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럼] 북한·러시아 동맹 강화에 몸 사리는 중국, 동아시아 정세는 어디로 흐르나
북한·러시아,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 체결
상호 군사 지원 및 에너지·식량 분야 협력 약속도
서방국 제재·군사 압력에 대응하려는 목적 더 커
[동아시아포럼] 섹션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 이코노미(Policy Economy)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북한과 러시아가 최근 들어 부쩍 양국 관계를 강화하면서 동아시아 평화 지형에 위기감이 드리우고 있다. 앞서 양국은 유사시 상호 군사 지원 등을 명시한 협정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에 중국 등 관련국들은 두 나라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푸틴, 김정은 만나 동맹 강화 약속
지난 6월 19일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은 24년 만에 북한을 방문하며 역사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푸틴 대통령은 당초 약속된 도착 시간을 5시간 넘긴 새벽 2시에 평양에 내렸는데, 그럼에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순안 공항에서 직접 푸틴 대통령을 맞이했다. 성대한 환영 행사로 시작된 푸틴 대통령의 방북은 여러 분야에서의 협력 약속을 담은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 체결(Comprehensive strategic partnership treaty)과 더불어 막을 내렸다.
러시아와 북한의 관계는 구소련이 김일성 주석의 정권 수립을 지지하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양국 관계는 소련이 해체된 뒤에도 여러 형태로 이어져 왔다. 지난 1961년 양국이 맺은 조·소 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조약은 1996년 폐기됐지만 2000년대 초반 비군사적 친선 및 협조 조약들이 그 빈자리를 메웠다.
그러던 중 지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양국 관계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북한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역의 분리 독립을 지지하는 한편 러시아에 무기용 컨테이너 1만1,000개를 보내며 지지 입장을 표명했고, 러시아는 북한에 에너지와 식량, 기술 지원으로 화답했다. 이 같은 협력은 양국 간 고위급들의 교류로 이어졌다. 북한과 러시아의 돈독한 관계가 반영된 흐름이다.
올해 양국이 맺은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은 상당히 독특한 내용을 담고 있다. 냉전시대 이후 맺어진 포괄적이고 유연한 전략 파트너십들과는 달리 이 협정엔 구체적인 상호 방위 조약이 명시돼 있다. 이번 협정을 두고 ‘1961년 조약의 부활’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물론 국제연합(UN) 헌장 51조와 양국 국내법에 따른 제약 규정이 붙어 있긴 하지만, 이는 전략적으로 해석의 여지를 남겨 양국이 위기 시 작전상의 유연함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에 가깝다.
이번 협정에 각국의 자위권을 인정하는 유엔 헌장 51조를 포함시킴으로써 조약의 법적 근거가 충분해졌고, 국제법의 맥락에서도 벗어나지 않게 됐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러시아와 중국, 미국이 거부권을 들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유엔 헌장 51조가 효력을 발휘하긴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이 조항은 러시아와 북한이 ‘국익을 고려한 판단’이라는 명목으로 상호 방위 의무를 이행할 여지를 만들어 줄 뿐이다.
동아시아 안보 협력 지형 통째로 뒤흔들 수도
양국의 이번 협정은 기존 협력 구조를 다지는 것 외에도 식량, 에너지, 기술, 국방 등 여러 분야에서의 포괄적 협력을 강조한다. 일각에선 양국의 이 같은 움직임이 미국-일본-한국, 미국-일본-필리핀 등 3국 체제뿐 아니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UKUS, 오커스) 등 미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안보 협력 지형을 뒤흔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러시아의 의도는 뚜렷해 보인다. 동아시아로 방향을 틀어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 구도에서 새로운 전선을 만들려는 시도로, 실제 서방국들의 대러시아 제재 및 군사적 압박 이후 러시아는 중국과 북한에 한층 더 기대게 됐다. 이 같은 흐름은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계속해서 지원하는 데 대한 러시아의 응답이기도 하다. 북한 역시 한미 양국의 대북 제재 및 안보 압박 속에서 자국의 체제를 지키기 위한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번 협정으로 북한은 러시아로부터 핵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중요한 기술들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됐는데, 북한 입장에선 한미 동맹에 대응할 수 있는 일종의 레버리지가 생긴 셈이다.
이런 가운데 중국의 역할은 한층 복잡해졌다. 러시아와 북한 양국과 전략적 이해관계를 맺고 있는 탓이다. 중국은 이번 협정으로 이득을 볼 수 있는 나라지만, 아직까지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중국은 특히 북한의 경제 및 정권 안정을 지지하는 와중에도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 및 핵 협력엔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인데, 중국 입장에선 역내 안정을 유지하고 미국과 그 동맹국들과의 직접적 마찰을 피하는 게 전략적으로 이득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가장 우려하는 지점은 러시아와 북한의 동맹이 한반도, 더 나아가 동아시아 지역에 긴장을 불러올 가능성이다. 물론 중국이 이 협정을 활용해 자국의 전략적 위치를 강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이 직접적 위협으로 인지할 만한 군사 협력은 피하려 할 공산이 크다. 러시아와 북한의 이번 협정이 동아시아 지정학에 큰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한 상황에서도 당장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은 높지 않은 이유다. 또한 일각에서 주장하는 ‘냉전 시대 동맹의 부활’과도 거리가 멀다. 협정 곳곳에 심어져 있는 전략적 모호성과 작전적 유연성 덕분에 북한과 러시아는 조심스럽게 동아시아 정세를 탐색할 수 있게 됐다.
러시아 입장에서 이번 협정은 동아시아 내 자국의 영향력을 끌어올리고 서방국들의 압력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이다. 북한 역시 이번 협정을 활용해 군사적 야망을 이어 나갈 수 있다. 다만 중국 입장에선 기회와 장애물이 모두 존재하는 영역으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다.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 발전은 국제정세 내 역학 관계와 전략적 경쟁 구도에 대한 대응책의 일환이기도 하다. 이는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변화에 대한 꾸준한 모니터링이 필요한 이유로, 양국의 관계는 바다 건너 지역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원문의 저자는 하오 난(Hao Nan) 중국 베이징 차하얼연구소(Charhar Institute) 연구원입니다. 영어 원문은 Russia’s treaty with North Korea creates new fault lines in East Asia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