 ‘애물단지’ 케이블카
경북 울진군에 있는 왕피천케이블카는 지난 1일부터 운행을 중단했다. 민간 운영사인 울진케이블카가 울진군에 연간 시설 임차료 3억원을 납부 기한까지 내지 못한 이유에서다. 심지어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지난해 7월에도 8일 동안 연간 시설 임차료를 내지 못해 운행을 중단한 바 있다. 울진군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3개월간 체납 임차료를 나눠서 받았다”며 “현재로서 어떻게 할 방법이 없고, 계약 해지 절차를 밟아 다른 운영업체를 찾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전국에서 적자 누적으로 인한 케이블카 운영난은 비단 왕피천케이블카의 사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지난 2021년 개통한 명량해상케이블카는 개통 첫 해 15억원의 영업손실을 봤으며, 지난해 영업손실은 2배 이상 증가한 32억원에 달했다. 2013년 개통한 밀양 얼음골케이블카 역시 개통 이듬해부터 매년 10억원 이상의 적자를 보는 중이다.
이 같은 사태는 최근 10년간 지자체들이 수익 보장은 물론 지역 관광 활성화에 대한 기대로 케이블카를 우후죽순 설치한 데 기인했다. 11일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전국 관광용 케이블카는 총 41개로, 2010년 이후 설치된 케이블카만 전체의 절반 이상인 24개에 달한다. 심지어 지금도 울산시 울주군의 영남알프스 케이블카, 대구 달성군의 비슬산 케이블카, 경북 문경시의 문경새재 케이블카, 부산시의 황령산 케이블카 등의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응진 대구대학교 관광경영학과 교수는 “지자체들이 관광 수요를 감안하지 않고, 단순 하드웨어 개발에만 치중에 벌어진 상황”이라고 설명하며 “지자체는 환경 문제와 전체 관광객 수요를 판단해 (케이블카 설치를) 신중히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케이블카만 있으면 관광객 몰려온다? 어불성설
지자체에서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관광객 유치 증대’에 있다. 케이블카를 타려는 관광객이 유입되면 주변 상권 활성화를 통해 지역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김경태 충남연구원 문화관광디자인연구부 책임연구원도 ‘케이블카 설치 시 고려 사항에 관한 사례 연구’ 보고서를 통해 케이블카로 인한 우수한 경관 조망과 타 관광자원과의 연계성 등의 이점을 제시하며 사업 타당성이 있는 경우 케이블카 건립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 도움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바 있다.
하지만 케이블카 하나만 보고 관광지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제아무리 케이블카 내 시설 및 식음부 인프라가 탄탄하게 조성되고, 케이블카의 조망이 주변 자연경관과 수려하게 어우러진다 한들 인근 지역의 관광자원이 부족할 경우 모객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케이블카 설립에만 치중한다면 경북 울진군의 왕피천케이블카나 밀양 얼음골 케이블카처럼 실패할 확률이 높아지게 된다.
섣부른 판단으로 국민 세금만 낭비됐다
그럼에도 지자체들의 케이블카 설치 경쟁은 여전하다. 지난 2월 환경부는 강원도 양양군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케이블카 설치사업 환경영향평가에 ‘조건부 협의’ 의견을 통보했다. 41년간 미뤄지던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자 여러 지자체에서 “설악산은 되는데 우리 지역은 왜 안 되느냐”며 반발했다.
이에 전남 구례군은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를 위해 TF팀까지 조성해 실무 회의에 돌입했고, 상주시의회도 속리산 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를 위한 기본계획과 타당성 조사 용역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박주형 국민의힘 상주시 의원은 “속리산 문장대는 상주에 있는데, 관광객들은 충북 보은에서만 몰려든다”며 “문장대에 쉽게 올 수 있도록 케이블카를 설치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 시민도 “경북 상주에 가보고 싶은 특색 있는 관광지나 유명 맛집 등이 없다”며 “속리산 문장대를 위한 산행 목적이 아니라면 그 돈으로 대구나 전주에 갈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경북 상주에서 가볼 만한 관광지’를 검색할 경우 폭포나 솔숲, 사찰 등만 검색된다. 아이들과 국내 여행을 가기에도, 학생들이 현장 체험학습을 가기에도, 외국인들이 관광을 가기에도 적절하지 않다. 관광객 입장에서 ‘굳이’ 상주까지 가야 할 이유가 충족되지 않는 셈이다. 그런 만큼 이 상황에서 상주시의회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속리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예산 낭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반면 관광객 유치를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고안하는 지자체도 있다. 제주도는 지난 2009년부터 여행사와 지자체 간의 관광 신상품 개발, 마케팅 등의 업무협약을 체결해 관광객 유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전라남도와 강원도에서 해외관광객 유치를 위해 전담 여행사를 모집하고 외국인 관광객 인센티브 지원계획 등을 발표했다. 울산시 역시 종합여행사를 대상으로 외국인 4인 이상의 단체 관광객을 유치해 울산 소재 관광지와 식당을 방문하면 최대 5,000만원의 인센티브를 지급하겠다고 나섰다.
김 책임연구원에 따르면 서울 남산, 통영 미륵산 등의 일부 고수익형 케이블카가 연평균 약 34억원, 하루 약 1,000만원의 수익을 얻는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케이블카의 성공이 아니다. 이미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에 케이블카라는 관광상품이 추가돼 케이블카를 통한 자연경관 조망과 편리한 시설이라는 복합적 요소가 적용된 결과다. 케이블카 건립에 수백 억원 대의 사업비가 드는 만큼 국민들의 혈세가 낭비되는 일이 없도록 신중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