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수입처 다변화를 위한 시도, ‘EU 핵심원자재법안’이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은?

‘신보호주의’ 채택한 미국 IRA 법안 발표에 입법화 서두른 EU ‘전략원자재’와 ‘핵심원자재’를 규정하고 관리하겠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 ‘원자재 재활용 요건 강화’ 등에 따라 역내 거점 둔 우리 기업에도 영향 미칠 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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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세계 주요국들이 기후변화 대응과 친환경 산업 육성에 나선 가운데, EU 집행위원회가 지난 3월 ‘EU 핵심원자재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했다. 그간 EU가 관리해 온 16개의 전략원자재를 포함한 총 34개의 핵심원자재(critical raw materials)는 경제적 중요성과 공급 리스크에 따라 지정됐다.

이와 관련해 국회입법조사처(입법처)는 7일 ‘유럽연합 핵심원자재법안의 주요 내용과 시사점’을 다룬 보고서를 발간하고, 해당 법안이 우리나라 산업에 미칠 영향과 우리 기업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기울여야 할 정책적 노력 등에 관해 제언했다.

주요 원자재 수입의존도 높았던 EU, ‘미국 IRA’ 발표가 결정적 계기

EU는 디지털기기, 전기자동차 등에 사용되는 주요 원자재의 수입의존도가 높은 축에 속한다. 특히 제조 이차전지와 반도체 소재에 대한 수입의존도는 중국 등 특정 국가에 집중돼 있다. 이에 더해 코로나19 위기, 러-우 전쟁의 발발, 중국의 자원 무기화 정책 추진 등으로 주요 원자재 생산국의 수출이 중단되자 수요와 가격 측면에서 핵심원자재 공급망 관리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돼 왔다.

결정적으로는 지난해 8월 발표된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EU가 원자재공급망 확보를 위한 입법화를 서두르게 된 계기가 됐다. IRA에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 내 핵심광물의 최소 40%가 미국 또는 미국의 FTA 체결국에서 추출 또는 처리되거나, 북미에서 재활용된 경우의 한에서만 3,750달러(약 493만원) 상당의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지리적 차별 조항이 포함되면서 FTA를 맺지 않은 EU는 유럽산 핵심광물에 대해 미국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에 IRA 발표 바로 다음 달인 지난해 9월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국정연설을 통해 핵심원자재법안을 발표했다. 이후 올해 3월에는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유럽산 핵심광물도 IRA의 보조금 대상에 포함되도록 핵심광물협정에 관한 성명서를 내고 법안을 채택했으며, 지난 6월에는 EU 이사회에서 입법 후 후속조치 및 일정에 대해 3자 협의를 위한 합의안을 채택함에 따라 대상 원자재 범위 확대, 모니터링 및 보고기간 확대 등 입법내용이 구체화되고 있다.

‘EU 핵심원자재법안’의 특징과 주요 내용

EU 핵심원자재법안은 ‘전략원자재’와 ‘핵심원자재’를 규정하고 관리하겠다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한다. 먼저 EU는 전략원자재를 ‘전략적 중요성과 예상 수요 증가 및 생산량 증가의 어려움 측면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원자재’로 규정하며, 비스무트 붕소, 코발트, 망간, 니켈, 희토류 등 16개의 원자재를 전략원자재로 지정했다.

핵심원자재에 대해선 ‘전략원자재를 포함해 경제적 중요성과 공급 리스크가 높은 기타 원자재’로 규정했다. 이에 전략 원자재 16개와 안티모니, 비소, 보크사이트, 중정석 등 34개의 원자재를 선별했으며, 해당 목록을 4년마다 갱신할 예정이다.

이 법안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이차전지 산업의 주원료인 영구자석과 관련된 원자재에 관한 규정이다. 법안은 수입의존율이 높은 영구자석의 원재료 공급 안정성을 위해 기업에 영구자석을 포함한 원자재 재활용 및 정보 공개 의무를 명시하고 영구자석의 역외 반출금지가 강조하고 있다.

또한 원자재를 회수하는 시스템 구축도 주요 특징 중 하나다. 그간 EU는 역내 원자재 추출 가능성이 미국에 비해 낮아 재활용 역량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의 IRA와 달리 법안에 순환경제를 명시함으로써 원자재 가치사슬을 채굴·가공·재활용까지 확대하는 전략까지 계획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IRA 제정 사례처럼 제정 후 대응은 늦어, 정부의 선제적 지원 필요

전문가들은 EU 핵심원자재법안이 현 EU 집행위 임기 만료 전인 내년 10월쯤 입법화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IRA와 달리 지리적 차별조항은 없지만, EU가 역내 가치사슬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원자재 재활용 요건 강화와 원자재 관련 정보 고액 의무 등 회원국에 부과하는 의무에 따라, 역내에 거점을 둔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의 생산 공장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이와 관련해 입법처는 미국 IRA 제정 사례와 같이 제정 후 대응 방식은 그 피해를 키울 가능성이 있는 만큼, EU 수출기업 및 진출예정기업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대응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입법 전 정부의 선제적인 지원이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입법처는 먼저 핵심원자재 목록 상시 모니터링 및 관련 기업에 맞춤형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2011년 14개, 2014년 20개, 2017년 27개, 2020년 30개 광물종으로 꾸준히 확대된 EU의 핵심원자재는 향후 EU의 산업 전환 속도와 변화에 따라 더 추가될 수 있다. 이에 국내 기업에 미치는 산업군의 원자재에 대한 지속적인 상시 모니터링이 필요하며, 관련 기업에 EU와 각 회원국의 규제 관련 맞춤형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실제 산업 현장에서 대응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미중 분쟁으로 대표되는 자국 우선주의 등 최근의 국제정세를 고려할 때 국가가 공급망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주도적인 역할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지난해 요소수 부족 사태 이후 기획재정부에서 약 100일분 정도의 비축 목표를 세워 공급망 안정화를 꾀하고 있지만, 단기적 비축량 중심의 공급망 안정화는 직접적인 공급망 위기나 사전예방 차원의 대응을 하기엔 한계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비축물에 대한 실제 관리가 어려운 상황을 고려할 때 핵심광물안보파트너십(MSP) 등 글로벌 광물 협력 체계 및 동맹국과의 광물 협력 관계를 점검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마지막으로 입법처는 EU와 마찬가지로 공급망 안정화 관련 법률을 입법화하고 그 목표를 구체화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21대 국회에서 ‘경제안보를 위한 공급망 안정화 지원 기본법안’을 발의했으나, 공급망 위기상황, 위기품목 등에 관한 정의 규정이 구체적이지 않고 사후 위기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런 만큼 주요 국가의 공급망 재편 등의 동향에 발맞춰 주요 산업에 대한 공급망 취약점을 분석하고 법률, 기금, 조직 등의 법제화를 추진하는 EU의 사례를 참고해 입법과정에서부터 공급망 안정 품목과 목표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정부 지원의 우선순위를 결정할 규정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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