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무역흑자’에 심기 불편? 기지개 켜는 트럼프의 국내 기업 ‘유탄 세례’
트럼프 대선 승리 가능성↑, 세계 경제 '대격변' 목전 관세 10%p 인상 예고한 트럼프, 국내 기업 타격 '불가피' "외교 전략 아래 안보 위협까지 달렸다", '위험한 거래' 대비하려면
오는 11월로 예정된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에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등 국내 산업계의 셈법은 복잡해져만 간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사상 최대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통상 압박을 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기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이 다시 격화하고 기존 미국의 관세율도 인상돼 수출 위주의 국내 기업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다.
‘신무역전쟁’ 가시화, 반도체 기업도 ‘비상’
지난달 29일(현지 시각) 워싱턴포스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집권 시 모든 중국 제품에 60%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며 신무역전쟁을 준비하고 있음을 알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국을 포함한 국가에 관세를 일괄적으로 10%p 인상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국내 수출길에 적신호가 들어온 셈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무역전쟁을 다시금 꺼내든 건 최근 들어 한국을 포함한 국가들의 무역수지 흑자와 미국의 무역적자 규모가 정비례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1기 트럼프 정부가 출범했던 2017년 대미(對美) 무역수지 흑자가 179억 달러(약 23조8,875억원)였지만 바이든 정부 집권기인 지난해 445억 달러(약 59조3,852억원)를 기록하면서 사상 최대 무역흑자를 올렸다. 미국에서 정권이 바뀌는 6년 새 무역수지 흑자만 2.5배가 늘었다. 경상수지 흑자도 2017년 249억 달러에서 2022년 677억 달러까지 3배 가까이 급증했다. 문제는 미국의 한국에 대한 무역적자 규모가 바이든 정부에서 더 커졌다는 점이다.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대한 무역적자는 467억 달러까지 불어났다. 이에 한국은 미국의 무역 적자국 순위에서 8위까지 올라왔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피상적인 액수 계산만으로 폭력적인 자국 중심 정책을 단행하는 건 지나치다는 반응이 나온다.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전 통상교섭본부장)은 “대미 무역흑자가 늘어난 배경에는 우리 기업들이 그만큼 미국에 많은 투자를 해서 부품, 소재 수출이 증가했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가 중국에 적자를 많이 보는 것도 중국 투자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시 집권하면 다자간 무역 규범을 무시하고 양자 간 관세전쟁을 벌여 세계무역 질서가 대혼란에 빠질 것”이라며 “미국 내 인플레이션이 다시 높아지고 금리 인하에 찬물을 끼얹어 미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가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트럼프식 강경 대책이 세계적인 대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은 것이다.
‘반도체 전쟁’도 뜨거운 감자 중 하나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대만은 미국의 반도체 사업은 전부 빼앗아 갔다. 원래 우리가 직접 반도체를 생산했는데 이제는 90%가 대만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며 “세금이든 관세를 부과했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는 자국 반도체 기업의 제조 역량 강화를 위해 외국 반도체 기업에 규제를 가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즉 국내 반도체 기업의 자금줄이 막힐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당장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사업에서도 발목을 잡힐 우려가 있다. 미 정부는 지난해 10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 공장에 별도 허가 절차나 기한 없이 미국산 반도체 장비를 반입할 수 있도록 ‘검증된 최종사용자(VEU) 결정’을 내렸는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으면 이 같은 조치가 번복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우세’ 전망, “‘트럼프 2.0’ 준비해야”
미국 내에선 이미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이 확실시되는 분위기다. 지난달 15일 치러진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2위와 30%p가량의 역대 최대 격차로 승리하는 등 각종 지표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2017년 1월 당선된 당시부터 ‘미국 우선주의’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국제 질서를 근본적으로 뒤흔든 전력이 있다. ‘트럼프 2.0’ 시대에 현 바이든 정부 정책이 180도 꺾일 것이란 점은 이미 기정사실이 된 만큼 국제 관계부터 무역, 안보, 기후변화, 이주민 문제 대응 등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가 전방위적인 격변을 겪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결국 우리나라에 주어진 과제는 ‘트럼프 전 대통령 재집권에 대비해 어떤 외교 전략을 세울 것이냐’다.
이에 대해 트럼프 1기 당시 통상교섭실장을 맡아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개정 협상을 진두지휘한 바 있는 유명희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 주변에선 무역적자가 국가안보, 경제안보의 가장 큰 위협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며 “트럼프 2기 정부에서는 무역 흑자국을 상대로 무역확장법 232조 외에도 우리가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한 다양한 수입 규제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바이든 정부에서는 중국 견제도 동맹국과 협력을 하는 다자적 접근을 하고 있지만 트럼프 2기 정부는 일방주의 노선을 채택하고 동맹도 협상의 대상으로 볼 것”이라며 “트럼프 재집권 시 협상의 시간이 오기 때문에 철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줄 건 주되 받을 건 받는’ 기본적인 외교 전략을 철저히 준비해야 한단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엔 한미 간 ‘위험한 거래’가 이어질 전망이다. 집권 당시 한국에 방위비 분담을 5배가량 요구한 바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기에 안보 위협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과의 사전 네트워크 구축 및 치밀한 외교 전략 구성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