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럼] 미국, 이제는 인도에 대한 기대를 접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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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러시아와 관계 강화하며 미국과는 전략적 파트너십만 유지
미국, 모디 총리 행보에 여러 차례 불편한 심기 내비친 상황
미국이 인도와의 동맹에 대한 환상 버릴 때 됐다는 목소리 커져


[동아시아포럼] 섹션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대학(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 이코노미(Policy Economy)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인도가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서 점점 더 아슬아슬한 줄타기 외교를 하고 있다. 러시아와 유대를 유지하는 가운데 미국과도 전략적 파트너십을 이어나가며 국제 무대에서 자국 입지를 넓히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미국 입장에선 인도와의 동맹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을 때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Russia's President Vladimir Putin meets with India's Prime Minister Narendra Modi in Moscow
사진=동아시아포럼

인도, 러시아와 관계 강화 움직임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인도 총리는 3연임에 성공한 뒤 지난 7월 러시아를 찾았다. 제22차 인도-러시아 연례 정상회담 참석이 목적이었다. 이 자리에서 모디 총리는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과 안보, 무역, 통상, 에너지, 국제 문제 등 다양한 분야와 관련된 양국의 관계를 점검했다. 이후 모디 총리는 러시아를 향해 “인도의 전천후 친구”라는 표현을 썼다. 이에 푸틴 대통령은 모디 총리에게 사도 성 안드레이 훈장(Order of Saint Andrew the Apostle)을 수여하며 화답했다. 이 훈장은 러시아에서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 수준의 영예 훈장이다.

두 정상의 이번 만남은 양국의 긍정적 관계를 다시 한번 부각시키며 인도-러시아 관계에 새로운 모멘텀을 형성했다. 그러나 양국이 서명한 공동 성명에서 당장 큰 의미를 찾긴 어렵다. 그런가 하면 성명에서 양국이 언급한 ‘인도와 러시아 양국이 참여하는 대화와 외교를 통한 우크라이나 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우크라이나 문제에 대해 균형 잡힌 태도를 취하려는 인도의 입장이 반영된 문장이다.

모디 총리의 이번 러시아 방문은 미국의 심기를 건드렸다. 에릭 가세티(Eric Garcetti) 인도 주재 미국 대사는 분쟁 시기에 전략적 자율성이란 있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인도의 줄타기 외교를 겨냥한 발언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미국의 이 같은 입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 미국은 인도가 러시아에 대한 비판을 거부하는 데 대해 여러 차례 불만을 내비친 바 있다. 게다가 값싼 러시아산 석유를 사들이기로 한 인도의 결정은 미국의 대러시아 경제 제재의 효과도 약화시켰다. 결과적으로 러시아는 여전히 전쟁에서 우세한 상황이다.

미국 땅에서 구르팟완트 싱 판눈(Gurpatwant Singh Pannun)의 암살 시도가 벌어진 사건 역시 미국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싱 판눈은 인도의 분리주의자로, 인도 정부는 그를 테러리스트로 간주하고 있다. 이에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은 모디 총리의 ‘인도 공화국의 날(Republic Day)’ 행사 초대를 거절했다. 이런 가운데 인도가 우크라이나에서 진행된 평화 정상회담에서 나온 공동 성명에 서명하길 거부하면서 미국과 인도 사이 긴장은 더 악화했다.

미국이 인도에 배신감을 느낄 만한 사건들은 이뿐만이 아니다. 제이크 설리번(Jake Sullivan)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6월 인도를 방문했는데, 당시 인도 정부는 미국 측과 모디 총리의 러시아 방문 관련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 정상회의 일정과의 충돌을 이유로 모디 총리 측에 방문 일정을 변경할 것을 요구했지만 인도는 제대로 응답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역시 미국 정부를 불쾌하게 만들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바이든 행정부가 나토 회원국들 사이에서 인도와의 전략적 관계를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세티 대사는 인도를 향해 미국의 전략적 인내엔 한계가 있음을 강조하며 미국과의 유대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말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미국과의 협력도 현재진행형

사실 인도는 21세기 들어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모디 총리는 지난 2022년 대규모 반이슬람 시위였던 고드라(Godhra) 폭동 사건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미국으로부터 비자 신청을 거부당한 일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014년 취임 직후부터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가 양국 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끔 선을 확실히 했다. 지난 2016년 미국 의회 연설에선 양국이 미적지근했던 역사를 극복했으며 국가적·지역적, 나아가 전 세계적으로 양국이 공유하는 영역에서 협력을 확대하고 있는 게 그 증거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실제로 인도는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 미국과 협력해 중국에 대응할 의사를 내비친 바도 있다. 또 미국과 물류 교류 합의각서를 비롯해 통신 호환성 및 안보 협정, 산업 안보 협정, 기본 교류 협력 협정 등도 체결했다. 아울러 양국은 개방적이고 안정적인 기술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핵심 및 신흥 기술 추진 계획에도 함께 서명했으며, 국방 기술 공동 개발을 위한 기구인 인도-미국 국방 가속화 생태계(India–US Defense Acceleration Ecosystem)도 출범한 상태다. 이는 인도가 자유롭고 개방적이며 평화로운 인도·태평양 지역을 만들려는 미국의 전략에 발맞추기 위해 안보 및 외교 정책을 조정한 사례들이다.

인도는 아시아 지역에서의 입지를 넓히기 위해 미국과 손잡을 준비가 돼 있다. 미국, 인도, 호주, 일본이 참여하는 쿼드(Quad)를 비롯해 양국과 이스라엘, 아랍에미리트연합으로 구성된 I2U2 협의체 등이 인도의 협력 의사를 방증한다. 인도는 그 어떤 나라들보다 미국과 양자 회담 및 군사 훈련을 많이 개최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러시아산 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지난 2008년 이래 250억 달러(약 33조5,200억원) 규모의 미국산 방위 무기도 사들였다.

그러나 미국은 인도가 러시아의 영향력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음을 인지하는 분위기다. 러시아 무기에 대한 의존도가 여전히 높고,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가 복잡해지며 지정학적 문제가 새롭게 떠오른 탓이다. 경제적인 문제들과 인도의 자체적인 역량 부족 역시 난관이다. 오히려 인도가 러시아와 계속해서 유대를 유지하는 게 미국이 우크라이나 문제와 관련해 러시아를 협상 테이블에 앉히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여러모로 미국과 인도는 서로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은 상황인 만큼 미국은 인도를 비공식적 동맹국이 아닌 전략적 파트너로 대해야 한다. 이 같은 실용적인 접근은 양국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둘러싼 오해들을 불식시키고 양국 간 협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원문의 저자는 수밋 쿠마르(Sumit Kumar) 인도 델리대(University of Delhi) 정치학과 조교수입니다. 영어 원문은 Modi strikes a tight balance between Russia and the United States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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