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러시아의 ‘동상이몽’, 중국 가스값 하향 압박에 러시아 가스관 사업 좌초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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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걱이는 중국과 러시아, 중국의 가스 가격 하향 요청이 원인
가스관 사업에 사활 건 러시아지만, 중국은 "급할 것 없다"
에너지 부담 커진 중국, "가스값 하향 요구도 부담 줄이기의 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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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갈등 등을 거치며 밀월관계를 과시하던 중국과 러시아가 에너지 협력 부문에서 충돌했다. 중국이 러시아의 가스자원에 대해 과도하게 낮은 가격과 물량을 제시하면서다. 다만 러시아는 지나친 요구에도 여전히 중국의 손을 놓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 제재에 직면한 러시아 입장에선 중국이 ‘마지막 희망’이기 때문이다.

중-러, ‘시베리아의 힘2’ 개발사업 두고 충돌

2일(현지 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러시아와 중국 간 전용가스관 ‘시베리아의 힘2’ 개발사업이 최근 좌초 위기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가격 및 공급량 하향을 요청한 게 원인이다. FT에 따르면 중국은 러시아에 △러시아 현지 수준과 비슷한 가격으로 가스를 공급할 것 △연 500억㎥(세제곱미터)의 수송 용량 중 일부만 구매할 수 있도록 할 것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FT는 “중국이 러시아 입장에서 동의하기 어려운 수준의 하향 요청을 했다”며 “중국이 시베리아의 힘2와 관련해 강경한 자세를 보이는 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중국에 경제적으로 강하게 의존하고 있단 방증”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일각에선 러시아가 더 이상 가스 가격을 낮추는 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중국이 이미 다른 국가 대비 낮은 가격에 러시아산 가스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콜롬비아대학교의 글로벌에너지정책센터(CGEP)에 따르면 중국은 러시아에 가스 100만 BTU당 4.4달러를 내고 있다. 동일한 용량을 미얀마로부터 10달러, 우즈베키스탄으로부터 5달러에 구매했음을 고려하면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중국의 요구대로 가격을 더 낮추면 러시아는 상당한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러 가즈프롬 손실 25년 만에 최대, “중국이 생명줄”

문제는 러시아에 있어 이번 가스관 계약이 러시아 가스 사업 가즈프롬의 ‘생명줄’과 다름없는 상황이란 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 제재로 인해 가즈프롬의 유럽향 가스 판매는 연평균 230bcm(1bcm=10억㎥)에서 22bcm까지 급감했다. 이로 인한 가즈프롬의 손실은 지난해에만 6,290억 루블(약 9조6,000억원)에 달한다. 25년 만의 최대 손실 폭이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의 희망은 중국뿐이다. 러시아는 유럽에 공급하던 러시아 서부의 가스전을 중국으로 연결하면 가즈프롬을 살릴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중국에 대한 에너지 수출이 증가한 만큼 앞으로도 중국이 수출을 견인해 줄 수 있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실제 알렉세이 밀러 가즈프롬 CEO(최고경영자)는 지난해 10월 베이징에서 중국천연가스공사(CNPC)와 회의를 마친 뒤 “올해 시베리아의 힘 가스관을 통한 대중국 가스 공급이 작년보다 46% 이상 증가했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 차원에서 러시아산 가스를 유럽 측에 되판 일도 있었다. 중국의 가스 구매량이 방대했다는 증거다.

대중국 석유 수출도 늘었다. 러시아 국영 석유기업 로스네프트의 이고리 세친 CEO는 지난해 10월 열린 제5회 중러 에너지 비즈니스 포럼에서 “지난해 중국에 7,500t 이상의 석유를 공급했고, 이는 전년 대비 25% 증가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러시아가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치고 1∼8월 중국에 석유를 가장 많이 공급한 나라가 됐다”고 덧붙였다. 러시아가 손실을 만회하는 데 중국의 영향력이 그만큼 컸단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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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할 것 없는 중국, 러시아 활용해 에너지 부담 줄이나

이렇다 보니 러시아 측은 “빠른 시일 내 시베리아의 힘2 전용가스관 개발사업이 합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거듭 사업을 타진하는 모양새다. 지난달 16~17일 푸틴 대통령이 중국을 국빈 방문했을 당시에도 러시아 측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주요 의제로 시베리아의 힘-2 가스관 관련 협상 진전을 강력 요청했다.

그러나 중국은 여전히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3월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과 회담을 나눈 뒤 “시베리아의 힘2에 대해 거의 모든 부분에서 합의했다”고 밝혔지만, 막상 시 주석은 이와 관련해 일절 언급을 내놓지 않았다. 이에 중국을 국빈 방문했을 당시 밀러 가즈프롬 CEO가 동행하지 않은 데 대해서도 “시베리아의 힘2 사업이 교착화한 영향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처럼 중국이 가스 가격 하향을 거듭 압박하는 건 최근 중국 내 발전수요가 확대되면서 에너지 가격에 대한 부담이 덩달아 커진 탓이 크다. 이 같은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유연탄 가격 상승이다. 한국광해광업공단에서 발표한 주요 광물가격동향에 따르면 지난 4월 3주차 유연탄 가격이 전주 대비 t당 131.29달러에서 139.03달러로 5.9% 상승했다. 동기간 국제유가가 3.4%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발전수요 확대 기대감이 상승 압력을 일으키면서 가격이 오른 것이다.

중국으로선 가스 수입량을 늘려야 할 이유가 없다는 점도 고자세를 유지하는 이유다. 콜롬비아대학교의 글로벌에너지정책센터(CGEP)에 따르면 중국의 가스 소비량은 2030년 250bcm까지 상승할 전망이지만, 이는 기존 시베리아의 힘만으로도 대부분 충족된다. 결국 가스사업의 ‘칼자루’를 쥔 중국이 러시아를 이용해 자국 부담을 줄이려 하고 있단 의미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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