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한국 저출산·고령화·낡은 경제성장 모델·현재 지향적 사고 등 통렬한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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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기적' 끝났다
70년대 군사독재 시절 '정부 지원 기반 제조업 개발 전략' 수명 다했다는 지적
연이은 정책 실패로 인한 경제 성장 동력 상실, 저출산·고령화라는 인구문제로 돌아와
평준화 중심의 교육, 수학·과학 교육 방기로 교육 경쟁력 상실한 인재만 길러내고 있어
교육 시스템 회복에 수십년, 그 사이 한국이 글로벌 기술 선진국 될 가능성 낮다는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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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 타임스(FT) 아시아판 지면에 ‘한강의 기적’이 수명을 다 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22일 FT는 ‘한국의 경제 기적은 끝났는가?(Is South Korea’s economic miracle over?)’ 제목의 기획 기사를 보도했다. FT는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다양한 첨단 산업 분야 전문가와 국내외 주요 경제학자들과의 인터뷰를 소개하며 국가 주도 자본주의로 고속 경제성장에 성공한 ‘한강의 기적’이 제조 대기업에 의존한 낡은 경제성장 모델, 높은 가계부채와 자살률, 저출산과 고령화, 중국의 맹추격과 원천 기술 부재 등을 이유로 수명이 다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70년대식 정부 지원 제조업 의존 전략에서 탈피 실패

FT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기업들이 AI 시대를 맞아 용인에 300조원(약 2,174억 달러) 규모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를 진행 중인 점을 소개하면서 “용인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는 한국의 주력 수출 산업이 중국과 미국의 경쟁사에 의해 주도권을 빼앗길 것이란 우려에서 한국 정부가 지원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달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용인 SK하이닉스 부지를 찾아 “올해 기업들이 반도체 1,200억 달러(약 165조원) 수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첨단 반도체의 수출 확대를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FT는 이에 대해 “반도체 전문가 대부분은 한국의 반도체 제조사들이 첨단 메모리 칩 분야에서 기술 우위를 유지하고 AI 반도체 수요 급증에 대비하기 위한 용인 투자 필요성에는 동의한다”면서도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한국 정부의 제조 대기업들의 성장 동력을 강화하는 정책이 기존 경제 성장 모델을 개혁하려는 의지가 부족하거나 무능함을 드러낸다고 우려한다”고 덧붙였다.

과거의 성공 공식에 얽매여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갈수록 추락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FT는 한국은행을 인용하며 1970~2022년까지 평균 6.4%씩 성장한 한국 경제는 2020년대 들어 연평균 2.1%로 성장 속도가 둔화되고, 2030년대 들어서는 0.6%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37개 회원국 중에 한국의 노동생산성은 그리스, 칠레, 멕시코, 콜롬비아 다음으로 낮다.

주요 정치, 경제 리더십도 성장 지향에서 현상 유지로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외부에선 한국을 역동적이라 생각하지만, 모방을 통해 선진국을 따라잡는 경제 구조는 1970년대 이후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며 한국은 반도체와 배터리 등의 기술 상용화에는 강점이 있지만 신산업 육성을 위한 ‘원천 기술’ 개발에는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간 한국 경제 성장을 주도해 온 ‘재벌’이 이끄는 대기업 집단의 리더십도 성장 지향에서 현상 유지로 기조가 바뀌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짚었다. 박 교수는 “현재 오너 3세가 다수 경영진으로 참여한 대기업들이 ‘성장 지향적 사고’에서 ‘현재 지향적 사고’로 바뀌었다”고 지적하며 한국의 기술력은 미국 빅테크와 중국의 부상이란 2가지 충격에 더해 삼성, LG가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던 2011년을 전후로 이미 정점에 도달했다고 주장했다.

과거 한국이 일본 주도의 글로벌 디스플레이 산업 패권을 장악한 것처럼, 이젠 중국 기업들이 첨단 반도체를 제외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한국 경쟁사를 따라잡았고, 과거 고객 또는 하청업체였던 중국 기업들이 이젠 한국 기업의 경쟁사가 됐다.

특히 FT는 한국의 낮은 산업용 전기료에 대해 “한국 제조업에 막대한 산업 보조금을 제공하는 국영 전력회사 한국전력은 1,500억 달러(약 206조원)에 달하는 부채를 쌓았고, 이는 ‘저렴한 전기료와 인건비’란 낡은 성장 모델의 기둥이 흔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가주도 산업화에 따른 비용 경쟁력마저 사라지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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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이전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과 2024년 이후 예측치, 예측치는 연 2% 내외로 정체된 모습/출처=국제통화기금(IMF)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경제활동인구 빠른 감소

저출산·고령화에 인구구조가 붕괴하고 있는 점도 ‘한강의 기적’이 끝났다는 의견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오는 2050년경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022년 대비 28%나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생산가능인구가 같은 기간 약 35%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박 교수에 따르면 저출산·고령화와 높은 자살률 등 사회적 문제의 원인 중 일부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 성장이 가져온 부작용이다. 박 교수는 FT에 대기업이 많은 중소기업들과 독점적 계약을 빌미로 납품 가격을 압박한 결과, 근로자의 80%가 고용된 중소기업은 직원과 설비에 투자할 자금이 부족해 생산성 악화와 혁신 둔화란 측면에서 희생당해 왔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과거에는 재벌이 육성·지원을 받아 해외 경쟁사들과 경쟁에서 이기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게 이 같은 대기업 지원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며 “이제 대기업은 국내 혁신을 방해하고 파괴적 혁신에 매우 취약해졌다”고 덧붙였다.

지난 2021년 기준 한국 GDP의 절반 가까이가 전체 근로자의 6%를 고용한 대기업에 의해 이뤄지면서 한국의 대기업·중소기업으로 양극화된 산업구조는 사회적·지역적 불평등을 낳고 청년층의 무한경쟁을 불러 일으키며 저출산과 높은 자살률에 일조하고 있다는 게 박 교수의 지론이다.

지난해 미국 싱크탱크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 상주 선임위원으로 영입된 여한구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FT에 “한국 산업은 기존 모델에서 벗어나려고 해쓰고 있지만,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아직도 해결된 게 없다”고 전했다.

70년대식 낡은 성장 모델 이후 다른 대안 없어

70년대식 낡은 성장 모델에 대한 해결은 이번 4월 총선에서 ‘여소야대’ 정국이 펼쳐지면서 더욱 어려워지게 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FT는 “올 4월 총선에서 좌파 정당이 승리하면서 좌파가 장악한 국회와 인기 없는 우파의 행정부로 양분돼 2027년 차기 대선까지 3년 이상 교착상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끝으로 FT는 한국은행이 주장한 구조개혁이 계속 지연되고 있다는 점을 거듭 우려했다. 한국은행은 앞서 이창용 총재 등을 통해 반복적으로 노동시장, 연금 등에 대한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FT는 “사교육비 지출은 늘고, 출산율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며 “연금, 주택, 의료 개혁은 정체된 반면 대기업에 대한 국가 경제 의존도를 줄이고, 기업가치를 제고하고, 서울을 아시아 금융 허브로 만들겠다는 오랜 캠페인은 거의 진전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최재경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FT의 비관론에 대해 “한국의 DNA에는 역동성이 내재돼 있다. 우리는 경제적 역동성을 다시 불러일으키기 위해 정책을 재설계해야 한다”며 “아직 한강의 기적은 끝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시스템 설계 및 운용 위한 인재 부족이 더 큰 문제

경제성장 전문가들은 한국이 낡은 경제 성장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보다 더 큰 문제로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인재를 길러내지 못한 지 30년이 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지난 1990년대에 진행됐던 5차 교육과정 개편 이후 지속적으로 수학, 과학 등의 미래 기술 산업을 위한 기초 학문들이 중·고교 교육과정에서 빠져나간 탓에 대학교수들이 미분·적분 등의 기초 교육을 대학 1학년 수업에 편성하는 촌극이 더 이상 촌극이 아닌 상황이 된 것이 단적인 예시다.

과거 문과 출신이 이과 주요 수업에서 고득점을 하던 90년대 수준의 고등 교육은 완전히 사라졌고, 심지어는 의대 정원 확대 탓에 의대를 노려보고 싶지만 수학, 과학을 공부하기 싫어서 의대를 포기하고 문과를 선택하는 학생들마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 됐다.

교육 전문가들은 평등을 지나치게 강조했던 1970년대 고교 평준화 이후 지난 50년간 국내 중·고교 교육과 대학 교육이 사실상 붕괴됐다고 꼬집는다. 실패한 교육과 더불어 70년대식 문제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5급 공개경쟁채용 시험(전 행정고시)으로 채용된 인재들이 내놓은 국가 주요 정책이 실패한 것은 놀랍지 않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 AI 교육을 강조하면서 정작 일선 학교들에 IT학원 수준의 기초 코딩 교육을 위한 예산이 수십조원이나 배정됐던 것도 문제점의 일부로 지목했다. 국가 엘리트가 이미 실패한 교육을 통해 왜곡된 AI 정보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였던 탓에 엉뚱한 교육 투자를 했고, 성과도 없이 사회적으로 큰 부담만 야기했다는 것이다.

당시 수학, 과학 교육으로 AI 교육의 기초를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일선 대학의 교수들은 최근 발표된 스탠퍼드대학교의 AI 지표(AI Index)에서 한국이 최하위권으로 등장한 점 등을 들어 이미 AI분야에서 한국은 후진국으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교육 시스템을 바꾸는 데는 최소 수십 년의 시간이 필요한 만큼, 사실상 한국이 글로벌 기술 도전에서 향후 선진국 반열에 들어가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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