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주 의무 3년 유예’ 건축법 개정안 통과 가시화, 임대 시장 숨통 트이나
주택법 개정안 21일 국회 소위 상정
입주 전 최소 한 번 임대 허용 가닥
매물↑-가격↓, 임대 시장 해법 될까
분양가 상한제 적용 아파트의 실거주 의무를 3년 유예하는 내용의 주택법 개정안이 오는 2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국토위) 국토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된다. 이날 소위에서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이르면 22일 전체회의를 거쳐 29일 본회의에서 최종 통과될 것으로 예측된다.
20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 국토위 간사는 이같은 내용의 국토위 일정에 잠정 합의했다. 이번 결정에 따라 5만여 가구에 달하는 입주 예정자가 잔금 마련이 어려운 경우 임대 등을 통해 이를 충당할 시간을 벌게 됐다. 임대 시장에서는 매물 품귀 현상으로 치솟는 임대료 부담을 덜어주는 효과로 이어질지 기대를 높이는 모습이다.
전국 4만9,766가구 실거주 의무 완화 혜택 예상
정부는 지난해 1월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에 대한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는 등의 주택법을 개정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반대에 부딪혀 1년 넘게 이를 현실화하지 못했다. 최근 여야는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 실거주 의무 적용 시점을 기존 ‘최초 입주 가능일’에서 ‘최초 입주 가능일로부터 3년 이내’로 완화하는 데 의견을 모았다. 새 아파트 입주 전 최소 한 번은 임차인을 들일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서다.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실거주 의무 완화가 적용되는 단지는 1월 말 기준 전국 77개 단지, 4만9,766가구에 이른다.
건축법상 실거주 의무는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는 아파트 청약에 당첨될 경우 입주 가능일로부터 최소 2년간 직접 거주해야 하는 제도로,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행위를 일컫는 ‘갭 투기’를 방지하겠다는 취지에서 2021년 도입됐다. 지난해 정부가 발표했던 폐지 수순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실거주 의무 적용 시점이 3년 늦춰지면서 당장 새 아파트 입주를 위해 기존 주거지 임대 계약 등을 변경하거나 무리한 대출이 불가피했던 이들은 한숨을 돌리게 됐다.
21일 소위에서 논의되는 건축법 개정안은 이같은 내용의 실거주 의무 완화를 비롯해 근생(근린생활시설) 빌라 등 불법 개조 건축물에 대한 △시정명령 처분 대상 제한 △이행강제금 감경 조항 신설 △이행강제금 감경 대상 확대 및 부과 횟수 제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불가피한 사유로 실거주 힘든 수분양자 구제 방안 필요성↑
여야는 지난해 하반기에도 실거주 의무 완화와 관련해 한 차례 의견을 모은 바 있다. 금리 등 금융 환경 변화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거나 직업·학업 등 불가피한 사정으로 실거주가 힘든 수분양자들이 많은 만큼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다만 그 방법론에 대해서는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22일 열린 소위에서 야당은 실거주 의무를 폐지할 경우 갭 투자를 부추길 수 있다는 그동안의 반박 논리를 고수했다. 이와 함께 수분양자의 실거주를 강제하는 주택법은 그대로 둔 채 초기 자금조달계획서 및 증빙서류 등을 반영해 조건부 예외를 허용하는 방안을 시행령에 담자고 주장했다. 현행 주택법 시행령 제60조 제2항에 따르면 △근무·생업·취학 등을 위해 해외 체류하는 경우 △근무·생업·취업 또는 질병 치료를 위해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경우 등에는 실거주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수 있다.
반면 정부와 여당은 ‘계약 당시와 입주 시점의 금리 차이가 통상적인 예측 범위를 초과할 경우 실거주 의무를 완화한다’ 등 일반적인 상황을 시행령에 반영하자고 주장했다. 퇴직이나 파산 등 일반화하기 어려운 사정에 한해서는 별도의 전문가 집단을 구성해 판정할 것을 제안했다. 당시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그동안 국토부에 목돈이 부족해 실거주 의무를 이행하기 어렵다는 민원 사항이 많이 들어왔다”고 전하며 “부동산 시장을 지탱하는 금융 환경이 달라진 만큼 국민들의 주거 불편 해소를 위해서라도 실거주 의무는 폐지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이처럼 여야가 실거주 의무 완화 또는 폐지에서 방법론적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하면서 정부의 주택법 개정안은 폐지 가능성까지 대두됐다. 올해 4월로 예정된 총선 국면이 본격화함에 따라 21대 국회 회기 내 법안 통과가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거주 의무 적용 대상인 5만여 세대가 여야 불협화음으로 이사 계획을 새롭게 짜야 할 상황에 처하자, 야당은 정부와 여당의 뜻에 협조하겠다는 의지를 뒤늦게나마 밝혔다. 다가오는 총선에서 민심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입주 앞둔 아파트 전세 급매물 속속
시장은 이번 여야 합의가 임대 물건 증가로 이어져 치솟는 임대료를 억제하는 긍정적 효과로 이어지길 기대하는 분위기다. 최근 부동산 시장은 지난해 하반기 반짝 활기를 띠던 수도권 아파트 거래가 다시 급격히 위축되며 전세 수요 폭증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임대료가 꾸준히 상승세를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는 지난해 5월 83.4로 저점을 찍은 후 반등해 12월에는 86.6까지 치솟았다. 아직 2022년 1월 기록한 103.5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시장에 공급되는 물건이 한정될 경우 이같은 오름세는 한층 가팔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주택법 개정안 소위 통과 가능성이 가시화하며 수도권에서는 입주를 앞둔 단지를 중심으로 전세 급매물이 속속 포착됐다. 이달 말 입주를 앞둔 서울 강동구 e편한세상고덕강일어반브릿지가 대표적 예다. 해당 단지 인근에서 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공인중개사는 “이사 철을 앞두고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꾸준히 올라 수요자들의 걱정이 컸는데, 신규 아파트 전월세 물건이 하나둘 나오면서 시장 안정으로 이어질 기미를 보인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시장의 분위기와 일맥상통한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국회가 실거주 의무 폐지와 완화 사이 타협점을 찾아 3년 유예 방안을 처리한다면, 새 아파트 입주를 앞둔 수분양자들이 숨통을 크게 틀 수 있는 상황”이라며 “조정대상지역이 아닌 수도권 공공택지 아파트를 중심으로 임대 매물이 늘어나는 효과가 눈에 띄게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