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군사동맹’ 맺은 북·러, 가중되는 안보 위협에 북방외교 성과도 유명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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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관계 회복한 북한-러시아, 대외 압박 저항하겠다 밝히기도
북·러의 비즈니스 관계 구축, 양국 기술 협력 아래 한반도 전쟁 위협 ↑
30년 이어온 북방외교 무너졌다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에 균형 깨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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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평양 순안 공항에서 열린 푸틴의 출국 행사에 참석해 함께 서 있다/사진=크렘린궁

북한과 러시아가 사실상 군사동맹을 맺으면서 28년 만에 동맹관계를 회복했다. 상호 협력도 강화했다. 북한은 러시아에 재래식 무기를 지원하고 러시아는 북한에 첨단 군사 기술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한반도 전쟁 위협이 더욱 고조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러시아의 비호 아래 북한의 위세가 커질 수 있단 것이다.

북-러,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 체결

20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을 체결했다고 보도했다. 공개된 협정문에 따르면 조약 제4조에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들로부터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러시아연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1996년 최종 폐기된 자동군사개입 조항이 부활한 것이다. 북·러가 사실상 군사동맹을 맺었단 평가가 국제사회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배경이다.

협정문엔 상호 협력을 강화하고 대외 압박에 저항한단 내용도 포함됐다. 조약 제5조에선 “상호 기타 핵심 이익을 침해하는 협정을 제3국과 체결하지 않으며, 그런 행동들에 참가하지 않을 의무를 지닌다”는 내용이 적시됐는데, 이는 한국과 러시아 간의 관계 진전을 사실상 봉쇄한 것이다. 북한에 있어 한국은 ‘적대적 교전국’이기 때문이다. 제16조에는 “쌍방은 치외법권적인 성격을 띠는 조치를 비롯해 일방적인 강제조치들의 적용을 반대하며 그러한 조치들의 실행을 비법적이고 유엔헌장과 국제법적 규범에 저촉되는 행위로 간주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의 정당성을 부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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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전쟁 위협 증대, “러시아는 북한 막을 이유 없어”

북한과 러시아가 긴밀한 공조를 이어감에 따라 한반도 정세는 더욱 악화할 전망이다. 양국의 군사협력이 가속한 데 더해 유사시 러시아가 개입할 가능성까지 생겼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이 직접 북한과의 군사공조 강화를 언급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19일 기자회견에서 “조약에 따라 러시아는 조선(북한)과의 군사기술 협조를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당분간은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무기를 공급받고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를 돕는 정도의 협력에 그칠 것으로 보이지만, 향후 핵·미사일 등 핵심 기술로까지 협력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단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더 큰 문제는 지금의 북·러관계가 상호 필요에 의해 이뤄진 ‘비즈니스 관계’란 점이다. 과거 냉전 시기만 해도 북한은 러시아(소련)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는 처지였다. 소련이 북한에 관심을 저버리는 순간 끝나는 관계였단 의미다. 그러나 이번 협정에서 북한과 러시아는 상호적 거래를 이루는 모습을 보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재래식 무기가 부족해진 러시아는 북한으로부터 포탄을, 기술력 부족에 허덕이는 북한은 첨단 군사 기술을 건네받는 식으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형성했다. 일방적으로 관계가 단절될 가능성이 현저히 적어진 셈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북한과 러시아의 긍정적 관계가 장기화할 경우 한반도 내 전쟁 위협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로선 북한의 전쟁 위협을 억제할 이유가 마땅히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북한의 역내 도발을 환영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북한이 미국의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면 러시아에 대한 억제력은 상대적으로 낮아질 거란 측면에서다. 패트리샤 김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주역인 러시아로선 미국의 관심을 분산시키는 측면에서 북한의 역내 도발을 환영할 수 있다”며 “러시아의 안전보장을 받게 된 북한이 한반도에서 더욱 도발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힘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전했다.

북-러에 맞서려면 한-미-일 공조 강화해야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에선 지난 30년간 이어온 북방외교의 성과가 한순간에 무너졌단 평가가 나온다. 북방외교는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이 남북관계 개선과 중국, 소련 등 사회주의 국가와의 관계 개선 추구를 천명한 7.7 선언에서 시작됐다. 이를 계기로 한국은 1990년 소련, 1992년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었고, 이들과의 관계 개선은 지정학적 갈등 해소 및 북방교역 증대 등 다양한 부수적 성과를 창출하며 한국의 안보 증진과 경제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에 들어 한·미, 한·미·일 군사협력이 강화되면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한국이 미국, 일본을 중심으로 군사력을 결집하고 세력을 키우자 위기감을 느낀 북·러가 급격히 밀착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한국에 있어 한·미·일 안보 협력은 없어선 안 될 중요한 전략 중 하나지만, 삼국 안보 협력을 계기로 오히려 안보 위협이 증대된 건 아이러니다. 결국 북·러의 군사적 밀착을 사전에 예견하지 못한 외교적 실책이 새로운 리스크를 야기한 셈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북·러관계가 강화됐듯 한국도 미국·일본 등과 협력관계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러시아가 북한에 기술 이전을 이루기 전에 북·러에 대한 견제력을 키워야 한단 취지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은 “큰 틀에서 기술 이전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은 아니다”라며 “안보 위기 속에 원자력 잠수함 등 새로운 게임 체인저가 등장할 수 있단 점을 고려해 집중적인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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