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가 ‘퀄리티’까지 뛰어 넘은 OTT 업계, “규제 일변도 정부의 변화 필요하다”
설문 응답자 61%, “지상파·케이블TV 필요성 못 느껴” 각종 규제 시달리는 방송사, 국내 OTT 사이에선 ‘역차별’ 논란도 콘텐츠 폭력성에 포커스 맞추는 정부, 보다 객관적인 시선 필요
넷플릭스·디즈니+ 등 OTT 활성화에 따른 방송사 외면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운 OTT에 방송사들의 강점이었던 ‘퀄리티’마저 따라잡히면서 사실상 주도권을 빼앗긴 모양새다. 특히 최근 조사 결과에선 성인 10명 중 6명이 지상파, 케이블TV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7명은 TV 프로그램이 OTT의 재미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응답했다.
이젠 방송사보다 콘텐츠가 더 중요한 시대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레인모니터가 19~59세 1,000명을 대상으로 OTT 서비스 이용 실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61%가 지상파, 케이블TV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전체 응답자의 82%는 앞으로 TV화면보다 디지털기기로 방송을 보는 사람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88%는 이젠 방송사보다 콘텐츠가 중요한 시대라고 답했고, 원하는 콘텐츠를 보기 위해 유료 결제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응답자도 62%나 됐다.
실제로 돈을 내고 OTT를 이용하는 이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 반면 방송사 콘텐츠의 시청률은 크게 떨어지고 있다. 최근 성황리에 방영된 드라마를 살펴보면 대부분 넷플릭스·디즈니+ 등 OTT가 만든 작품들이다.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무빙>은 디즈니+가, 한때 이목을 집중시켰던 <더 글로리>는 넷플릭스가 만들었다. 이외 신선한 소재로 큰 주목을 받았던 <오징어 게임>, <소년심판> 등 화제작 또한 대부분이 OTT 작품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각에선 “방송사에선 왜 신선한 소재의 드라마를 만들지 못 하나”, “방송사보다 넷플릭스가 만들면 확실히 다르다” 등 방송사에 대한 비판이 쏟아진다. 같은 주제여도 넷플릭스가 만들면 퀄리티가 훨씬 높다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차이가 ‘제작비 규모’에서 나온다고 분석했다. 실제 막대한 자금력을 보유한 넷플릭스와 디즈니+는 작품당 수백억원의 제작비를 투자하고 있다. 이는 국내 드라마 평균 제작비의 4~5배 수준이다. 제작 과정에서 간섭이 최소화된다는 점도 OTT가 지닌 강점이다.
반면 방송사의 경우 자체적으로 투입할 수 있는 제작비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다. 때문에 PPL, 협찬 등을 조건으로 다양한 투자를 유치해야만 한다. ‘선공급 후계약’ 관행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방송사는 제작사가 플랫폼에 콘텐츠를 먼저 공급하고 흥행 여부가 드러난 후에야 계약을 맺는다. 관련 IP와 해외 유통권 등을 독점하는 대신 ‘선계약 후공급’을 원칙으로 제작비 전액을 지원하는 넷플릭스의 기조와는 상당히 다른 양상이다.
“방송 규제 너무 심해, 국내 OTT 역차별도 문제”
콘텐츠 소비 플랫폼 구별이 없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방송에 대한 규제가 너무 지나치다는 비판도 있다. 실제 부가통신사업자로 분류되는 OTT는 규제를 거의 받지 않는 반면 방송사는 정부로부터 각종 규제에 시달리고 있다. 이를 두고 방송가에선 “‘기울어진 운동장’ 정도가 아니라 국내 방송사들에만 쇠사슬을 묶어놓고 달리기 시합을 시키는 격”이라는 하소연까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과감하게 규제를 철폐해야 OTT와 경쟁에서 방송사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외 공룡 OTT와 경쟁해야 하는 국내 OTT 입장에서도 정부 규제는 난감할 따름이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는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은 방송법과 IPTV법 등을 하나로 묶으며 OTT도 하나의 미디어 서비스로 간주하는 내용이 골자로, 결국 OTT를 보다 체계적으로 규제하겠단 취지다. 이에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OTT들도 국내에 활발하게 진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원활하게 경쟁하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성장할 수 있어야 하는데 기존 방송·미디어 쪽 규제는 강해 우려가 된다”고 지적했다.
역차별 논란도 적지 않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지난 3년간 국내에서 1조2,330억원을 벌어들였으나 세금은 0.5%인 58억6,000만원을 납부하는데 그쳤다. 넷플릭스는 한국 시장에서 벌어들인 수익 중 해외 본사 수수료 명목으로 9,591억원을 챙겨간 바 있다.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와 망 이용료를 놓고 3년째 법적 공방을 펼치고 있는 점도 국내 OTT 입장에선 불편한 지점이다. 이와 관련해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국내 사업자들은 망 이용대가를 지불하고 있는데 반해 일부 글로벌 사업자들은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면서 “글로벌 사업자와 국내 OTT 사업자의 형평성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전문가들 “정부 포커싱 너무 한정돼 있어”
그러나 정부의 규제 일변도 정책은 정권의 변화와 무관하게 꾸준히 유지되는 모양새다. 특히 전문가들 사이에선 지난 정권이 미디어 산업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비판이 쏟아진다. 전문가들은 “지난 정권은 미디어를 언론으로 국한시켜 규제 대상으로 봤을 뿐 진흥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국내 미디어 시장이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하고 있는 한편 정치권에서 아날로그식 법체계를 놓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주요 문제점으로 꼽혔다.
콘텐츠의 폭력성에만 포커스를 맞춰 관련 규제를 강화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해외 국가들의 경우 OTT 규제보단 자국 내 미디어 산업 경쟁을 활성화하고 콘텐츠 생태계 건전성을 제고하는 데 초점을 둔다. 그런 만큼 국내에서 또한 기존 방송 심의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기보단 기존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OTT의 인기가 ‘색다르고 현실감 있는 차별화된 콘텐츠’에 있다는 점이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디지털 기기를 보유하고 있는 전국 만 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3 OTT 서비스 이용 패턴 관련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10명 중 8명(81.1%)이 공중파에서 보기 힘들었던 신선한 소재, 연출의 콘텐츠를 OTT에서 자주 본다고 답했다. 70.3%는 OTT에서 다루는 콘텐츠가 지상파나 케이블TV에서 다루는 콘텐츠보다 더 리얼하고 현실감 있다는 데 공감했고, 수위가 높은 콘텐츠에 대한 기대감도 59.6%나 됐다.
업계의 오랜 숙원이던 ‘자체등급분류제도’ 도입에 대해서도 찬성 여론이 짙었다. 물론 청소년들이 유해한 콘텐츠에 노출되거나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콘텐츠가 많아질 것 같다는 등 이유로 자체등급분류제도 도입을 반대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그 비중은 전체의 20%에 불과했다. 반면 찬성 입장은 58%에 달했다. OTT의 성장에 따라 방송사가 뒤처지고 있는 것도, OTT 내 폭력성 짙은 콘텐츠가 점차 많아지고 있는 것도 모두 사실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OTT 규제를 위한 수단으로써 이용돼선 안 된다. 시대적 맥락과 콘텐츠 자체에 대한 고려를 강화하면서 시대적 흐름에 맞는 정책적 관점을 수용할 필요가 있다. OTT를 둘러싼 갈등 이슈는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정책 입안자의 보다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