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필리핀 가사관리사 도입에 외신도 관심, 최저임금부터 불법 체류까지 각종 논란 조명
中 인구학자, 韓처럼 외국인 돌보미 도입해 저출생 해소 제안
'양국 간 소득 격차 크지 않아 실업률 높아 실효성 없다' 반론도
홍콩·싱가포르 등 이미 시행 중인 지역은 불법 체류 문제 우려
서울시와 고용노동부가 추진하는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과 관련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인구 감소와 저출생 개선을 위해 육아 부담을 줄이고 이민자를 유치한다는 취지로 추진됐지만 최저임금의 적용, 모호한 직무, 불법 체류 등에 대한 갑론을박이 이어지면서 사업의 실효성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홍콩, 싱가포르 등 동아시아 주요 외신들도 저출생, 청년 실업 등 자국의 상황과 한국을 비교하며 시범사업과 관련해 제기되는 각종 논란에 대해 조망했다.
中, ‘외국인 돌보미’ 도입해도 저출생 개선 효과는 미미
2일 홍콩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한국의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과 관련해 “최근 중국의 출생률이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는 가운데 한국처럼 외국인 돌보미를 도입하자는 제안이 나오지만, 이러한 시도가 중국의 출생률 제고에는 큰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앞서 지난달 29일에는 ‘왜 한국의 필리핀 가사관리사는 홍콩, 싱가포르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받을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불법 체류, 최저임금 등 논란이 되는 사안에 대해 보도하기도 했다.
SCMP 등 홍콩과 중국의 언론들이 한국의 필리핀 가사관리사 도입에 주목하는 배경에는 최근 중국 최대 난제로 떠오른 ‘저출생’ 문제가 있다. 지난해 중국 전체 인구는 61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출생아 수는 902만 명으로 관련 통계가 집계된 1949년 이후 최저치를 경신했고 합계출산율은 1.0명을 기록했다. 세계 최저 수준인 한국 0.72명과 비교하면 높은 수준이지만 인구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마지노선인 2.1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이 때문에 중국 내에서도 부모의 육아 부담을 줄여주고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숙련된 외국인 돌보미를 도입하자는 제안이 있어 왔다. 중국의 인구학자인 량젠장은 중국 정부가 규정을 완화해 외국인 돌보미를 허용할 것을 촉구하면서 이러한 조치가 출생아 수를 연간 최대 20만 명 늘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외국인 돌보미가 중국의 일반적인 육아 가정의 평균 지출을 60%나 절감하게 해 줄 것이며, 이런 비용 절감 효과를 누적으로 환산하면 2,000억 위안(약 37조원)에 달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다른 전문가들은 외국인 돌보미 도입은 실현 가능성이 작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인구학자 허야푸 박사는 SCMP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필리핀보다 국민소득이 현저히 높기 때문에 저렴한 돌보미를 고용하는 것이 비용 절감에 도움이 되겠지만, 중국의 경우 1인당 국민소득이 필리핀보다는 높다고 해도 한국보다는 훨씬 낮기 때문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며 “더욱이 현재 중국의 실업 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당국이 필리핀 돌보미를 도입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업 관련한 논란은 여성·저출생·이주민 등 복합적 영향
이렇듯 한국의 필리핀 가사관리사 도입은 SCMP 외에도 다수의 외신이 상당한 관심을 나타내면서 국제적 이슈가 되고 있다. 특히 외신들은 한국의 저출생 문제도 함께 조명했다. 미국 로이터통신은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 계획이 발표된 지난해 9월 “높은 육아 비용 때문에 많은 한국 여성은 집에 머물며 가족을 보살피거나, 자녀 갖기를 포기해야 하는 압박에 직면해 있다”며 “해당 사업과 관련한 논란은 한국의 급격한 출생률 감소와 고령화, 이민자 수용에 대한 역사적 거부감 등이 결합한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 CNN 방송은 정부 보고서를 인용해 “경력 단절을 꺼리는 고학력 여성의 증가, 생활비 상승과 더불어 늘어난 육아·가사에 대한 부담은 한국의 혼인과 출산 감소의 주요한 요인으로 거론돼 왔다”며 “한국은 더 많은 아기와 노동자가 필요하며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통해 이를 개선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CNN은 관련 자료를 인용해 한국의 19∼34세 성인 중 절반 이상이 결혼 후에도 자녀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답했으며 결혼에 대해 긍정적 인식을 가진 응답자도 36.4%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외신들은 또 외국인 가사관리사의 급여와 처우 등과 관련해서는 노동 착취 우려 등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CNN은 “싱가포르 등지에서는 해고돼 본국으로 강제 송환될 것이란 두려움 때문에 최소 임금조차 받지 못한 채 비인간적인 처우와 학대에 시달리는 입주 가사관리사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로이터통신은 “한국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외국인 가사관리사의 데려올 게 아니라 부모가 직접 자녀를 돌볼 수 있도록 주당 근로 시간을 더욱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고 전했다.
싱가포르 언론 “한국인 최저임금 기준의 높은 급여 불만”
홍콩과 함께 필리핀 가사관리사 제도를 오래전부터 시행해 온 싱가포르 언론은 더욱 현실적인 관점에서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으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점을 짚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각) 싱가포르의 채널뉴스아시아(CNA)는 ‘모호한 직무 설명, 임금 문제: 한국의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은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한국 정부가 처음으로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고용하는 시범사업을 시작했지만, 한국 국민들이 그들을 집에 받아들일 의향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보도했다.
먼저 최저임금의 적용과 모호한 직무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CNA는 “필리핀 가사관리사는 한국인 가정에서 육아를 제공하고 가벼운 집안일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히 업무에 어떤 일들이 포함되는지는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한국인과 동일하게 시간당 9,860원(약 7달러)의 최저임금을 받게 되는데 주당 40시간 근무를 가정하면 의무 보험 적용을 포함해 월 급여가 약 1,800달러가 된다”며 “많은 한국인들은 이 금액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필리핀 가사관리사 사업과 관련한 갑론을박 중 가장 주된 이슈는 최저임금에 따라 책정된 월급 206만원(주 40시간 근로 기준)이다. 필리핀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은 당초 홍콩과 싱가포르의 모델처럼 월 100만원 수준의 이용료로 가계의 돌봄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로 추진됐지만 홍콩·싱가포르와 달리 한국이 국제노동기구(ILO)의 ‘차별금지 조약’에 비준한 국가라는 점이 발목을 잡았다. ILO 협약 111호에 따르면 인종이나 피부색, 출신국에 따라 고용제도를 구분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중산층의 평균 소득, 한국인 가사관리사의 급여 수준, 외국인 가사관리사의 역량 등을 고려할 때 이들의 급여가 지나치게 높게 책정돼 가계의 육아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당초 취지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여기에 더해 법무부는 불법체류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 실제로 홍콩에서는 외국인 헬퍼와 가구 간 사적 계약 형태로 고용이 이뤄지는데 임금이 체불되거나 고용주와 갈등을 빚는 경우 외국인 헬퍼들이 집을 나와 다른 일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불법 체류가 증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