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IT개발’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스탠퍼드 대학의 한국 AI역량 평가를 보면서
스탠퍼드 대학 인간중심AI연구소, AI Index에서 한국 AI역량 이집트, UAE와 동급 취급
'AI=IT개발'이라고 착각했던 정부 관계자들의 어리석은 예산 집행이 낳은 정책 실패
돈만 투입하면 해결되는 인프라, 건설 사업 아냐, 늦었지만 인재 양성부터 천천히
10년, 20년이 걸리더라도 A급 인재 길러낼 수 있도록 고교, 대학 교육 시스템부터 개선해야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명문 스탠퍼드 대학의 인간중심AI연구소에서 발표한 2024년 전세계 AI지표(AI Index)에서 한국이 이집트, UAE 등의 중동 국가들과 유사한 수준의 AI역량을 가진 국가로 발표됐다. 챗GPT의 밑바닥에 있는 ‘대형언어모델(LLM)’ 같은 기초 모델을 한국이 만들어 내질 못했다는 것이 평가의 원인이다.
관련 커뮤니티들에서 굳이 LLM을 만들 필요가 없어서 안 만들었다거나, 실제로 주요 기업들이 이미 상용화해서 쓰고 있는데 정보가 잘못 반영됐다는 둥의 변명들을 찾을 수 있지만, 업계 관계자 분들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한국이 LLM 기초 모델은 커녕 AI라고 불리는 각종 계산과학 모델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심각하게 부족한 나라인데다, 정부의 AI정책마저도 지난 7~8년 동안 IT개발자를 위한 코딩 교육에 맞춰졌기 때문이다.
‘AI=IT개발’이라고 믿고 있던 정부-학계-산업계-언론계 카르텔이 낳은 글로벌 AI 최하위 국가
지난 2018년, 국내에서 AI 기반 타깃마케팅 사업을 하겠다고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정부나 기업 프로젝트를 도전해봐도, 국내 주요 기관을 찾아가봐도, ‘AI≠IT개발’이라는 상식이 제대로 받아들여진 경우를 찾기는 매우 힘들었다. 대체로 코딩 교육을 잘 하면 우리나라도 AI업계에서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공대 및 IT학원가 홍보에 완전히 현혹된 분들이 정책 결정을 하고 있었고, 정부에서 발주되는 프로젝트들은 무조건 딥러닝이라는 계산법만 쓰면 인공지능이고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처럼 착각한 프로젝트 요건들을 담고 있었다.
예를 들어, 정신과 감정을 위한 설문조사 데이터를 기반으로 정신 질환자를 99.9%를 찾아낼 수 있는 딥러닝 모델을 3천만원짜리 프로젝트로 발주했던데, 역량을 갖춘 관계자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걸 딥러닝이라는 계산법으로 돌려서 될 문제가 아니다. 그저 10개 남짓의 계산과학 계산법 라이브러리를 이용해서 이것저것 테스트해 봤더니 제일 잘 맞는 모델은 뭐였다는 학부 2학년 연습문제 수준의 논문이 버젓이 출판되고, 언론지상에 의료AI 연구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다고 당당하게 자랑하는 터무니 없는 정부-학계-산업계-언론계 카르텔이 돌아가고 있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 AI라고 알려진 계산과학 알고리즘들은 수리통계학, 컴퓨터과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들이 결합된 학문으로, 수학 및 통계학 훈련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알리는 기고글도 장기간 써 왔고, 답답한 나머지 교육 기관을 운영하다가 지난 2021년부터는 국내 규제를 피해 스위스에 AI대학원을 설립했다. 그간 받았던 한국인 학생 약 70명 중 국내 주요대학 박사학위자 10명을 포함해 석·박사 학위자를 약 절반정도 받았지만, 교육 수준을 글로벌 명문대 학부 수준으로 낮춰 운영했던 AI 경영학 석사를 포함해도 졸업생이 8명 남짓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학계-산업계-언론계 카르텔을 넘어서, 아예 우리나라에 인재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지적하면, 고교부터 대학, 대학원까지,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지 않았던 탓에 저 70여명의 용기백배했던 학생들이 그렇게 좌절의 쓴 맛을 봤어야 하는 것이다.
정부의 무능이 낳은 결과, 따라잡는데는 몇 년이나 더 걸릴까?
귀국 후 약 7년의 세월을 한국에서 보내는 동안, 한국이 지적인 인재를 길러내고 활용하는데는 굉장히 역량이 부족한 나라고, 기계를 사오거나 기술을 사와서 기계를 만드는 역량, 그런 기계를 기반으로 한 인프라를 구성하는 중앙집권 시스템은 잘 갖춰진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일본, 한국, 중국을 비롯한 주요 아시아 국가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다만, 기술 개발이라는 도전을 위한 고급 인재 양성 및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한국 사회가 매우 부실한 사회 시스템을 갖고 있다보니, 통신 설비 같은 인프라 구성만 화려할 뿐, 정작 기술적인 역량을 쌓아올리기에는 어려운 나라라는 것이 보이더라.
비슷한 좌절을 겪은 많은 인재들이 한국으로 왔다가 다시 미국과 유럽 국가들로 유턴하기도 하고, 그간 국내에 들어와서 고생한 인재들이 겪은 좌절들을 듣고는 한국 귀국 자체를 아예 고려하지 않는 경우들도 자주 전해 듣는다. 우리끼리는 한국 귀국 자체를 커리어 포기, 혹은 은퇴에 가까운 표현으로 취급할 정도가 됐다.
인프라를 따라잡는 것은 중앙집권 시스템을 갖고 있는 덕분에 그리 많은 세월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보고서를 올려서 승인을 받는 상명하복식 문화권에서 속칭 “까라면 까”는 식의 사회 시스템 개발은 높은 확률로 효율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지적 훈련을 받은 고급 인재를 양성하고, 그 인재가 사회 시스템을 혁신하는 도전이 성공할 수 있는 길 조차 열려있지 않은 나라에서 단숨에 글로벌 최상위권 기술 국가들을 따라잡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겉으로만 화려한 도전보다 내실 쌓는데 집중해야
처음 귀국해서 ‘AI≠IT개발’이라고 열심히 설명하면서 정부 기관이나 기업들에 강의를 나가보면, ‘특이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온라인 커뮤니티들에서는 온갖 비난을 다 받기도 했고, 속칭 멍석말이 맹비난을 받은 적도 있다. 사업을 키우기 위해서 벤처투자기관(VC)들을 찾아가면 AI한다고 하면서 개발자 아니라는게 말이 안 된다면서 개발자가 몇 명이나 있는 조직인지, 정부의 AI프로젝트들은 몇 개나 해 봤는지를 물었다.
중소벤처기업부 산하 조직에서 벤처기업으로 인가를 받을 때도 개발자 숫자가 몇 명인지를 따졌지, 석·박 시절에 해외 주요 학회에서 발표했던 계산과학 논문들은 서류 심사에 올라가지도 못했다. 기업들은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 DT)’를 한다면서 기업 미팅을 갈 때마다 DT, DT라고 노래를 부르는데 정작 AI를 이용한 DT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개발자들을 모아놓고 데이터베이스만 만들고 있을 뿐이었다. 정부가 기업들의 DT에 막대한 지원금을 지급했고, 기업들은 그 돈으로 개발자들을 AI전문가라고 이름 붙여서 팀을 굴렸다.
올해 들어와서 정부가 R&D지원금을 대폭 축소하고, 더 이상 DT에 지원금을 주지 않으면서 개발자들 채용 시장이 얼어붙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불과 4년 전에만해도 코딩 한 줄이라도 칠 줄 아는 인력을 길러야 한다면서 초등학교 교육과정에까지 코딩 교육을 넣고, 실력에 관계없이 개발자들 몸 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랐는데, 정부가 R&D 예산을 축소하자마자 시장이 꽁꽁 얼어붙어버렸다.
어떤 변명을 들이댄다고해도 지난 2016년부터 시작된 한국 정부의 AI정책은 완전히, 철저하게, 그리고 아주 조잡스러워서 부끄러울 정도로 실패했다는 사실만은 반박할 수 없을 것이다.
정부 예산 배정, 집행을 비전문가인 행시 출신들이 했던 것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
AI로 알려진 계산과학은 적당히 교육한 인력을 무작정 투입하면 완성되는 인프라 사업이 아니다. 한국이 건설 사업 활황으로 1970년대에 경제 성장의 기틀을 만들었는데, 1990년대 이후로 반도체 사업마저도 주요 생산 설비를 미국, 유럽, 일본에서 구매해온 다음에 생산만 한국에서 하는 방식으로 지난 50년간 번영을 일궈왔다. 그 사이 지적 역량을 갖춘 고(高)기술 산업은 방치되고 있다는 비난이 계속 나왔지만, 능력있는 인재를 붙잡아 둘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 내질 못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숫자가 아닌, 탄탄한 구조를 갖춘 사회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그리 간단한 작업이 아니다. 전문성이 하나도 없는 행시 출신 사무관이 예산을 배정하고, 그 예산을 일선 공무원들이 집행하는 종류의 보고서 기반 사회 조직으로 고(高)기술 산업을 키우는 것에 성공한 나라는 단 한 곳도 없다.
AI가 외부에는 자동화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고급 패턴 매칭 기술이고, 그 패턴 매칭 알고리즘 개발이 결국 인간의 몫인 것처럼, 정부가 주도해서 AI산업을 키우고 싶으면 비전문가 행시 출신이 예산을 집행할 것이 아니라, 기술적으로 매우 뛰어난 전문가가 예산 낭비를 철저하게 차단하는 시스템, 실력 뛰어난 인재에게 예산을 몰아주는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도록 인력 구성을 뜯어고쳐야 한다.
적어도 개발 독재 시절에는 한국 땅을 뒤져서 찾기 힘든 인재들에게만 기회를 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