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44년 학술 협력’ 끊긴다? 반도체 너머까지 번지는 갈등
깊어지는 미·중 갈등, 1979년 체결 '과학기술 협력 협정' 끝나나 기후 분야에서만큼은 협력 관계 유지했다, 범지구적 연구가 '마지노선' 전체 학술 출판물 40% 펴내던 양국의 분열, 전 세계 학계에 타격
미국과 중국 사이 지정학적 갈등이 양국의 학술 협력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의 경제 전문 매체 CNBC는 24일(현지시간) “1978년 시작된 이래 확장세를 이어오던 미·중 학술 협력은 양국 정부 간 경쟁 심화, 스파이 활동 우려 등을 이유로 후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학계에서는 차후 기후 위기 등 범인류적 성격을 가진 분야 외에서는 양국의 학술 협력이 명운을 다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끝이 보이는 美-中 ‘과학기술 협정’
지난 1979년 미·중 양국은 과학기술 협력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당시 외교관계 정상화 이후 최초로 체결한 중요 협정이었다. 양국은 해당 협정을 통해 물리학·화학·보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학술 협력을 진행했다. 중국은 미국과의 공조를 통해 오존층 파괴의 원인으로 꼽히는 연화불화탄소(CFC)의 대체 물질을 개발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매년 발생하는 인플루엔자 데이터를 적극 공유하며 보건과학 분야 협력에도 힘써왔다.
그런데 5년 주기로 연장되던 해당 협정이 최근 급작스러운 존폐 위기에 몰렸다. 반도체 수출 통제 등 각종 지정학적 갈등으로 인해 양국 관계가 악화한 탓이다. 지난 8월 27일 협정 기한 만료를 앞두고 미 국무원이 6개월 연장 의사를 밝히자, 학계에서는 향후 양국의 협력 관계가 끝을 맺을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져 나왔다. 이처럼 양국의 학계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은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당시 제정된 ‘차이나 이니셔티브’의 영향으로 풀이된다.
차이나 이니셔티브는 최신 기술 등에 관한 정보가 중국으로 유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미국의 지식재산권(IP) 관련 반(反)간첩법이다. 당시 미 국립보건원(NIH)은 차이나 이니셔티브를 근거로 “중국 기관과 파트너십을 맺은 교수진의 연방 자금 사용 위반 여부를 조사해달라”고 요청했고, 미 법무부는 중국의 영업 비밀 침해와 인재 유출 등에 대해 수사를 진행했다. 이후 차이나 이니셔티브는 지난해 바이든 행정부에 의해 종료됐으나, 미국 각 주(州)에서는 여전히 중국계 학자에 대한 조사가 이어지고 있다.
결국 ‘전 지구적 연구’ 협력만 남을까
현재 미·중 갈등의 중심축은 반도체지만, 양국 관계에는 반도체 외에도 다양한 학술 과제들이 얽혀 있다. 과학 전문 글로벌 출판사 엘스비어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이 공동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발표한 학술 출판물은 각각 약 20%에 달한다(2017~2021년). 두 국가가 전 세계 학술 출판물의 절반가량을 펴낸 것이다. 이들의 공동 연구에서 특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가 있다. 바로 기후변화 분야다.
학자들은 환경 분야에서만큼은 미·중 갈등과 무관하게 연구를 이어왔다고 설명한다. 기후 변화 연구에는 지정학적 갈등에 따른 간섭이 사실상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 7월 존 케리 미국 기후변화 특사는 온라인 언론 브리핑을 갖고 “기후 위기는 긴급한 문제며, 세계적이고 실존적인 위기”라며 미·중 협력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그러면서 “중국은 궁극적으로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매우 공격적인 재생 에너지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며 “중국과 긴밀하게, 건설적으로 협력해 그러한 (친환경) 기술을 활용하는 데 속도를 낼 것”이라 강조했다.
현재 학계에서는 연구 분야에서의 미·중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 전 세계 과학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양국이 기후 등 전지구적 분야에서는 일부분 허용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결국 여타 분야의 공동 연구가 끊기면 세계 전반의 과학 발전이 침체할 것이라는 우려다. 날이 갈수록 양국의 갈등의 골이 꾸준히 깊어져가는 가운데, 학계에는 어떤 ‘폭풍’이 몰아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