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세액공제율 올라도 냉담한 시장, “투자비·R&D 지원이 급선무”

기획재정부 “콘텐츠 제작비 세액공제율 국가전략기술 분야 수준까지 끌어올리겠다” 25~35% 세액공제 기본으로 깔고 가는 콘텐츠 선진국들, 우리나라는 이제야 ‘출발선’ 지원 강화에도 업계 반응은 싸늘, 제작비보다 투자비·R&D 세제지원 강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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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궁지에 몰린 K-콘텐츠 산업을 격려하기 위해 제작비 세제 지원을 확대한다. 4일 기획재정부는 ‘2023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 영상 콘텐츠 제작비 세액공제율 상향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정부의 콘텐츠 세제 지원 범위가 ‘직접 제작비’에 국한돼 있는 이상, 공제율 인상의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콘텐츠 시장 구조를 고려하면 사실상 세액공제 혜택을 받는 기업은 소수에 그친다는 것이다. 실질적인 시장 활성화를 위해서는 단순 제작비뿐만 아니라 콘텐츠 투자 비용, 콘텐츠 R&D 비용 등 산업 전반에 걸친 세제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쌓여가는 토종 OTT 적자, 제작비 세액공제율 대폭 상향

지난해까지만 해도 국내 영상·콘텐츠 제작비 세액공제 혜택은 TV 등 방송 프로그램과 영화에 국한돼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OTT 서비스가 급성장하자, 드라마·영화 등 콘텐츠 제작에 대한 세액공제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을 통해 대기업이 OTT 콘텐츠 제작비용 중 3%, 중견기업은 7%, 중소기업은 10% 수준으로 세액을 공제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10% 이하에 불과한 세액공제 혜택으로 토종 OTT 플랫폼을 ‘적자의 늪’에서 끌어올릴 수 없었다. 티빙, 웨이브, 왓챠 등 토종 OTT 플랫폼 기업들은 콘텐츠 원가 상승으로 인해 수년간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티빙과 웨이브는 지난해 콘텐츠 원가로 각각 1,168억원, 2,111억원을 지출했다. 이는 전년 대비 65.2%, 45.4% 급증한 수준이다. 티빙, 웨이브가 지난해 떠안은 적자는 각각 1,192억원, 1,217억원에 달한다.

이에 정부는 콘텐츠 제작비 세액공제율을 미래차·반도체·배터리 등 국가전략기술 분야에 준하는 수준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르면 미래차·반도체·배터리 등 국가전략기술 분야에 투자하는 중소기업은 최대 25%, 대기업·중견기업은 15%의 세제 혜택을 받는다. 차후 K-콘텐츠 제작사 역시 이와 유사한 수준의 세액공제 혜택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선진 시장의 ‘파격적인’ 콘텐츠 세제 지원

한편 서방 선진국의 경우 콘텐츠 제작·투자비 25~35% 수준의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선제적으로 콘텐츠 제작 사업의 부가가치 창출 효과에 주목, 높은 세액공제율을 적용해 시장 발전을 유도해 온 것이다. 국내 콘텐츠 시장은 이번 공제율 상향을 통해 이제서야 ‘출발선’에 선 셈이다.

일례로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인건비 등 콘텐츠 고정 제작 비용의 20%를 세액공제해준다. 아울러 주 내에서 발생한 시각효과(VFX) 비용(5%), 도심 외곽 촬영에서 직원 고용(최대 15%) 등 추가 공제 기회도 존재한다. 캘리포니아 영화위원회(California Film Commission)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지난 2021년 6,030만 달러(약 786억원)에 달하는 세액공제 혜택을 받기도 했다.

사진=넷플릭스

미네소타주는 올해부터 영화 제작 세액공제율을 25%까지 상향했다. 뉴욕주도 최근 콘텐츠 제작비 세액공제 한도를 연간 4억2,000만 달러(약 5,470억원)에서 7억 달러(약 9,116억원)까지 확대했으며, 세액공제율도 25%에서 30%까지 인상했다.

프랑스의 경우 콘텐츠 투자자엔 투자 금액의 30%, 제작사엔 제작 비용의 20% 수준의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하며, 감면세액이 실제 세액보다 많을 경우 차액을 현금으로 반환해준다. 영국에서는 콘텐츠 제작을 통해 이익이 발생한 경우 제작 비용의 80~100%를 소득공제해주며, 손실이 발생할 경우 손실액의 20~25%를 세액공제해준다.

투자비·R&D 등 다방면에 걸친 지원 필요

한편 OTT 플랫폼 기업들은 제작비뿐만 아니라 콘텐츠 투자비 등 다방면에 걸친 세제 지원 혜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플랫폼 기업들이 실질적으로 콘텐츠 투자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세금 부담을 경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조세특례법은 제작사가 외부 투자를 받아 콘텐츠를 만들 경우 자금을 댄 투자자는 세액공제를 받을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세액공제 지원 범위가 ‘직접 제작비’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 OTT 시장에서 유통되는 콘텐츠는 외주, 투자금 유치 등 외부 인력·자금을 활용해 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콘텐츠 제작이 아닌 ‘콘텐츠 유통’에 무게를 두고 있는 OTT 기업이 세액공제 요건을 충족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셈이다.

콘텐츠 R&D를 위한 별도의 세제지원 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글로벌 OTT 사업자들은 국내에서 특수효과 등의 회사에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면서 콘텐츠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도전적이고 신선한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일반적인 기술 R&D처럼 높은 초기 투자 비용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R&D 세제지원 제도는 제조업 기준으로 수립돼 있어 프로젝트별 아웃소싱으로 진행되는 콘텐츠 산업에는 적용이 어려운 실정이다.

업계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히 공제율 인상뿐만이 아니다. 단순 수치보다 국내 시장의 콘텐츠 제작 및 수익 구조에 초점을 맞추고, 보다 실효성 있는 지원책을 통해 시장 활성화를 유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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