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럼] 불확실성 늘리는 국가협력체, 글로벌 가치 사슬 효과 떨어뜨린다
GVC, 정치적·경제적 불확실성으로 제 역할 못하는 경향 늘어
국가 간 협의체 등이 기업 활동 위축시키는 결과 낳기도
RCEP 등 다자간 협의체들 역할 중요성 더 커져
[동아시아포럼] 섹션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 이코노미(Policy Economy)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신흥국들의 발전 전략이 된 글로벌 가치 사슬(Global Value Chain, GVC)이 각국의 정치적·경제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GVC는 두 개국 이상이 참여하는 경제 네트워크로, 각국 기업이 원재료와 노동력, 자본 등을 결합하는 한편 기업이 제각기 비교우위가 있는 곳에서 경제 활동을 벌여 이익을 최대화하는 구조를 말한다. 세계은행(World Bank)에 따르면 GVC는 지난 2007년 가장 활발히 성장하다 그 직후 세계 금융위기와 맞물려 기세가 약해졌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진 이후엔 그 감소세에 더 불이 붙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의 배경으로 경제 정책의 불확실성을 꼽는다. 각국의 경제 및 정치적 논쟁 속에서 기업들이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관망세로 접어들고, 그 결과 기업 활동과 투자가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국제 협의체 등장으로 기업들 관망세 돌입한 탓
지난 2022년 출범한 인도·태평양 경제협의체(IPEF)도 불확실성을 증가시키는 요소로 지목된다. IPEF는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막기 위해 미국이 주도해 만든 일종의 경제안보 동맹으로 한국을 비롯해 일본, 호주, 인도, 말레이시아, 태국, 싱가포르 등 13국이 손을 잡았다. IPEF를 통해 참여국들끼리 GVC에 기반한 공급망을 재편, 중국을 고립시킨다는 복안이다. 이 같은 협의체의 등장으로 기업들이 생산과 용역 등을 타국으로 옮길 수 있는 문이 열렸지만, 이 상황이 불확실성으로 작용하면서 기업 활동은 위축됐다.
실제로 각국이 전략적 동맹을 맺는 건 GVC의 효율성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간 규칙을 기반으로 작동하며 역내 통합을 이뤄내던 거래들까지 약화시킨다. 이렇게 기업 및 지역 간 상호 의존성이 줄어드는 건 GVC 관련 활동 및 공급망 안전성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이 같은 상황의 여파는 모든 관련국에 동등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GVC 구조의 하위 국가들보단 상위 국가들이 여파를 더 크게 겪을 가능성이 높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싱가포르, 베트남처럼 GVC로 경제적 이득을 보던 신흥국들이 더 큰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이다.
기업이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방식들은 동아시아 전역의 GVC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다. GVC 구조 내에선 특히 중간재 무역(intermediate trade)으로 인한 기업 간 연결성과 상호의존성이 높아 다른 무역 구조에 비해 불확실성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중간재 자체가 국제 경기 변동에 민감한 데다 중간재 무역에 문제가 생기면 원재료와 최종재 무역에도 영향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경제 정책의 불확실성은 기업의 투자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기업이 투자를 아예 미루게 만들 수도 있다. 또 기업이 GVC 구조에 진입했다가 빠져나오는 일 등이 글로벌 무역의 불확실성에 달려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에 전문가들은 경제 정책의 불확실성을 완화하려면 GVC의 힘을 기르고 규칙 기반 무역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개방적인 무역 및 투자 환경을 만들고 역내 경제 협력을 강화하는 것도 그 방법 중 하나다. 그 과정에선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아세안)의 역할도 기대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이 여의치 않다. 다자무역의 규칙을 무시하는 일이 점점 늘고 있고, 대신 재량적, 양자 간 협정을 추진하려는 움직임이 각국에서 포착되고 있다. 이 같은 행보는 결국 지역 내 분열을 촉진한다. 일부 국가들끼리 전략적 동맹을 맺는 건 되레 아세안과 동아시아 회원국들의 지역 통합 의지를 꺾을 수 있어서다.
RECP 등 거대 협의체가 대안 될 수도
이런 가운데 아세안을 중심으로 15개국이 참여한 세계 최대 규모 자유무역협정,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이 동아시아 지역의 지속가능한 경제 발전을 도모하는 데 새로운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RCEP의 잠재력이 워낙 큰 덕이다. RCEP는 경제는 물론 환경, 기후변화, 기술 개발, 스마트 도심 개발 등의 문제에서 훨씬 큰 규모의 지역 통합 정책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각광받고 있다.
아울러 RCEP 장관급 회의를 비롯해 협정 내 명시된 각종 규정들이 세계 무역의 자유화에 불을 붙일 수 있다는 기대도 높다. 이 같은 대규모 GVC에 참여하는 첨단기술 기업들은 대개 제조 및 서비스 활동에 모두 참여해야 한다. 지역 내 기업들이 생산 구조를 이해하고 분해해 GVC를 통해 효율적으로 분산시킬 수 있다면 기업의 민첩성과 탄력성 증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디지털 및 친환경 기술을 다루는 기업들이 부가가치 활동의 효과를 끌어올리기 위해선 더더욱 역내 협력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제기된다. GVC에 속한 기업들이 기업 활동력의 효율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지역 간 양방향 분석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이를 위해선 우선 노동자의 숙련도를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노동자들 간 기술 격차를 줄이고 생산성을 향상시키려면 보다 유연하고 민첩한 노동력을 양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역내 경제 협력은 전략적 협정 등으로 인해 일부 지역 기업들 사이 상호의존성이 약화할 때 노동자들의 재교육을 통해 이들을 핵심 기술 인력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 취약한 노동력은 경제 정책의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능력을 떨어뜨리는 만큼 숙련 노동자 양성은 더더욱 시급한 문제다. 아울러 이는 아세안이 지역 내 취약 계층의 보호에도 신경 써야 하는 이유다. 정책의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노동자들의 힘은 더 줄어들기 때문이다.
국가 간 경제적·정치적 제휴들이 경제 정책의 불확실성을 증대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선 역내 협력은 필수적이다. 동아시아가 꾸준히 성장하려면 GVC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인데, 그런 만큼 GVC 통합 전략의 맹점을 메우기 위한 RCEP와 아세안의 노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 됐다.
원문의 저자는 샨드레 무간 탕가벨루(Shandre Mugan Thangavelu) 말레이시아 선웨이대(Sunway University) 제프리삭스지속가능개발센터(Jeffrey Sachs Centre for Sustainable Development) 선임연구원이자 제프리체아동남아시아연구소(Jeffrey Cheah Institute for Southeast Asia) 소장입니다. 영어 원문은 Regional cooperation can buffer global value chains against uncertainty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