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 인상 논란에 시공사 손 들어준 법원, 조합 측은 “이러다 정비사업 추진 동력 꺼진다” 우려
잡음 불거진 롯데건설 정비사업지, 원인은 '공사비 인상'
법원 '물가변동 배제 특약 무효화' 판결, "가격 상승 부담 나눠야"
'힘겨루기' 돌입한 시공사들, 공사비 인상 논란에 사업 좌초 위기도
롯데건설이 시공을 맡은 정비사업지에서 잡음이 불거지고 있다. 공사비를 올려달란 요구가 거듭 나온 탓이다. 여기에 최근 대법원에서 물가 상승분을 공사비 증액에 반영하지 않기로 한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단 내용의 판결까지 나온 만큼, 앞으로 시공사 차원의 공사비 증액 요구는 더욱 잦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공사 멈춘 롯데건설, “공사비 인상해 달라”
19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롯데건설은 지난 4월 현대아파트 리모델링주택조합에 공사비 인상과 공사 기간 연장의 검토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물가 상승분에 맞춰 공사비를 인상해 달란 게 골자지만, 조합에선 볼멘소리가 나왔다. 공사비 인상분이 과도하단 것이다. 롯데건설 측은 수주 당시 3.3㎡당 542만원이었던 공사비를 올해 925만원까지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사실상 2배에 가까운 인상을 요구한 셈이다.
롯데건설이 조합 측과 공사비 인상을 두고 갈등을 빚는 곳은 또 있다. 서울 강남구 청담 삼익아파트 재건축 사업장인 청담르엘이다. 앞서 롯데건설은 지난 17일 청담르엘의 공사 중단을 예고하는 현수막을 공사 현장 출입구에 내걸었다. 이에 롯데건설 측은 “조합이 일반분양 시기를 확정 짓지 않고 있어 세 차례 공문을 보냈으나 답이 없어 공사를 중단할 예정”이라고 밝혔지만, 재건축 조합 측은 “시공 수준이 조합원들이 예상하는 수준에 못 미치는 데다 대출 관련 갈등을 빚는 가운데 공기연장까지 요구받아 시공사와 협상이 결렬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공사비 갈등이 극으로 치달으면서 공사 중단 사태까지 벌어진 셈이다.
법원 “공사비에 물가 인상분 반영해야”
공사비 인상 문제가 반복되면서 조합원들 사이에선 불안의 목소리가 확산하기 시작했다. 공사비 인상으로 조합원의 부담만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사비 인상이 확정될 경우 해당 단지의 공사비 기준이 다른 단지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단 의견도 있다. 이에 대해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사비 분쟁은 사업장마다 계약서 조건대로 하는 게 원칙이지만, 인근의 다른 단지에 참고 사항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사비 인상이 점진적으로 전국에 확산할 가능성이 있단 의미다.
이에 조합 측에선 경계를 늦추지 않는 모양새지만, 최근 법원이 시공사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리면서 당분간 공사비 인상 파동이 이어질 전망이다. 앞서 지난 4월 대법원은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5항’을 근거로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을 제한할 수 있다고 본 부산고등법원 판결에 대한 상고를 심리불속행 기각하며 2심을 확정했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상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사건을 더 이상 심리하지 않고 기각하는 제도다.
부산의 한 교회가 시공사에 제기한 선급금 반환 청구 항소심에서 2심 재판부는 “수급인(시공사)의 귀책 사유 없이 착공이 8개월 이상 늦춰지는 사이 철근 가격이 두 배가량 상승했는데, 이를 도급 금액에 전혀 반영할 수 없다면 수급인에게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에 해당한다”며 해당 물가 배제 특약을 건산법 조항에 따라 무효라고 판결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원자재 가격 상승 부담을 시공사가 모두 떠안는 건 불공정 거래에 해당한단 것이다. 국토교통부 역시 같은 법률에 따라 물가변동 배제 특약이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공사비 논란 전국적 확산 분위기, “정비사업 추진 동력 꺾일 수도”
이렇다 보니 업계에선 공사비 인상 담론 확산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미 ‘힘겨루기’에 들어간 시공사도 생겼다. 현대건설이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 조합에 54.7%의 공사비 증액을 요청한 게 대표적이다. 현대건설 측 관계자는 “당초 책정 시기에 비해 물가가 급등한 데다 46개 동, 5,440가구에서 50개 동, 5,002가구로 공사 내용이 바뀐 탓에 공사비 증액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송파구 잠실진주아파트의 경우 공사비 인상 논의가 두 차례나 벌어졌다. 재건축 시공사인 삼성물산 측이 2021년 평당 510만원에서 665만원으로 한 차례 인상한 데 이어 지난해 10월 원자잿값 인상, 설계 변경, 문화재 발굴 등을 이유로 공사비를 평당 890만원까지 인상해 달라고 요구하면서다. 이에 조합 측은 “추가 인상은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았고, 결국 사업 일정은 다시 한번 연기됐다. 공사비 인상 문제로 사업 자체가 좌초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공사비 논란으로 정비사업 추진 동력이 꺾일 수 있단 우려가 확산한 만큼, 정부 차원의 합리적인 제도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란 목소리가 쏟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