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한국을 떠나며

한국인 대상 SIAI 3년 교육을 정리하면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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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간 한국에서 AI/Data Science 교육을 하며 느낀 점이 많지만, AI 교육과 직접 관련 있는 수학적 사고력 부족 부분 말고, 한국 학생들의 ‘무모한 욕심’에 대한 부분도 글로 남겨 둘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나 스스로도 ‘무모한 욕심’을 못 이기고 글로벌 최상위권의 Research school 수준의 교육을 한국 땅에서 해보겠다고 무리수를 뒀지만, SIAI를 찾아왔던 학생들, 오고 싶어했던 학생들에게서 느낀 감정도 ‘무모한 욕심’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글에서 지적했듯이, 수학적 사고력, 응용력에 대한 내 강조점이 수학적 사고력, 응용력에 대한 강조로 바뀌어서 전달됐던 탓에 많은 분들이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하면 ‘SIAI에서 제일 어렵다는 MSc AI/Data Science에 들어갈 수 있다’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더라.

근데, 계속 이야기하는대로 난 당신이 고급 수학, 통계학 수업들에서 A학점을 받았다고 실력파 Data Scientist라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고력이 뛰어난 사람인지를 가늠해서 실력파로 판단한다. 수학 실력이 좀 더 뛰어나면 당연히 MSc 프로그램에 입학 확률이 높아지겠지만, 그런 도구를 더 많이 알수록 학문적인 깊이가 깊어지기는 하겠지만, 정작 내가 실력을 판단하는 기준은 사고력과 응용력이기 때문에 MBA AI/BigData라는 프로그램도 만들고, 심지어는 그 프로그램에서 수학적 도전을 거의 대부분 제거한 MBA AI/BigData(Business track)까지 만들었던 것이다.

무조건 수학을 잘해야 좋은 것도 아니고, MSc를 해야 당신의 천재성이 증명되는 것도 아니다. 그간 Best Paper of the Year를 받고 졸업한 사람, 졸업할 사람들은 모두 MBA AI/BigData (Technical track)이었고, 외부에서 가장 무시할 Business track 학생이 최우수 논문상을 받을 뻔한 적도 있다. 한국 사람들이 지나치게 1등주의가 너무 심하던데, 정작 한국에서 그 정도 수학적 사고력 깊이를 배운 적이 없어서 입학도 불가능에 가깝고, 졸업은 기적이 일어나야 되는 수준이라는 걸 왜 이렇게 납득을 못 했을까?

MBA AI/BigData (Biz track) 하느니 1년 더 준비해서 입학하는게 더 낫지

지난해, K모 명문대의 데이터 과학 관련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라는 어느 학생이 MBA AI/BigData로 지원했었다. Zoom으로 면접을 진행하던 중에, 의자 뒤에 구멍이 숭숭난 타공판이 인테리어로 보이길래, PCA와 타공판의 동일한 점이 뭘까는 질문을 던졌다. 동공지진이 일어나더라.

내가 당시에 기대했던 답변은, PCA도 데이터의 일부만을 이용해서 데이터가 갖고 있는 Vector space 혹은 데이터가 갖고 있는 True space의 공간을 재정리하는 계산법이고, 타공판도 구멍 N개만으로 가로-세로 줄무늬가 있는 것처럼 만들어내주는 디자인이라서, 일부의 정보로 전체 공간의 Vector space를 재정의 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는 거였다.

아마 어지간한 사람들이면 모두 동공지진이 일어났을테니까 그 학생 분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너무 우울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당시에 아쉬웠던 점은, 원하는 답을 듣기 위해서 여러 힌트를 줬는데 전혀 동공지진이 멈추지 않았다는 점, 그 이후에 이어진 다른 대화에서도 사고력, 응용력을 보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그 분이 다닌다는 그 데이터 과학 석사 과정을 다녀간 과거 파비클래스 출신 학생들의 각종 불만을 여러번 들었기 때문에 속사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지난 몇 년 사이에 바뀌었나 싶었더니 그 학생의 이해 상태를 봤을 때 역시 어렵겠다 싶기도 했다.

그래서 MBA AI/BigData (Tech track)을 입학하면 1주차 과제도 못 내고 자퇴, 휴학하거나, 따라오려면 잠을 못 자면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 거라는 주의를 줬었다. 그 때 들었던 말 중에,

MBA AI/BigData (Biz track) 하느니 1년 더 준비해서 입학하는게 더 낫지

였는데, 입학해서 STA501, STA502 같은 기초 수학/통계학 수업들을 듣다보면, 왜 SIAI 재학생들이 입을 모아서

그냥 먼저 들어와서 빨리 교육 받으면서 괴로운 편이 훨씬 더 낫다, 어차피 외부에서 아무리 공부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라는 표현을 썼는지 공감을 할 것이다. 같은 종류의 훈련을 한국 땅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뻑이 지나치다고 욕을 먹을 각오하고 이야기하면, 같은 레벨의 훈련을 시켜주는 수업이 한국 땅에 아예 없을 것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초A급 논문을 학부 2~3학년 수준의 수학/통계학만 써서 풀 수 있도록 시험문제를 뽑았는데, 이렇게 수학/통계학 도구를 선별하고, 거기에 맞게 강의 내용을 조절해가면서 교육 콘텐츠에 신경을 쓰는 교수님들 찾기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부터는 STA501, STA502를 6월부터 먼저 듣고 다시 9월부터 또 들으라고 하는 방식으로 커리큘럼을 짰던 것도 같은 이유다.

  • 영미권 학부 2~3학년 수준도 못 따라오는 본인의 실력을 인정하고
  • 어떤 공부가 수학적 사고력, 응용력인지, 왜 수학 공부가 중요한게 아닌지를 알고
  • 향후 학위 과정의 초점을 가늠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수업이라는 추천을 여러차례 받았기 때문이다. 역시 K모 대학 화생공 박사 학위를 받고 포닥 중에 SIAI에 왔던 한 학생은 그 수업들을 들으면서 데이터를 보는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는데, 학교 입학하기 전에 미리 듣고 왔었으면 준비가 훨씬 더 잘 된 상태로 들어올 수 있었을 것 같다고 하기도 했고, 그 수업들 시험이 끝나자마자 박사 학위 중에 이해를 못했던 논문이 조금 이해됐다면서, 나머지 학위 과정 중에 그 논문에서 쓰인 계산 방법을 다 배우냐고 묻더라. 전부 다 배운다는 걸 알고는 표정이 활짝 펴지던 기억이 난다.

한편 그 날 Biz track 안 하겠다고 뻣뻣하게 굴었던 그 학생의 표현은

억울하지만 MBA AI/BigData (Biz track)을 1년 하고 나면 Tech track에 다시 입학할 수 있겠지

로 바꿔야 실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더 높아질 것이다.

6월부터 STA501, STA502를 미리 듣도록 해 주는 것도 1년 그렇게 시간 낭비 하지 말라는거고.

MSc AI/Data Science 아니면 절대로 안 한다?

많은 학생들이 Biz track을 하는 것을 맹렬하게 거부한다. Biz track으로 보내면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도 은근히 많다. 말도 없이 잠적하던데, 어디가서 내 욕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가끔 학생들한테 다들 친하게 지냈을텐데 그 학생 잘 지내냐고 물어보면, 아마 매우 예의를 지켜서 하는 표현일텐데

대표님 눈 높이를 못 맞춰서 괴롭다고 그러고 있어요

라고 그러더라. 내 눈 높이가 너무 높다고 욕하는 거겠지^^

학부 시절인 2000년대 초반 기준, 컴퓨터 공학과 학부 3학년에 머신러닝(ML)이 수학/통계학을 고학년 과정에서 쓰는 첫번째 장벽일텐데, 같은 종류의 수업이 통계학과에서는 2학년 2학기에 회귀분석, 경제학과로 가면 3학년 때 듣는 계량경제학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한다. 강의 노트를 보면 자기 전공 스타일로 뜯어고쳐놓은 부분 빼놓고 수학적, 통계학적 도구들만 놓고보면 거기서 거기다. 그 외에 내가 잘 모르는 자연과학계열, 사회과학계열에서도 비슷한 수업들이 있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는데, 그 과목을 가르치는 교수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느 학교, 어느 전공을 가건 이 수업을 단번에 다 이해하고 뛰어넘는 인재는 흔치 않다.

한국 교육 과정 중에 그나마 저 수업들이 수학적 사고력, 응용력을 맛보기라도 배우는 수업들인데, SIAI에서 갖고 온 영미권 명문대 교육을 겪어보면 왜 겨우 맛보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표현을 쓰는지 어느 정도 공감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30명도 넘었던 SKY, SKP 출신들이 거의 대부분 중도 포기하고 사라지지 않았을까?

난 학부 시절에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직장을 갔었고, 나중에 석사 유학을 가서는 펜을 너무 오래 쥐어서 손가락 뼈가 휠 때까지 기출 문제만 풀던 어느 날 번쩍 이해가 됐던 기억이 있다. 나보다 훨씬 더 뛰어난 애들 중에는 수업을 들으면 바로바로 이해하는 애들도 있었고, 아예 수업 듣기 전에 교수님 머리 꼭대기 위에 있던 애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나처럼 손가락이 부러지고 머리를 쥐어 뜯어야 겨우겨우 이해하고 넘어가더라.

우리 SIAI 학생들한텐 그런 벽을 좀 쉽게 뛰어넘으라고 일부러 많은 시간 공을 들여 시험 문제를 다 풀어준다. 특히 STA501, STA502는 8개 강의 중에 1~6강에 설명했던 개념들을 담은 기출문제 or 유사문제들을 7~8강 내내 아주 꼼꼼하게 해설해준다. 내 영향을 받았는지 조교들 강의를 염탐(?)해보면 나보다 더 꼼꼼하게 해설해주더라.

내 입장에서는 굳이 손가락 안 부러뜨리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강의인데, 학생들 반응을 들어보면 왜 ML, DL 같은 수업 앞에 이걸 배치하는지도 알겠고, 제대로 된 데이터 과학 프로젝트라는게 어떤 통계학 지식을 필요로하는지도 알게 됐는데, 정작 자기가 이 문제들을 못 풀겠단다.

그걸 자기 힘으로 풀어내는 학생들은 이후 교육 과정을 무리없이 잘 따라온다. 논문에서 막히지만 않으면 무사히 졸업한다.

반면, 그렇게 입에 떠 먹여 주는 강의를 해도 그 벽을 못 넘으면 잠적하거나 자퇴서를 내더라. 아니면 말로는 휴학하고 실질적으로는 자퇴한다. Azure 서버에 6개월째 접속 기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력이 이런 상태인데도 절대로 자기 발로 Biz track을 가지 않는다. 학교 방침을 내세워서 재수강을 해서 학점을 고쳐라고 해도 재수강도 안 하고, 강제로 보내면 진짜로 자퇴한다.

자존심이 너무 센 것 같다.

Business track 하느니 자퇴한다?

비슷한 종류의 고집들 중에는 논문을 못 쓰는 것 같으니까, 국내 1등 대학인 서울대도 석사 과정에 논문 요건 없애고 수업으로 학점 채우는 시대가 됐으니, 한국인 특별 과정에 한해서 논문 못 쓰겠으면 논문 대체 수업으로 졸업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아왔다고 해도, 대부분 고집을 피운다. 끝까지 논문을 쓰겠다고 고집하는데, 정작 논문 수준은…. 본인들 스스로 SIAI 교육을 받았다고 말하기 쪽팔릴 것이다.

Biz track이나 논문 대체 수업이나, 내 입장에서는 학교 명성 깎아 먹는다 싶어서 쉬운 결정도 아니었고, EduQua에서 승인을 받는 것도 쉽지 않았다. 논문 대체 수업이라고 하니까 그쪽에서는 충격을 먹었고, 처음에는 날 더러 교육을 못한거다고 그랬다가, 기출문제와 연습문제, Term Paper들이 모두 논문을 (매우 쉽게) 뜯어고쳐서 시험 문제로 만들었다는 걸 보여줘서 간신히 설득했다. 그 다음에는 학생들이 수준이 안 되는 것 같으니까 내가 잘못 뽑은 걸 인정하고 다 퇴학시켜란다.

그래도 한국이 사고력 교육이 안 되는 나라라서, 아시아 학생들이 대부분 심하게 논문을 못 쓰는게 이미 각종 조사에서 알려져 있으니까, 어떻게 한국 학생 특별 프로그램만이라도 논문 대체 수업을 하면 안 되겠냐고 다시 한번 읍소를 했다. 논문 안 쓰는 대신 학점을 절반만큼 배정한 프로젝트 발표라도 해야된다고 그러길래, 논문을 못 쓰는데 프로젝트가 뭐라 다르게 느껴지겠냐며, 이번에 한국 학생 졸업시키고 나면 내년부터 받을 글로벌 학생들한테는 이런 예외를 안 두겠다고 약속도 했고, 결정적으로 SIAI에 다른 고급 학위 인증 받을려고 할 때 이게 내 발목을 잡을 거라는 사실을 감내하겠다고 그랬다. 입학 시험을 쳐서 불합격 시켰어야 되는 학생들인데, 받아줬으니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책임을 지겠다고 그랬더니, 어차피 손해는 네가 보는거다는 투로 받아주더라. 아마 SIAI가 고급 학위 인증에 도전하는건 몇 년이 더 밀릴 것이다. (SIAI 스위스 팀한테 이래서 언제 연구소 키우냐고 욕 많이 먹었다ㅠ)

Biz track의 경우도 STEM MBA 요건을 못 충족시킨다고 Tech track과 프로그램 승인 종류가 바뀌니까 재심사해야 된다고 그랬었다. 근데 어쨌건 Math & Statistics 수업도 들어야하고, Machine Learning, Deep Learning, Reinforcement Learning을 배우고, 어차피 Tech track이나 Biz track이나 듣는 수업들은 똑같은 와중에 회사에서 어떻게 써야하는지를 설명하는 보고서를 내야 학점을 받지 않느냐고 긴 설득을 했다. 혹시나 STEM이 궁금하면, 수학, 과학, 공학 관련 교육을 지칭하는 영어권 표현으로, 한국에서는 STEM 과정이 ‘자연계열’에 해당하는 교육과정일 것이다.

일반 MBA 교육과는 분리된 교육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재무, 회계, 마케팅, 생산관리 같은 일반적인 경영학 주제는 AI Business case 같은 수업에서 기술 적용처에 대한 예시로만 쓰인다는 점을 열심히 어필해서 겨우겨우 승인을 받았다.

그렇게 고생해서 승인을 받아왔는데, 정작 학생들의 저항은 극심하다. 이렇게 저항할꺼면 수업들은 F학점 받지 말고, 논문도 잘 써오던가? 너네를 받았다는 책임감에, 돈과 시간을 이만큼 썼는데, 졸업장이라도 챙겨주겠다고 문서 수십장을 제출하고 고개를 수십번이나 숙이게 만들어놓고 왜 이렇게 청개구리 같은 짓을 하는거야?

밖에서 SIAI 교육을 고민하던 어느 학생의 고민을 담은 하소연 메일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국내 대학원들 교육이 매우 부실한걸 알아서 SIAI를 가고 싶지만, 자기 실력으로는 MBA AI/BigData (Biz track)도 겨우 졸업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쪽팔리고, 부끄럽고, MSc AI/Data Science 아니면 안 하는게 돈 아끼는 것 같단다.

아마 학교 안에서 Biz track에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는 학생들, 논문 대체 수업 안 듣겠다고 버티는 학생들이나, MSc AI/Data Science 아니면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외부 학생들이나 생각들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좀 미안한 말이지만, 내 입장에서 듣기에는 수능 5등급이지만 S대 아니면 대학을 갈 필요가 없다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 그런데 모 대기업 계열사 부장급이신 학생이 MBA AI/BigData (Tech track)을 제대로 못 따라가고 허덕거리고 있는데, 고집 그만 부리고 Biz track으로 가셔야 졸업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정작 자기네 회사 AI부서에서 했던 과거 AI 프로젝트들이 대부분 처음부터 시작하지도 말았어야 할만큼 말도 안 되는 프로젝트들이었다는 걸 회사 시스템에 남겨진 계획서만 봐도 한 눈에 알 수 있는 눈을 갖추셨다. 학문적 깊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수학적 사고력, 응용력을 갖추는 것이 핵심이라는 걸 잘 보여주신 사례다.

MBA AI/BigData (Biz track)을 무시하지 말라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 회사가 그간 뽑았던 AI부서 인력들이 대부분 국내 명문대의 컴퓨터 공학과 출신이었다는 점, 혹은 개발자들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왜 MBA AI/BigData만해도 국내에서 상위 1%, 아니 0.1%의 고급 인력이 될 것이라고 그랬는지 납득이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 교육 시스템이 수학적 사고력, 응용력을 길러내는 교육을 대학 졸업할 때까지 단 한번도 제대로 해 주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이 까막눈인 상태라 공감이 안 되고, 1~2년 만에 단기적으로 따라잡을 수가 없을테니 어쩔 수 없이 Biz track을 선택하는 수밖에 없겠지만, Biz track으로 1~2년만 공부해도 국내 명문대 컴퓨터 공학과 학석박을 마친 사람들이 해 놓은 프로젝트가, 서버 수십대 사들이고, 그래픽 카드 몇 십개 사고, 몇 십명 월급을 몇 년씩 주고 나서가 아니라, 계획서 몇 페이지만 봐도 이미 말도 안 되는 내용이라는 게 눈에 들어올만큼 지적 격차가 벌어지는 것이다.

문득 인간 없이 작동하는 완전 자율주행차 만들 수 있다고 큰소리 쳤던 애플카, 독3사 차량 회사들과 수백개에 달했던 자율주행 스타트업들이 생각난다. 인간 펀드매니저보다 수익률이 압도적으로 뛰어나고, 언제 주가가 떨어질지, 오를지를 99.9%의 정확도로 맞출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광고 기사들을 내던 로보 어드바이저들도 생각나네. 왜 나같은 사람들은 그렇게 투자금이 몰리는 곳에 안 뛰어들었을까? 계획서를 쓰기도 전에 안 된다는 걸 알았으니까?

내가 장사꾼이거나, 당장 눈 앞의 이득에 눈이 멀었더라면 MBA AI/BigData (Biz track)을 MSc AI/BigData로 이름 바꾸고 학위를 팔았겠지만, EduQua에 고개를 숙였으면 숙였지, 차마 학생들과 시장에 거짓말은 못하겠더라. 수능 5등급한테 S대 학위라고 종이만 주면 S대 학위를 받은 인재가 되는건 아니잖아? 그건 무슨 불법 학위 브로커인가? 왜 국내 대학 학위에 대해 내가 이렇게까지 색안경을 낄 수밖에 없는지는 위의 모 대기업 AI부서 부장님의 경험담으로 설명이 될 것이다. 아니 굳이 말을 안 해도 한국 대학과 해외 명문대 간의 교육 수준 격차가 어마어마하다는 걸 어지간한 한국인들이라면 이미 다 알고 있겠지.

학교의 ‘무모한 욕심’과 학생들의 ‘무모한 욕심’

다시 ‘무모한 욕심’으로 돌아가서, 한국 땅에서 이런 고급 교육을 하는 것이 ‘무모한 욕심’이었다는 주변의 능력자 분들의 주장에 토를 달 생각은 없다. 일부 성공하는 학생들이 있었고, 그 분들과 오랜 인연이 이어질 것이라고 반박할 수 있지만, 전체 도전자 중에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 분들 말씀대로, 내가 그간 공급한 SIAI 교육이 한국 학생들 대부분에게 받아들여지려면 초·중·고교에서부터 이미 완전히 다른 레벨의 논리적 사고력, 수학적 응용력을 길러줬어야 한다. 근데, 그렇게 교육이 됐었으면 대학에서도 당연히 영미권 수준으로 가르쳤을 것이고, 그럼 굳이 SIAI를 만들어서 한국인들을 교육시킬 필요는 없었지 않을까?

졸업 여부와 관계없이 위의 대기업 AI부서 부장님처럼 눈이 뜨인 상태로 회사 생활을 하시는 분들까지 생각하면 70명 중 8명이 아니라 70명 중 50명은 된다면서 완전히 실패는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지만, 엄연히 대학을 만들었는데 학생의 자의건 타의건 졸업률이 낮은 주제에 교육이 성공했다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그래서 어떻게든 졸업시켜 볼려고 노력했는데, 학생들의 ‘무모한 욕심’을 좀 덜 무모하게 만들어 보려고 했던 내 도전들은 모조리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다.

저항하는 SIAI 내·외부의 학생 분들,

그거 다 사기꾼들이야‘ 라는 표현을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것이다.

어차피 나도 못난, 보잘 것 없는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 충고라는게 우습지만, 그렇게 자기 역량 이상의 자격증에 욕심을 내면 결국 사기를 당한다. 아니면 시간과 돈만 버리고. 혹은 당신이 사기꾼이 될 수도 있다. 국내 명문대 컴공 박사하고 대기업 AI부서에 취직했는데 왜 말도 안 되는 프로젝트들을 하게 됐을까? 왜 계획서만 있고, 결과물은 없고, 그 팀에 ‘있었던’ 사람이 됐을까? 국내 명문대 학위를 사기라고까지 부르고 싶지는 않지만, 계획서 몇 페이지만 봐도 말이 안 되는 프로젝트라는 걸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 옆에서 꼬리를 말고 초라한 모습으로 있거나, 심한 경우에는 자랑스레 입사했던 대기업 AI부서에서 쫓겨나게 될텐데, 그런 교육을 시킨 학위를 사기 말고 뭐라고 불러야 덜 문제시 되는 표현이 될까? 프로젝트가 기술력 부재로 실패했으면 원인은 대기업이 투자를 적게해서일까, 정부가 지원을 적게 해 줘서일까, 국내 명문대 컴공 박사 출신의 기술력이 모자라서일까, 그 국내 명문대가 학위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 국내 명문대 컴퓨터 공학 교육이 문제가 있는 걸까?

난 학생들이 전문가로 성장하는데 필요한 학위, 그런데 학생들이 현재 가진 역량에 맞는 학위를, 내가 좀 손해를 보는 가격에 책정했다. 영미권 어디를 가봐도 이 정도 수준의 교육에, 이 정도까지 지원을 해 주면서 USD 26,000 밖에 안 받는 학위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회사 재무제표가 공개자료일테니 찾아보시라. 학교를 설립했던 지난 2021년부터 외부 프로젝트 없이 교육만으로는 언제나 적자였다. 나보다 더 많이 양보하는 누군가가 더 고급 교육을 해 주고 있으면 그 곳을 찾아가면 되겠지만, 이렇게 ‘봉사활동’이라는 놀림 들어가면서 교육은 당신들보다 15년 전부터 고급 교육을 찾아다닌 나도 못 찾았다. 사실 돈 벌고 싶었으면 대학 교육 내버려 두고 다른 일을 했었어야 했다. 당장 정부 프로젝트 몇 건만 해도 연간 십 억대 매출인데, 등록금을 몇 십명한테 받아야 그만큼의 매출액을 만들 수 있었을까?

논문 대체 수업으로 졸업하는 건 쪽팔려서 못하겠고, 그런데 논문은 외부 공개할 수 있는 수준으로 못 뽑고, 거기다 Biz track으로 전환시키면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나오면 어쩔 수 없지만, 고개 숙여서 받아 온 변경안들을 따라온다면 지난 3년간 날 믿고 찾아온 학생들까지는 가능한 모두 내년 여름까지 졸업시킬 계획이다. 실력보다 더 화려해보이는 학위 장사를 해주지 못한 알량한 자존심이 당신의 자존심을 긁어 미안하지만, 최소한 공들였던 시간, 노력, 돈에 걸맞는 학위는 받아가실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매 달 1번씩 토요일 마다 논문 수업을 하면 학생들이 찾아와서 사무실 테이블에서 놀고 가고, 저녁 때 피자 사주면 낄낄거리면서 먹고, 자기네들끼리 회사 이야기, 논문 이야기, 그 외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가는 그 문화를 가능하면 오랫동안 즐기도록 돕고 싶다.

저 모임 하나만으로 우리나라 AI교육, 기업들의 부족한 AI인력 수준을 뜯어고칠 수는 없겠지만, 회사에서 데이터 사이언스 교육을 이상하게 받아 꽉 막힌 사람들한테 쌓인 스트레스도 풀고, 자기들이 회사에서 도전하고 있는 내용들을 공유하면서 학생들의 역량은 졸업 이후에도 성장하지 않을까? 학점도 A를 받고, 논문도 잘 쓴 사람들만 있으면 좋겠지만, 논문 대체 수업으로 억지로 졸업했더라도 그런 지적인 대화에 끼여서 함께 성장하고 싶은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곧 죽어도 내가 1등이어야 속이 풀리는 사람들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무조건 MSc AI/Data Science가 아니면 돈 버리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 어쩔 수 없지만, F학점 받았는데 재수강도 안 하고 있으니 Biz track으로 옮겨가라는 학교 방침에 도저히 따를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지만, 논문을 못 쓰고 있는데 대체 수업도 절대로 듣기 싫다면 어쩔 수 없지만.

차라리 학생을 안 받았으면 안 받았지 학부 저학년 교육 해 놓고 MSc AI/Data Science 학위는 못 주겠다는 학교의 ‘무모한 욕심’과, 수업에는 F학점, 논문은 불합격이건 뭐건 상관없이 MSc AI/Data Science 아니면 절대로 공부 안 한다는 학생의 ‘무모한 욕심’ 사이의 어딘가에서 한국인 대상 특별 교육이 마무리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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