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F 부실 정리 나선 정부, 평가 등급 ‘4단계’ 세분화 방침에 업계선 “현장 무시한 비합리적 정책”
정부의 PF 연착륙 정책에 업계, "현장 도외시하고 합리성 결여된 정책"
지방 소재 사업장 피해 확산 우려↑, "전국 미분양 가구 중 80% 이상이 지방"
정책 시행 시 건설업계 침체 완화 기대도, 다만 제2금융권 취약 문제는 여전할 듯
부동산 개발업체가 정부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연착륙 방안에 대해 “현장을 도외시하고 합리성이 결여된 정책”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단순히 연장 횟수로만 평가해 등급을 나누는 건 지나치게 비합리적이라는 지적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제2금융권의 단기적인 건전성 저하가 불가피한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다만 일각에선 긍정적인 의견도 있다. 자산 가치 하락 등 영향을 차치해도 건설업계 침체를 완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리란 시선이다.
부동산 PF 연착륙 방안에 반발 목소리, “비합리적인 정책”
16일 부동산개발업체와 설계·분양사 모임인 한국부동산개발협회는 서울 강남구 협회 대강당에서 ‘부동산 PF 정책 방향 관련 개발업계 긴급 간담회’를 열고 정부의 부동산 PF 연착륙 방안을 강력히 비판했다. 특히 금융당국이 부동산 PF 사업성 평가 등급을 현 3단계(양호-보통-악화우려)에서 4단계(양호-보통-유의-부실우려)로 세분화하기로 한 데 대해 “획일적이며 연쇄 부도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만기 연장 횟수 등을 새 평가 기준으로 활용하면 부당한 평가를 받아 강제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사업장이 나올 수 있고, 이는 부동산 공급 생태계 붕괴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서울의 한 주택 사업장은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인한 수요 감소 및 브릿지 만기 단축으로 이미 3차례 만기를 연장했다. 해당 사업장의 경우 금융감독기관이 PF를 통제하고 브릿지 만기 기간을 짧게 설정해 연장 때마다 수수료를 부과하는 금융권의 요구가 맞물린 결과로써 연장 횟수가 늘어난 건데, 이를 단순히 횟수로만 평가해 등급을 부여하는 건 비합리적이라는 게 협회 측의 주장이다.
객관성·합리성 제고하겠다지만, 연쇄 부도 시발점 될 수도
이에 당국은 부동산 PF 사업성 평가의 객관성‧합리성 제고를 위한 방안인 만큼 큰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당국은 이번 제도 개선에 따라 평가대상에 토지담보대출 및 채무보증 약정을 추가하고 대상 기관에 새마을금고가 취급 중인 PF 관련 여신도 포함할 예정이다. 금융회사가 PF 대출채권을 담보로 발행한 유동화증권에 대해 제공한 채무보증 약정이나 새마을금고가 취급한 관리형 토지신탁, 공동대출 등도 평가대상에 새로 추가된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이에 따른 2023년 말 기준 부동산 PF 사업성 평가 규모는 약 230조원 수준이다.
기존 본PF 중심의 평가 기준도 사업장 성격에 따라 브릿지론 및 본PF로 구별해 브릿지론에 대한 평가체계를 강화하도록 했다. 금융회사(PF 대주단)의 주관적 판단에 따르던 평가 기준을 객관화·구체화하겠단 건데, 브릿지론과 본PF 등 단계별로 10여 개 평가 기준을 제시하고 여기서 2개 이상에 해당하면 사업성 부족으로 판정하도록 하겠다는 게 골자다. 예컨대 토지만 사놓은 브리지론 단계에서 대출 만기 6개월이 지나도록 인허가를 받지 않고 수익구조가 상당히 악화한 경우 ‘유의’로 분류한다. 또 착공 단계인 본PF가 대출 만기를 4회 이상 연장하고 현재 연체됐으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부실우려’로 분류하도록 했다.
정부에 따르면 ‘부실우려’ 사업장의 채권에 대해 금융사는 75%를 충당금(손실)으로 쌓아야 한다. 부실채권(고정·회수의문·추정손실) 가운데 ‘회수의문’ 수준으로 본다는 의미다. 이제까지는 ‘악화우려’ 사업장의 채권에 고정 수준(30%)의 충당금을 쌓으면 됐지만, 충당금 비율이 올라가면서 손실이 그만큼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주단이 만기 연장으로 버틸 유인이 줄어들게 된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당국은 “전체 PF 가운데 2~3%가 부실우려 등급에 해당할 것으로 추산된다”며 “전국 PF 사업장 5,000여 개 가운데 150개 안팎에 경·공매 대상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정책의 효용성에 대한 질타의 목소리가 거세다. 해당 정책이 시행되면 지방 소재 사업장의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2022년 하반기부터 PF 시장은 물론 분양시장이 급격하게 얼어붙으면서 지방 현장 사업장의 상당수가 브릿지론 만기 연장을 여러 차례 단행하면서도 미분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근거다.
당국이 전체 PF 중 부실우려 등급에 해당할 것으로 추정되는 사업장이 2~3%에 불과할 것이라 언급한 데 대해선 의아함을 표출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수치라는 이유에서다. 실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 3월 기준 전국의 미분양 가구는 6만4,964가구인 가운데 지방에서의 미분양 가구가 5만2,987가구로 전체의 81.56%를 차지했다.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도 지방이 전체 1만2,194가구의 81.46%(9,933가구)에 달했다.
협회는 “단순한 논리로 사업장을 정리할 경우 연쇄 부도를 야기할 수 있다”며 “최근 2년 동안 부동산 PF가 연대보증, 대표자 보증 등 과도한 조건 하에 진행돼 우량 사업자가 보유한 다수의 사업장 중 1곳만 정리 대상이 돼도 정상 사업장마저 대출 만기 전 자금 회수 요구가 발생해 연쇄 부도가 발생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이번 정책은 숲은 못 보고 나무만 보는 좁은 시각이 드러난 것”이라며 “시장 상황에 근거해 평가 요인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공급 유형이나 사업 과정 중 발생하는 불가피한 상황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각선 ‘침체 해소’ 긍정 평가도
이런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부 정책에 따라 경·공매를 통한 부실정리가 촉진되면 제2금융권의 단기적인 건전성 저하 역시 불가피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신용평가는 최근 ‘부동산 PF의 질서 있는 연착륙을 위한 정책 방향 발표에 따른 영향 점검’ 보고서를 내고 2024년 2분기 이후 부동산 PF 부문의 고정이하여신 규모가 상승하고 이에 따른 대손충당금 추가 적립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브릿지론이나 토지담보대출 익스포저(위험노출액)가 높은 일부 금융사들의 재무지표 부담 수준은 더욱 높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저축은행 역시 브릿지론을 중심으로 요주의에서 고정 이하로의 전이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전망됐다. 한신평은 “저축은행 업권의 지난해 말 기준 고정이하여신대비 충당금 적립률은 800%를 웃돌아 타업권 대비 상당히 높은 수준이지만 요주의이하 여신 대비 충당금 적립률은 평균 15.2%로 타 업권과 유사하다”고 언급했다.
다만 은행·보험사의 경우 신디케이트론을 만드는 과정에서 충당금·자본금을 쌓아야겠지만 큰 부담을 없을 것으로 분석됐다. 금융당국이 검토 중인 인센티브 방안인 정상여신 분류, 위험가중자산 규제 완화 등을 고려하면 적정 수준에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단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정부 정책에 대해 증권 업계는 “자산 가치 하락 등 영향은 있겠으나 건설업계 침체를 완화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부실 사업장 정리를 위한 토지 경·공매는 보통 기존 가격의 50~70% 수준에서 매각되기 때문에 PF 사업성 개선과 신규 사업의 분양가 인하 효과를 불러올 수 있을 것”이라며 “나아가 부실 사업장의 정리 및 재구조화는 부동산 업황 불안 요인인 부실 PF 우려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건설주 센티먼트(투자심리)에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제2금융권은 여전히 취약 주체로 남겠지만 시장 전반에 깔린 무분별한 PF 부실 우려가 해소되면 새롭게 바뀐 사업성 평가 기준 적용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