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IRA ‘이중고’ 독일, 역성장 위기 속 출구전략은 ‘대미 투자’?
독일 미국 투자 '사상 최대치', 전년 대비 '2배' 급증 미국 영향력에 편입된 독일, "최대 교역 파트너 미국으로 대체될 것" 대중 투자도 여전히 높은 수준, "전체 FDI 중 중국 투자만 10.3%"
지난해 독일 자본의 미국 투자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향 투자금의 3배에 가까운 수치다. 독일 경제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 1분기에도 역성장할 것이란 전망이 제기되는 가운데 독일 기업들이 ‘기업 하기 좋은 나라’로 미국행을 택하고 있단 분석이 나온다. 내년이면 미국이 중국을 제치고 독일의 최대 교역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쏟아진다.
독일 내 ‘대미 투자’ 증가세, 왜?
19일(현지 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의 fDi마켓츠 데이터에 따르면 독일 기업들은 지난해 미국 프로젝트에 총 157억 달러(약 21조원)의 자본 투자(M&A나 지분 투자는 제외)를 발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관련 투자금이 82억 달러 수준이었음을 고려하면 2배 가까이 급증한 셈이다. 반면 지난해 독일 기업들이 중국에서 투자를 약속한 금액은 총 59억 달러에 불과했다. 그간 중국은 독일의 최대 교역 파트너로 꼽혔으나, 점차 중국보단 미국에 기대는 양상이 짙어지는 분위기다. 특히 독일의 해외 그린필드형 투자 약정 금액 가운데 약 15%가 미국에서 발생했는데, 이 역시 전년도의 6%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 독일 내부 시장의 경향성이 명확히 드러나는 지표다.
외국인직접투자(FDI)의 한 종류인 그린필드형 투자는 현지에 공장이나 사업장을 새로 짓는 방식으로, 고용 창출 효과가 크다. 독일 기업들의 미국 투자 붐은 2022년 하반기부터 시작됐다. 당시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 칩과 과학법(칩스법) 등을 제정해 청정 기술 제조업 분야와 반도체 산업에 총 7,000억 달러(약 934조원)에 육박하는 세액 공제 및 보조금 등 혜택을 제공하기로 한 원년이다. 독일 기업들이 지난해 미국에서 발표한 자본 프로젝트는 185개로, 이 중 73개가 제조업 부문에서 이뤄졌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기반 ‘제조업 르네상스 법안’에 따라 독일 또한 미국의 영향력 안으로 편입되기 시작했단 분석이 나온다.
대세 된 미국, 대중 투자도 ‘여전’
독일 기업들의 미국 투자 붐은 대세로 굳어질 전망이다. 독일계 미국상공회의소가 지난 8일 발표한 미국 내 독일 기업의 자회사 224개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96%가 2026년까지 투자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독일 상공회의소 대외무역 담당자는 “미국이 늦어도 2025년까지 중국을 제치고 독일의 최대 교역 상대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다만 미국 투자가 늘었다 해서 독일의 대중 투자 비중이 줄어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표로도 나타나는데, 독일 경제연구소에 따르면 미국의 대중 제재가 늘어난 이후에도 독일의 중국 직접 투자는 지난해 사상 최고치에 도달했다. 독일 경제연구소는 “독일의 전체 FDI 중 중국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10.3%를 기록했다”며 “이는 2014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라고 설명했다.
이어 독일 경제연구소는 “독일 대기업들은 여전히 중국을 막대한 고객층을 보유한 시장으로 보고 있다”며 “독일 기업들은 글로벌 무역 긴장 고조로 인한 위험을 헤지(위험 상쇄) 하기 위해 중국에 더 많은 사업 활동 기반을 두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중국에 대한 투자 급증과 최근 독일 내 사업 규모 축소 움직임은 한편으로 일부 독일 기업의 재정적 이익과 독일 경제의 이익 사이에 간극이 발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라고도 덧붙였다. 최근 각국에선 자국 우선주의에 기반한 핵심 원자재법을 거듭 내놓고 있다. 미국의 IRA부터 시작해 EU마저 EU형 IRA를 내놓는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경기 침체를 이어가는 독일 내 기업들의 탈(脫)독일 행렬 및 FDI 확장세는 당분간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