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입주 물량 충분하다는 정부, 실상은 ‘임대주택’ 제외하면 2만5,000호뿐
서울시 통계 근거로 "물량 충분"하다던 정부
주택 공급 지표로 인허가 아닌 착공·입주 제시
임대 주택 빼면 서울 입주 2만5천 가구 불과
정부가 서울 아파트값 상승의 원인으로 공급 부족이 지목되자 입주 물량 통계를 근거로 들며 충분하다고 반박했지만 시장에선 정부 통계가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내놓은 통계는 실수요자들이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시장과 동떨어진 물량이 포함돼 과다 집계됐다는 분석이다.
정부 “3만8,000호로 충분”
1일 부동산 업계 등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의 집값 상승폭이 급격히 커지자 지난달 18일 10개월 만에 부동산 관계장관회의를 소집하고 집값 안정을 위한 메시지를 내놨다. 그중 하나가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이 약 3만8,000채로 충분하다는 것이었다.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예상하는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3만7,897채(올해 2월 기준)다.
과다 집계라고 지적되는 건 여기에 공공임대와 원룸·투룸 규모가 대부분인 소형주택이 포함돼 있어서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아파트 입주 물량 3만7,897채에는 청년안심주택 8,765채, 공공임대주택 2,539채, 재건축·재개발 공공기여 임대주택 1,772채 등이 들어 있다. 임대주택인 청년안심주택의 경우 전용면적이 23~60㎡로 제한돼 있다.
청년주택 외 임대주택에는 넓은 면적의 일반 아파트가 포함돼 있지만 이들 물량은 자산, 소득 등의 기준에 따라 입주 자격에 제한을 두고 다시 임대로 공급된다. 또한 임대 외에도 소형분양주택인 원룸형 도시형생활주택도 아파트 입주 물량에 포함된 상태다. 정부가 대중의 인식과 동떨어진 소형주택도 아파트로 집계한 이유는 현행법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공동주택 중 주거용 층이 5개 층 이상이면 가구별 면적과는 무관하게 모두 아파트로 분류한다.
시장 “실수요 물량과 괴리”
결국 이 같은 임대를 제외하면 올해 서울 아파트 입주 예정 물량은 2만4,821채로 감소한다. 내년 입주 예정 물량도 정부는 4만8,329채라고 제시했지만, 임대를 제외하면 3만2,306채로 줄어든다. 여기에 매년 철거되는 멸실 주택 수를 감안하면 순수하게 증가하는 물량은 더 적다. 멸실 주택 통계는 2022년이 가장 최신으로, 2022년을 포함한 5년간 연평균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4만5,499채(소형주택 포함 수치)다. 같은 기간 연평균 멸실 아파트 물량은 7,563채인 만큼 이를 감안하면 매년 순증 아파트는 3만7,936채다.
이에 전문가들은 보다 획기적인 수준의 공급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서울의 주택보급률은 2022년 기준 93.7%로 2019년(96%) 이후 3년 연속 하락 중이다. 주택보급률은 전체 주택 수를 가구 수로 나눠 100을 곱한 수치로, 가구 수 대비 주택 수를 나타낸다. 통상 주택보급률이 100%는 넘어야 공급 부족으로 해석되지 않으며 100%보다 높아질수록 집값이 안정되는 경향이 있다.
그간 정부는 주택 공급량과 관련해 착공과 준공이 아닌 인허가 기준으로 계획을 세워왔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2022년 8·16 대책을 통해 밝힌 향후 5년간 주택 270만 가구 공급도 인허가 기준이다. 그러나 아파트 인허가 물량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2022년부터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짧게는 2~3년, 길게는 5년 뒤 수도권에 공급되는 아파트가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란 뜻이다. 특히 지난해 서울 아파트 인허가는 2만1,284가구로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2007년 이후 가장 적었다. 올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주택 인허가는 예년 평균 54만 가구보다 30% 줄어든 38만 가구 수준으로 예상된다.
‘3중 공급난’에 빠진 수도권 아파트
수도권 아파트 인허가가 급감한 것은 2022년부터 본격화한 고금리와 건설 자재 값 인상 등의 영향이 크다. ‘패닉 바잉’ 열풍 등으로 과열됐던 주택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었고, 준비하던 아파트 사업을 보류하는 민간 업체가 늘면서 인허가 물량이 쪼그라들었다. 인허가를 받아놓고도 착공이나 분양에 차질을 빚는 사업장도 급증했다. 또한 신규 택지가 귀한 서울에선 재건축·재개발이 지연되는 사업장이 늘면서 공급 지표에 빨간불이 켜졌다.
최근 2년간의 수도권 아파트 인허가 부진은 부동산 경기가 침체했던 2013~2014년 상황과 비슷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치솟았던 아파트 값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기점으로 꺾이기 시작해 바닥을 치던 때다. 당시 2년 동안 수도권 아파트 인허가는 26만7,210가구에 그쳤다. 이때의 인허가 감소는 결국 아파트 공급 부족을 불러왔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집값 급등의 단초가 됐다. 게다가 당시 정부는 공급 확대 방안을 찾기보다 서울 등 수도권 아파트에 쏠리는 수요를 각종 규제로 억누르면서 집값 불안을 더욱 가중시켰다.
인허가 외에 착공·분양 같은 다른 공급 지표도 경고음을 보내고 있다. 수도권에서는 2010년대 중반부터 경기도를 중심으로 해마다 20만 가구 안팎의 아파트가 착공됐다. 그런데 2022년 들어 13만9,967건으로 줄더니 작년에는 고작 8만8,687가구 착공에 그쳤다. 보통 아파트 건설에 2~3년 정도가 소요되는 만큼 내년부터 수도권 아파트 시장에서의 입주 물량 부족이 점쳐지는 대목이다. 아울러 주택 수요자에게 공급된 수도권 아파트 분양 물량도 2020년 12만3,206가구에서 2021년 10만6,944가구, 2022년 9만694가구에 이어 지난해에는 7만4,334가구로 가파르게 줄어드는 추세다. 한국 부동산 시장의 ‘삼중(三重) 공급난’이 심각한 상황이라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