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유동성 확대로 경기 부양 의지 다진 중국, 지급준비율 추가 하향 불사
은행 예치 현금 줄일수록 시장 유동성 커지는 효과
전방위적 감세-증시안정자금 투입 이은 세 번째 카드
국내 역량으로 경기 부양 의지, 주변국에도 영향
오랜 시간 이어진 중국의 경기 침체가 좀처럼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자 중국 금융당국이 경기 부양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로 제시한 5%를 현실화할 실질적 부양책이 없다는 지적이 쏟아진 데 따른 것으로, 중국 금융당국은 자국 은행 지급준비율(지준율)의 추가 인하 가능성을 시사하며 경기 회복의 의지를 다졌다.
中 경제장관 합동 기자회견, ‘경기 부양책’ 핵심
6일(현지 시각) 신화통신을 비롯한 다수의 중국 매체에 따르면 이날 판궁성 중국인민은행장은 베이징 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중국 경제장관 합동 기자회견에 참석해 “현재 평균 7% 수준인 중국 은행의 지준율 추가 인하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판 은행장은 “시장의 풍부한 유동성을 위해 다양한 통화 정책 수단을 종합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국책은행인 인민은행은 지난 2월 5일 지준율을 0.5%p 낮춰 시중에 중장기 유동성 자금 1조 위안(약 185조원)을 공급한 바 있다. 지준율은 은행이 의무적으로 예치해야 하는 현금 비율로, 지준율을 낮출수록 시중에 더 많은 자금이 풀리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금융당국은 지난해까지 인민은행의 지준율을 0.25%p씩 내리며 경기 부양 성과를 가늠해 왔다.
지준율 인하와 함께 금리 인하 가능성도 대두됐다. 판 은행장은 “사회적 금융비용을 지속적으로 줄여갈 것”이라며 가능한 모든 경기 부양책을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는 지난달 20일 인민은행이 5년 만기 상품의 대출우대금리(LPR)를 기존 4.2%에서 0.25%p 낮춘 3.95%로 조정한 직후 발표된 것으로, 당시 판 은행장은 “국민들의 금융비용을 낮춰 투자와 소비 촉진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 내 18개 시중은행의 최우량 고객 대출금리 동향을 취합한 수치를 의미하는 LPR은 사실상 기준금리 역할을 한다.
이번 경제장관 합동 기자회견에서는 중국 정부의 최대 과제로 지목된 소비 촉진에 대한 구체적 방안도 제시됐다.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은 자동차나 가전제품 등을 새 제품으로 교체하도록 장려할 계획이라며 “오래된 가전을 에너지 절약 가전으로 교환하는 가정에 일정 금액을 지원할 예정이며, 노후 자동차 또한 단계적으로 퇴출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고 밝혔다.
적자 폭을 키우고 있는 무역 환경에 대해서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진단하며 이같은 현상의 배경으로 “무역 보호주의 등 글로벌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탓”이라고 분석했다. 중국과의 탈동조화(디커플링) 노선을 고수하는 미국의 정책 방향에 대한 우회적 비판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왕 부장은 “올해 1월과 2월 수출입이 성장세를 보이는 등 긍정적인 신호가 포착됐다”며 경기 회복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한편 전날 열린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개회식 공작보고에서는 올해 5% 안팎의 경제 성장 목표가 제시됐다. 이 자리에서 황수홍 중국 국무원 주임은 “시장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경제 성장률이 뒷받침돼야 하고, 이를 통해 고용을 확대하고 개인 소득을 늘려야 한다”며 “2035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를 실현하겠다는 중장기적 목표를 이루려면 5% 안팎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업 감세로 고용·투자 확대 기대
중국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을 전후해 국외 자본이 줄줄이 빠져나간 자국 시장을 국내 역량으로 버티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 왔다. 대표적인 정책으로는 ‘전방위적 감세 혜택’과 ‘대규모 증시안정기금 투입’을 꼽을 수 있다. 먼저 지난 한 해에 걸쳐 단계적으로 시행된 감세 정책은 기업과 개인 모두를 대상으로 했다. 중국 세무당국은 개인의 소득공제 한도액 인상을 비롯해 중소영세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소득세, 도시유지보호건설세, 인지세 등의 세율을 대폭 낮췄고, 첨단제조업체에 대해서는 한국의 부가가치세에 해당하는 증치세 매입세액 추가공제를 허용하는 등 다양한 세제혜택을 내놨다.
중국 정부는 이와 같은 감세 조치를 통해 개인의 실질소득을 증가시켜 소비를 진작하고, 기업과 개인사업자의 조세부담을 완화해 고용이나 투자를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나아가 이들 조치 대부분을 2027년 말까지 유지할 것으로 못 박으며 향후 3년 이상 경기 부양을 위한 적극적 감세 정책을 이어나갈 것임을 시사했다.
증시안정기금은 올해 초부터 하락세를 거듭한 자국 증시에서 대규모 자금이 빠져나가며 하락 폭을 키우고 있다는 우려에서 마련된 대응책으로, 지난 1월 22일 중국 정부는 2조 위안(약 369조원)의 증시안정기금 및 3,000억 위안(약 55조원)의 국부펀드 투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해당 보도 직후 홍콩 항셍지수와 상하이종합지수 등 중화권 증시는 반짝 활기를 띠며 단기적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中 정부 지원 업은 알리·테무, 주변국 시장 장악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경기 부양책은 해외에 진출한 자국 기업의 성장세에도 영향을 미쳤다.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다수의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중국 정부의 적극적 지원 아래 해외 진출에 속도를 높인 것이다. 그 결과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의 시가총액은 이달 초 기준 각각 1,856억 달러(약 247조원), 1,943억 달러(약 258조원)까지 급성장했다.
특히 한국은 이들 기업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핵심 시장으로 꼽힌다. 중국과의 지리적 접근성이 좋은 만큼 배송 시간이 짧은 것은 물론 유통에 들어가는 비용 또한 최소화할 수 있어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가 제품으로 한국 소비자를 공략하겠다는 이같은 전략에 대한 성과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사용자 수 증가에서 확인된다. 소매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알리익스프레스 앱 사용자는 월평균 371만 명 늘었고, 같은 기간 테무는 월평균 354만 명 늘었다. 중국 정부의 경기 부양책이 주변국의 시장 질서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