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럼] 지정학적 위기와 공급망 리스크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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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1.4%로 코로나19 이후 최저치 기록
미·중 관계 등 지정학적 위기, 글로벌 수요 감소, 내수 침체 영향
장기적으로는 인구감소 및 생산성 하락으로 역성장 직면할 수도

[동아시아포럼]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코리아(The Policy Korea)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지난해 한국은 글로벌 수요 감소, 지정학적 위기, 내수 침체 등의 영향으로 1.4%의 저조한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2020년 이후 최저치로 2022년 성장률 2.6%와 비교하면 절반 정도 감소한 수치다. 올해는 성장률이 어느 정도 회복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인구 감소와 생산성 하락으로 역성장의 위기에 직면할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A SK On’s EV battery cell is pictured at its factory in Seosan
사진=East Asia Forum

러-우크라 전쟁 등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변동 영향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명목 국민총소득(GNI) 대비 수출입 비율은 100.5%로 전년 대비 16.6%p 상승하면서 2013년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100%를 넘어섰다. 반면 미국의 GNI 대비 수출입 비율은 31.4%, 일본은 37.5%, 프랑스는 66.1%로 한국의 대외 의존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지나치게 높은 편이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글로벌 경제 리스크와 외부 충격에 매우 취약한데, 특히 지난해에는 수출과 수입이 모두 감소하면서 성장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023년 수출은 주요 품목 중 자동차와 선박을 제외한 거의 모든 품목이 하락하면서 전체적으로 전년 대비 7.4% 감소했다. 한국의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는 4분기 들어 회복세를 보이기는 했지만 연간 기준으로 30.6%나 급락했다. 수입도 전년 대비 12.1% 감소했지만 수입보다 수출이 더 많이 위축되면서 무역수지는 99억7,000만 달러(약 13조원) 적자를 나타냈다. 다만 적자 규모는 2022년 477억8,000만 달러(약 63조5,000억원)에 비해 축소됐다.

최근 한국의 무역수지는 에너지 수입단가와 대(對)중국 무역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먼저 에너지 수입을 살펴보면 지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에너지 가격이 치솟으면서 한국은 역대 최대 규모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2023년 들어 에너지 가격이 안정을 찾으면서 원유, 액화천연가스(LNG), 석탄과 기타 석유 제품의 수입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전 수준을 유지했고, 연간 에너지 수입은 전년 대비 22% 감소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지난해 10월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간 무력 충돌이 중동전쟁으로 확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국제 유가가 상승이 한국의 무역수지를 악화시킬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러시아산 화석연료로부터 탈피하고 있다는 점도 에너지 수입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한국은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중단했고 러시아로부터의 전체 광물연료 수입도 50.7% 축소했다. 원유는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아랍에미리트산의 수입을 늘리면서 러시아산을 대체했고, LNG는 호주와 말레이시아로부터의 수입을 확대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차원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석유사인 아람코와 원유 530만 배럴을 한국석유공사 울산 비축기지에 저장하는 국제공동비축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이스라엘-하마스 간 무력충돌로 인한 원유 수급 불안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로, 한국은 이번 계약으로 약 5,500억원(약 4억1,200만 달러) 상당의 비축유 구입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지난해 대중 무역, 한·중 수교 이후 31년 만에 적자

에너지 수입이 안정세를 회복하고 있는 반면 대중국 무역은 1년간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자 최대 수출시장이다. 2018년에는 최대 무역 흑자국이었지만 이후 흑자폭이 감소하면서 2019년 2위, 2020~2021년 3위, 2022년에는 22위까지 순위가 하락했다. 지난해에는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31년 만에 처음으로 연간 대중 무역수지가 적자를 기록했다.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은 전년 대비 8% 감소한 반면 수출은 20% 감소한 1,248억 달러(약 166조원)를 기록하면서 적자 전환했다.

지정학적 요인도 대중국 무역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 한국은 반도체와 전기자동차(EV) 배터리 공급망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미·중 기술패권 전쟁의 한가운데에 있다. 하지만 그동안 중국에 많은 투자를 해 온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 정부의 수출 규제로 위기에 직면했다. 2022년 8월 제정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대표적이다.

IRA가 명시한 목표는 에너지 비용 절감, 민간 투자 촉진, 일자리 창출 등에 있지만 실상은 글로벌 전기차·배터리 시장의 공급망을 장악한 중국을 고립시킴으로써 핵심광물에 대한 중국의 패권을 허물기 위한 조치로 평가된다. IRA에는 한국 기업을 포함해 중국산 제품을 사용한 전기차·배터리 기업에 대한 보조금 차별 조항이 포함돼 있어 한국 기업들이 미국에 더 많은 투자를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실제 한국은 IRA 도입 이후 대미 투자를 가장 많이 늘린 국가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IRA 시행 후 1년간 외국기업의 대미 투자 계획 중 1억 달러(약 1,300억원) 이상 규모의 프로젝트를 집계한 결과 한국 기업이 20건으로 가장 많았다. 유럽연합(EU)은 19건으로 유럽 27개국보다 한국이 더 많은 셈이다.

이어 미국은 같은 해 10월 7일 슈퍼컴퓨터용 첨단 반도체의 중국 수출 규제에도 나섰다. 첨단 반도체 제조를 위한 기술, 제조 장비, 인력에 대한 중국과의 거래를 사실상 금지하는 조치였다. 이로 인해 중국 내 한국 반도체 공장의 생존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지만 지난해 미국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을 ‘검증된 최종 사용자(Validated End Users, VEU)’로 지정하면서 문제가 일단락됐다.

中 광물 규제, 美 압박, 국내 인플레이션 등도 영향

미국의 반도체 규제에 대해 반격에 나선 중국의 무역 규제 조치도 공급망 리스크를 증대시키는 요인이다. 반도체 광물의 글로벌 공급망을 장악한 중국은 ‘핵심광물 무기화’에 나서며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의 원자재인 흑연, 갈륨, 게르마늄에 대한 새로운 수출 규제를 도입했다. 지난해 5월 중국 정부는 미국 최대 반도체 제조업체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에 대해 판매 금지 조처를 내렸다. 마이크론의 메모리 반도체는 대체 공급업체가 많아 중국 입장에서는 보복하기 쉬운 대상이라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미 하원과 행정부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이 마이크론의 공백 메우기에 동참해서는 안 된다며 압박하고 있다. 미 하원의 마이크 갤러거(Mike Gallagher) 중국특위 위원장은 “중국 내 반도체 업체들에 대한 미 정부의 수출 허가가 마이크론의 공백을 메우는 데 이용되지 않아야 한다”며 “특히 우리의 동맹국인 한국이 중국 내 반도체 공급 감소분을 메우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지정학적 갈등에 대한 우려가 확대되는 가운데 한국은 반도체·전기차·배터리 공급망, 핵심광물, 친환경과 신기술 분야 등에서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공급망 조기경보 시스템(Supply Chain early warning system) 구축, 기술 관련 이슈 등에서 한·미·일 3자간 협력도 확대 중이다.

높은 인플레이션과 내수 침체도 경기 둔화의 요인 중 하나다. 최근 들어 물가가 안정세로 돌아섰지만 여전히 금리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 민간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9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한 한국은행은 고물가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하가 가계부채와 부동산 시장을 자극할 수 있다며 올해 상반기에는 금리 인하 가능성이 낮다고 밝혔다.

다만 한국은 여전히 유럽과 중동 지역의 전쟁과 무력충돌로 인한 에너지 공급 위기,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에 직면해 있음에도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2%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미국의 규제 압박에도 불구하고 올해 한국 전기차 산업의 전망도 밝다. 지난해 한국의 전기차 등 친환경차 수출은 50% 이상 증가했으며 총 수출량은 100만 대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시장에서도 당초 한국산 전기차 수입이 크게 감소할 것이란 우려를 깨고 선전했다. 실제로 IRA 시행 후 한국산 전기차의 대미 수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미국 정부가 전기차 보조금 대상에 포함한 상업용 리스차량을 집중 공략한 것이 주효했다. 지난해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의 합산 판매량은 전년 대비 60% 이상 성장했는데, 이는 테슬라에 이어 2위에 해당하는 규모다.

그러나 한국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잠재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OECD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올해 1.7%로 하락할 것으로 추산했다. 잠재성장률의 하락은 인구통계학적 요인에 기인한다.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2020년 3,740만 명에서 2050년 2,420만 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 감소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2030년대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1%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단기적으로는 현재 한국 경제가 직면한 지정학적 위기에 대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인구 구조의 변화와 생산성 하락으로 인한 성장률 둔화에 대응해야 하는 이유다.

원문의 저자는 트로이 스탠가론(Troy Stangarone) 한미경제연구소(Korea Economic Institute of America, KEI) 선임이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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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스탠가론/사진=Korea Economic Institute of America

영어 원문 기사는 Geopolitics and global slowdown weigh on South Korea’s economy | East Asia Forum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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