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미운오리 취급받았던 ‘원자력 에너지’, 이제는 세계가 주목하는 ‘백조’ 됐다

글로벌 친환경 정책 전환에 따른 ‘원자력 르네상스’ 조짐 원자력 발전을 탄소중립 이행의 핵심 수단으로 삼는 ‘미국’ 국내서도 원전 확대 바람 불지만, ‘인력 이탈’ 문제 심각

160X600_GIAI_AIDSNote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발전소 전경/사진=한국수력원자력 제공

글로벌 친환경 정책 전환에 따라 원전의 지위가 변화하고 있다. 미국, 영국 등 세계 주요국은 원전을 규제하는 정책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에너지 안보와 탄소 배출 감축 효과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기 위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한 원전 사업 확대에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고 있다. 우리 정부도 과거 탈원전 정책의 전면 재수정에 들어가면서 관련 정책을 내놓고 있는 가운데, 원전 업계 내 인재 개발 및 인력 이탈 문제에 대한 지원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시 원전에 주목하는 글로벌 주요국들

세계 각국에선 신규 원자로 건설하고 원전 관련 공급망 구축에 한창이다. 올해 초 영국은 영국원자력청(GBN)을 새롭게 출범시키며 2050년까지 신규 원전을 최대 8기 더 짓기로 했다. 프랑스 역시 기존 원자로 수명을 연장하는 방안과 함께 원전 6기 신설을 검토 중이다. 이 밖에도 캐나다, 핀란드, 중국, 인도 등도 원전 확대 계획을 추진 중이다.

원자력 발전은 오일쇼크로 고통받던 1970년대까지만 해도 대체 에너지로서 높은 기대를 받았다. 미국원자력위원회는 1974년 당시 ’20세기 말에는 원자력이 전 세계 전력 생산의 절반을 담당할 것’이라 전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핵폐기물 처리 문제나 사고 발생 시 위험성 등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자 현재 전 세계 전력의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그치게 됐다.

그러나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이어진 에너지난으로 인해 원전이 전 세계적으로 재조명 받기 시작했다. 특히 기후 위기 속 저탄소 배출이라는 친환경성과 더불어 비용 대비 효율이 높은 경제성에 주목하고 있다. 에너지 위기 해결책을 제공하면서도 친환경에 해당하는 청정 에너지원이란 공감대가 재차 형성된 셈이다.

원전 기업 세제 혜택 확대하는 미국, 자국 내 공급망 복원도 추진

원전 산업 되살리기에 가장 열중인 국가는 바로 미국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세운 IRA를 통해 원전 업계에 대한 세액 공제와 대출 보증 등의 혜택을 확대하면서 원자력발전을 탄소중립 이행의 핵심 수단으로 삼고 있다.

IRA에 따르면 기존 원자로에서 생산한 전기는 2024년부터 2032년까지 MWh(메가와트시)당 최대 15달러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신규 원전을 건설하는 경우에도 설비투자액의 최대 30%까지 세액 공제 혜택이 적용되고, 기존 석탄발전소 부지에 원전을 짓는 경우에는 추가로 10%가 공제된다.

IRA에는 차세대 SMR 원전의 핵연료인 고순도저농축우라늄(HALEU) 공급망 구축에 7억 달러(약 9,260억원)를 투자하는 내용도 담겼다. HALEU는 신형 원자로 보급을 위해 꼭 필요한 물질로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신형 원자로 핵연료에 사용된다.

미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원전 이용의 지속 및 확대를 유도하자 기업들도 IRA 특수를 노리고 원전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영국의 농축우라늄(핵연료) 회사 유렌코는 올해 초 미국 뉴멕시코주 남동부에 위치한 유니스의 핵연료 생산 공장을 확대하기로 했다. 북미 대륙에서 농축우라늄을 공급하는 유일한 시설인 유니스 공장은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증설 계획이 없었다. 또 지난해 10월에는 캐나다 최대 우라늄 생산업체인 카메코(Cameco)가 미국 원자력 전문 기업 웨스팅하우스를 약 78억7,500만 달러(약 10조4,907억원)에 매수하기도 했다.

2022년 기준 전 세계 국가들의 원자로 보유 현황/출처=스태티스타

국내 원전 기업엔 지금이 기회

우리나라 역시 지난해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에서 2030년까지 원전 발전 비중을 전체의 33% 가까이로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지난 정부 시절 탈원전 정책에 대한 전면 재수정에 들어간 셈이다.

원전을 신규 수출 동력으로 설정한 정부는 체코와 폴란드 등 해외에서 원전 세일즈를 본격화하고 있으며, 향후 7년 안에 10기의 원전을 수주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이에 따라 한국수력원자력, 한전기술, 한전KPS, 두산에너빌리티, 대우건설 등 원전 수주를 위한 민간의 ‘팀코리아’도 해외 수주전에 동참해 힘을 보태고 있다.

미국 IRA에 따른 원전 산업 활성화 기대감으로 국내 기업의 미국 원전 시장 진출 기회가 커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IRA에 따라 기존 원전에 대해 세제 혜택이 주어지면서 폐지를 고려했던 수십 기의 원전이 계속 운영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들 원전의 낡은 설비 교체가 필수적인 상황”이라며 “미국은 대형 원전 공급망이 망가져 현재로선 이를 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단기적으론 설비 교체시장이 형성될 것이며, 중장기적으로는 SMR과 원자력수소와 관련한 신흥 시장에도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른 불안감으로 국내 원자력 전문인력 이탈이 가속화되는 점은 문제로 지적된다. 지난 4월 한국원자력산업협회가 원자력산업계 전반의 실태를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 동안 카이스트 원자력공학과의 하반기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학사과정 지원자는 0명이었다. 전문가들은 현재 정책만으로 원자력 산업의 발전과 전문 인력 확충이 어렵다고 말한다.

한국원자력산업협회 관계자는 “원자력 관련 기업 758개를 대상으로 사업 확장에 따른 필요 인력 수요를 집계한 결과 향후 5년간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원자력 전문 인력은 2,948명에 달하는 반면, 원자력공학 등 관련 학과를 졸업하고 업계에 진출하는 인력은 극소수다”라면서 “현 정부의 친원전 선언 이후 원자력 관련 기업들의 사업 확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 인재 개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