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에 화해의 손길 내미나” 해리스·다이먼 백악관서 비공개 만남
‘월스트리트의 황제’ 제이미 다이먼 CEO, 미 부통령과 회동 반기업 행보 보인 바이든, 대선 앞두고 월가에 화해의 제스처 다이먼, 수년간 재무장관 후보에 오르내렸던 인물
‘월스트리트의 황제’로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가 미국 부통령인 카멀라 해리스와 비공식 만남을 가졌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월가와 대립 각을 세우고 있는 조 바이든 정부의 유권자 확대를 위한 포석이란 분석이 나온다.
정재계 고위급 인사들의 비공개 회동, 이유는
2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다이먼 CEO와 해리스 부통령은 지난주 백악관에서 비공개로 점심식사를 함께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해리스 부통령의 공식 일정에 포함돼 있지 않은 비공개 회동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다만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밝혀진 바 없다. 정가에서는 대기업 표적 과세, 반독점 감시 강화, 친(親)노동조합 등 행보로 월스트리트에 각을 세웠던 바이든 행정부가 대선을 앞두고 화해의 손길을 내민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사실 백악관 고위 인사들의 비공개 면담은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그러나 자산 규모 기준 최대 은행인 JP모건을 이끄는 다이먼 CEO와의 접촉은 바이든 행정부가 재계와의 관계 개선에 나선 것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다이먼 CEO는 워싱턴에 머무는 동안 제프 자이언츠 백악관 비서실장, 규제기관 소속 관료, 의회 의원 등 바이든 행정부 관련 인사들과 두루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바이든 대통령은 인플레이션 대응 과정에서 가격과 수수료를 올린 책임을 기업들에 돌리고 임금 협상에서 노조의 편을 드는 등 기업들과 대립해 왔다. 대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세금 인상, 엄격한 반독점법 집행 등 반(反)기업 정책도 잇따랐다. 이에 대해 FT는 “기업들은 세금·무역·규제와 관련된 자신들의 우려가 백악관에서 무시되고 있다고 느끼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정계 진출 시사한 다이먼
‘월가의 대변자’라고도 불리는 다이먼 CEO는 지난 수년간 재무장관 후보에 오르내렸던 인물이다. 지난해에는 직접 정계 진출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다이먼 CEO는 지난해 6월 “나는 조국을 사랑하고 언젠가는 나라를 위해 봉사하겠지만, 나는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너무 좋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리틀 워런 버핏’으로 통하는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회장은 다이먼 CEO의 대선 출마를 주장하고 나서기도 했다. 애크먼 회장은 “다이먼 CEO가 자유로운 기업 환경을 지지하는 정치적 중도파인 동시에,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잘 설계된 사회 프로그램, 합리적인 세금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애크먼 회장은 다이먼 CEO가 경선에서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을 이기고, 본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이길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편 다이먼 CEO는 이번 대선 후보 선출 과정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맞붙었던 공화당의 니키 헤일리 전 유엔 대사를 공개적으로 지지한 전력이 있다. 과거 오랜 기간 그는 자신을 민주당 지지자로 소개했지만, 최근 몇 년 새 입장이 바뀌었다는 평가다. 공화당 경선 기간 다이먼 CEO는 헤일리 전 대사와 여러 차례 통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9년 CNBC 방송에 출연해선 “내 마음은 민주당에 있지만, 머리는 다소 공화당 쪽에 쏠려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접점도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접점도 있다. 다이먼 CEO는 트럼프 전 대통령 집권 초기였던 2017년 그의 경제 자문단에 합류한 바 있다. 결정적인 발언은 올해 1월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나왔다. 다이먼 CEO는 당시 CNBC와 인터뷰에서 “민주당이 ’매가(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며 “매가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는 바이든의 선거 캠페인에 오히려 해를 끼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민주당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트럼프 지지자들이 트럼프와 똑같다는 이미지를 사용해 그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트럼프에 찬성하지 않는 공화당원과 ‘매가’를 갈라치기 하려는 민주당의 대선 전략이 잘못됐다고 지적한 것이다. 민주당의 이같은 전략으로 인해 오히려 공화당원들이 트럼프로 결집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그동안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와 매가가 미국 민주주의에 실존적 위협을 가한다”고 주장해 왔다.
다이먼 CEO는 트럼프 재임 시절 정책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그는 “한걸음 물러나서 바라보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관한 것이나 이민 문제에 대한 대처, 경제 성장에 관해서는 트럼프가 옳았다”며 “무역관세 개정과 중국에 대한 대처 문제도 (트럼프가) 맞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트럼프가 말하는 방식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맞는 말을 한 것이고 그래서 사람들이 그에게 투표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국내 문제를 우선시하는 트럼프의 외교·경제 정책이 지나치게 과격한 측면은 있지만 방향 자체는 바람직하다고 평가하는 미국 국민이 상당수라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바이든 행정부와 완전히 ‘절연’했다고 보긴 어렵다. 다이먼 CEO는 각종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바이든 행정부에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지난해 3월 은행 위기 당시 그는 재닛 옐런 재무장관과 만나 예금자 보호 조치를 논의하는 등 구원투수로 나서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