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충전소 배상책임보험 가입 의무화 필요성 대두, 국회는 법안 개정에 ‘속도’
전기차 충전소, 배상책임보험 의무 가입 대상 아니야
전기차發 대형 화재 사고에 고조되는 불안감, 국회 제도 개선 착수
보험업계, 대물배상 한도 확대·특약 운영 등으로 제도 공백 보전
전기차 충전 시설의 배상책임보험 가입 의무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인천 청라에서 발생한 대규모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전기차발(發) 화재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다. 국회 역시 이 같은 여론을 인지, 관련 개정안을 다수 발의하며 제도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기차 충전소, 나 홀로 사각지대에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현행법상 전기차 충전소는 배상책임보험 의무 가입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주유소, LPG 충전소, 수소 충전소 등은 개별법에 따라 배상책임보험 의무 가입 대상이지만 전기차 충전소는 오히려 예외적인 상황”이라며 “청라 화재 사고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전기차 화재는 대규모 피해를 낳을 가능성이 있고, 사고의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도 어렵다. 배상책임보험 가입이 의무화되면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한층 원활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국회 역시 전기차 충전소의 배상책임보험 가입 필요성을 인지, 과거 한 차례 법제화를 추진한 바 있다. 지난해 4월 김영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기차 충전시설 사업자가 배상책임보험에 의무 가입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전기안전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당시 김 의원은 “현행법은 전기차 충전소 사업자가 보험에 가입해야 할 의무를 부여하지 않아 사고로 큰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할 수 있다”며 “사업자 과실 여부와 관계없이 피해자가 보상을 받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개정안 발의 이유를 밝혔다. 다만 해당 개정안은 21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로 폐기됐다.
정부의 법안 개정 노력
지난 5월 출범한 22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 개정을 위한 움직임이 관측되고 있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전기차 충전소 관련 법안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전기차 충전 시설 소유·관리 주체에게 책임보험 가입 의무를 부과하는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안’이고, 또 하나는 충전 사업자에 보험 가입 의무를 지게 하는 ‘전기안전관리법 개정안’이다. 두 법안 모두 6월 말 발의돼 각각 행정안전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심사 중이다.
특히 전기안전관리법 개정안의 경우 해당 상임위원회의 검토 보고서까지 나온 상태로, 향후 본격적인 여야의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박희석 산자중기위 수석전문위원은 검토 보고서에서 “충전 시설 사고는 사전 점검 및 안전 관리만으로 완벽하게 예방하기는 어려우므로 책임보험 가입 의무화를 통한 사후 보상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전기안전관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실제 책임보험 가입이 의무화될 경우, 전기차 충전업계와 보험업계에 상당한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보험업계는 내심 의무화를 바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다만 전기차 충전소는 애초에 마진이 크게 남지 않는 사업이다. 책임보험 가입이 의무화된다면 상당한 보험료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만큼 의무화를 반대하는 사업자들도 일부 존재한다”고 말했다.
제도 빈틈 메꾸는 보험업계
이런 가운데 보험업계는 전기차 대물배상 한도 확대, 특약 출시 등을 통해 현행 제도의 ‘빈틈’을 메꾸며 소비자의 불안감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삼성화재는 최근 전기차 화재 사고로 자동차보험 대물배상 가입 금액을 확대하려는 고객 수요가 높아짐에 따라, 대물배상 가입 금액을 20억원까지 확대했다. DB손해보험도 전기차에 한해 대물배상 가입 금액을 최대 20억원까지 높였다.
현대해상은 지난달부터 개인용·업무용·영업용 등 모든 보종 전기차의 대물배상 확장담보 특약 최대 가입 금액을 20억원까지 확대했으며 △사고로 배터리 파손 시 신품가액 보상 △전손 사고로 수리 시 차량가액의 130%까지 보상 △충전 중 화재·폭발·감전 사고로 사망 또는 상해 보상, 충전 중 전기차 배터리 등 중요부품의 전기적 손해 보상 등 다양한 특약을 운영하고 있다. KB손해보험은 특약 가입 시 전기자동차 충전 설비를 이용해 차량을 충전하던 중 죽거나 다쳤을 때 이로 인한 손해를 보상해 준다. 이에 더해 피보험자 차량이 사고 또는 고장으로 인해 자력 운행이 불가능할 경우 10km 한도로 무료 견인 서비스를 제공한다.
다만 보험업계의 이 같은 노력이 제도적 공백을 완벽하게 보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와 관련해 한 보험설계사는 “각 보험사가 대물배상 한도 확대 등을 통해 (전기차 사고 위험에) 대응하고는 있지만, 결국 여론을 잠재우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소비자 사이에서는 정부 차원의 책임보험 의무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커지고 있다”고 짚었다.